무대 뒤의 마에스트로 "성취감이 곧 행복이죠"공연의 A부터 Z까지 총괄 진행 "창의적이지만 고독한 직업"

“발만 동동 구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죠. 정말로 피가 바짝 마르는 시간들이었어요.”

공연기획자 손미정(38) 씨에게 악몽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영국의 로얄오페라하우스에서 부친 짐이 한국으로 수송되던 도중 갑자기 어디선가 사라져버린 것. 실종된 짐의 종류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대형 컨테이너 40피트짜리 6대 분량으로, 대형 무대세트와 공연 의상 등 며칠 뒤 열릴 오페라 공연의 거의 모든 준비물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초비상이 걸린 가운데 사라진 짐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국과 영국에서 공동 수색이 진행됐다.

알고보니 짐은 엉뚱하게도 중국에 가 있었다. 황급히 영국 측 기술감독이 직접 중국까지 가서 ‘분실물’을 되찾아 오고서야 겨우 사태가 마무리됐다. 1년 전에 벌어졌던 아찔한 소동의 원인은, 택배 회사 직원의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다.

“그 바람에 예정 스케줄이 1주일이나 차질을 빚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짐을 찾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라요. 특히 짐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첫날은 하루종일 불안하고 조마조마했어요.”

손 씨는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 과장으로 근무 중인 16년차 전문가다. 1992년 입사한 이래 손 씨는 줄곧 한우물만 파온 토박이 기획자들 중 한 명이다.

1인당 1년에 3·4편 공연 만들어 내

현재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공연기획자는 모두 8명. 콘서트, 오페라,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분담하고 있다. 자체 기획하는 공연과 대관하는 외부 공연의 비율은 3.5 대 6.5 정도. 공연의 성격이나 규모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연기획자 1인당 1년에 최소한 3, 4편의 공연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단 신입으로 들어오면 6개월 동안은 선배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한 편의 공연이 태어나서 막내리는 과정까지 지켜보며 배운다. 공연기획에 대해 어느 정도 눈을 뜨려면 최소한 1년 반 걸린다. 이때쯤 되면 하나둘 작은 공연들부터 시작해 점차 큰 작품들을 맡는다. 입사 후 3년 정도 지나야 스스로 공연을 생산해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생긴다.

아무것도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 백지 위에 밑그림부터 차근차근 그려 나가야 한다. 어떤 관객층을 대상으로, 어떤 소재로, 어떤 작품을, 어느 작가와 어느 연출자에게 맡길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고, 배우 캐스팅서 연습 스케줄 조정, 레파토리 선정까지 진행한다. 그뿐이 아니다. 예산 편성, 개런티 협상, 사후 수익 계산 등 돈 문제도 맡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기획력이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다가, 길거리를 걷다가, 혹은 사람을 만나 잡담을 하다가 우연히 힌트를 얻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어필할 공연 아이템과 홍보 방안 등을 찾는다는 게 여간 고민되지 않는다.

고만고만한 공연이 넘치는 요즘엔 기획력이 흥행의 성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10년 전 손 씨가 성사시켰던 행사의 뒷얘기를 들으면 공연기획자들이 얼마나 많은 부분까지 신경써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제가 전시회를 맡고 있었을 때인데, 어느 날 군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상가에 걸린 모 학습지 회사의 광고 간판을 봤어요. 지방에서는 유명하지만 서울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학습지였는데, 보자마자 딱 어떤 생각이 떠올랐지요. ”

손 씨는 당시 청소년 대상 서예 행사를 구상하면서 이를 지원해줄 협찬사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114에 문의해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무작정 그 학습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한 뒤 협찬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마침 학습지 회사 역시 때마침 서울에서 홍보를 원하고 있었다. 1996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국 학생 서예 한마당’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공연의 경우도 과정은 이와 비슷하다. 공연 계획은1년 반 정도를 앞당겨 세운다. 공연 2, 3개월 전에는 이미 포스터나 팜플렛 등을 만들어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물론 홍보물들도 공연기획자가 외부 전문가와 상의하고 발주한다. 배우들의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스케줄 점검에서부터 연습 때의 식사 메뉴, 식수, 주차문제까지 꼼꼼이 챙겨줘야 한다. 공연 날이 임박해 오면 야근은 빈번해진다.

개막 당일, 무대 뒤에 선 공연기획자는 오히려 배우보다 더 바쁘다. 공연 2시간 전부터 티켓 박스와 안내 데스크를 점검하고, 티켓 판매 때 거슬러 줄 잔돈 준비와 공연장으로 안내할 아르바이트생의 자리 위치까지 일일이 확인한다. VIP석을 세팅하는 한편 초청자 리스트도 거듭 확인하고, 언론사의 취재에 대비한 보도자료도 빈틈없이 챙겨놓는다.

무대장치 분실소동 등 다양한 해프닝 겪어

공연이 무사히 끝나더라도 이들을 기다리는 일들은 한참 더 남아있다. 예약한 장소로 공연 스탭을 안내해 뒷풀이를 치러야 한다. 계약한 대로 출연자들의 개런티는 지급됐는지, 스탭 중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밀린 사람은 없는지 등등 주로 돈 정리에 관한 일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에서 벌어들인 수익 계산까지 더하여 공연 전반에 대한 내용을 보고서로 작성한다. 공연 후 1주일 이내에 제출해야 하는 이 보고서는 ‘공연기획자들의 성적표’나 다름없다.

“콘서트의 경우 총 인원이 20~30명에 불과하지만, 오페라는 오케스트라만 약 80명에다 합창단 80명이 더해져 도합 200~300명이 움직여야 하므로 챙겨야 할 일은 훨씬 복잡하고 많아집니다. 즐겁지만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죠.”

99년에 작고한 소프라노 고(故) 김자경 여사는 그에게 특별한 존재다. 대학 4학년 때 예술의전당 직원 공채 공고가 나자마자 1초의 망설임 없이 그가 응시한 것도, 요즘도 1주일에 최소한 서너 번은 직접 돈을 주고라도 부지런히 공연을 보러 다니는 ‘공연광’이 된 것도, 그가 중학교 1학년 때 김자경 오페라단이 공연한 베르디의 작품 ‘라트라비아타’를 본 것이 계기였다.

특히 예술의전당은 그가 언제나 공연을 보러 들락거리던 곳이었고, 올 때마다 ‘이곳에서 일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다행히 원하던 대로 합격하였고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1995), ‘오페라 페스티벌’(1998), 오페라 ‘돈죠반니’(2006) 등 다수의 화제작들을 기획했다.

무대 장치 분실 소동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돈죠반니’ 공연은 특히 마음을 졸이게 한 애물단지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돈죠반니가 방탕의 업보로 지옥 불에 떨어지는 장면을 보다 실감나게 하기 위해 무대에 커다란 구덩이를 8개 설치한 뒤 각 구덩이마다 높이 2m 정도의 거대한 불꽃이 솟구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건 소방법 위반 사항이거든요. 그래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소방서에 미리 자수(?)하고 설득해서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죠. 대신, 공연 내내 공연장 안에는 소방대원들이 배치됐고, 바깥에는 소방차들이 계속 양쪽에 대기하고 있었죠(웃음). ”

객석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도 각양각색이다. 4년 전, 가곡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바바라보니의 내한공연이 있었을 때다.

막간의 휴식 시간에 객석의 한 신사가 손 씨팀을 찾아와 ‘뒷자리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했다. 소리의 주범은 신사의 뒷좌석에 앉은 부인이 몰래 가방에 넣고 들어온 애완견이었다. 강아지가 발각되자 부인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당당한 태도로 ‘이 강아지는 카네기홀에도 들어갔어도 문제가 없었던 개예요’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그 말을 듣고 제가 ‘기자들이 알면 가십기사로 쓰기에 딱이네요’라고 했더니 언제 슬그머니 사라졌는지 다시 공연이 시작됐을 때 더 이상 안 보이더라구요(웃음).”

숨겨둔 애인과 몰래 공연을 보러왔다가, 그렇쟎아도 이전에 남편의 옷주머니에서 공연 예약티켓 2장을 발견한 뒤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잠복’ 중이던 아내에게 현장에서 덜미가 잡히는 바람에 남편은 도망다니고 아내는 소란을 피우는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다. 공연장에서 만나는 세상사는 풍경이다.

손 씨는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에 쉬는 주5일제 근무를 하고 있지만,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관객맞이로 평소보다 더 바쁘다.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더라도 별도의 성과급이나 수당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예측하고 발굴한 아이템이 히트한 데서 오는 성취감과 자기만족감이 모든 피로를 싹 씻게 만든다.

“이 일은 창의적이면서도 외로운 직업입니다. 일 자체에서 느끼는 자기만족감이 없으면 즐거움이 아니라 스트레스나 부담만 커져요.”

장시간 준비하며 공들여 막을 올린 공연이 언론의 혹평을 받을 때는 솔직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그럴 때도 잠시. ‘더 단련할 기회로 삼자’며 철저한 자기점검에 들어간다.

“간혹 평가가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이를 받아들이는 힘, 이를테면 ‘맷집’ 같은 것이 있어야 해요. 실제로 저는 맷집이 강하다고 자부합니다.

잠시 마음 상해 있다가, 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 제 자신과 공연 준비 과정을 분석해 본 뒤 다음 공연의 밑거름으로 삼아요. 반대로 좋은 반응을 받았을 때에도 왜 그랬는지 평가를 하죠. 물론 관객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찡할 정도로 보람과 만족을 느낍니다. ”

공연기획자가 되고 난 뒤 손 씨는 성격이 냉철하고 단호하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10년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아침 운동 덕분에 손 씨의 체력은 오히려 후배들보다 야근에 강하다. 현재 국군방송의 클래식 프로그램을 포함해 방송 프로그램 3개에 출연 중인 그는 ‘공연예술의 이해’라는 과목으로 3년째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에도 출강하고 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또 변할 것이지만 손 씨에게는 절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공연에 대한 ‘사랑’이다.

“남녀가 처음 연애를 할 때는 옆 사람이 두 연인의 눈빛만 봐도 ‘서로 정말 좋아하는구나’ 알 수 있다고 하쟎아요. 저는 지금도 공연을 볼 때면 (첫사랑 때처럼) 가슴이 막 두근거리고 설레요. 나이가 들더라도 지금의 이런 설렘, 공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공연기획자가 되려면 >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극장 또는 민간 기획사에 입사하거나 공연 관련 재단 소속 공연기획자가 되는 것이다. 예술의전당의 경우, 정기 공채가 아니라 결원이 어느 정도 쌓일 때에만 채용 공고를 낸다.

대략 2, 3년에 한 번씩이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1차 서류 전형, 2차 직무 적성 검사, 3차 영어 인터뷰를 거쳐 뽑는다. 민간 기획사는 주로 알음알음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단의 경우는 차츰 공채로 전환되는 추세다.


글·사진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