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문 합병증에 간 이식까지 장정도 견디기 힘든 고통과 싸움백일 이후부터 입·퇴원, 수술의 연속… 면역력 없어 바깥출입도 어려워

“우리 송혁이는 복이 많은 애에요. 가난한 부모를 만났어도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잖아요. 저도 너무 기쁘고, 감사해요.”

송혁이 어머니 조은정(44) 씨의 눈물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킨 걸까. 열한 살 송혁이는 4개월 전,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차츰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3월 27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아파트. 길거리의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 터뜨리던 날, 송혁이는 컴퓨터로 화상 수업을 받고 있었다. 책상 옆 벽에는 한 과목당 30분씩, 일일 2시간의 과목별 시간표가 붙어 있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는 송혁이는 학교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송혁이는 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희귀난치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아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또래의 평범한 아동과 똑 같은 모습이었다.

“수술 전에는 피부가 푸릇푸릇 까맣고 어두웠는데 지금은 뽀얘지고, 살짝 핑크빛도 돌아요.” 엄마는 성공적인 수술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11년 전 송혁이의 출생 직후부터 수술 전까지 엄마는 늘 불안하고 초조한 세월을 보냈던 것. 어머니는 하루하루 위태로웠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송혁이는 출생 직후 몽글몽글 하얀 변을 보았어요. 큰 애가 태어날 때와 달라 걱정이 됐죠. 하지만 신생아들은 장이 미숙해 그럴 수 있다는 의사의 얘기에 마음을 놓았어요.” 그러나 일주일 뒤엔 황달 수치마저 높아졌다.

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한 달이 넘도록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서야 동네 소아과에서 혈액 검사를 받았다. 이후 1차 검사 결과를 담당한 의사의 권유로 종합병원을 찾아 마침내 ‘담도폐쇄증’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낭을 거쳐 장으로 들어가 소화 흡수와 불필요한 물질을 배설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담도폐쇄증’의 경우 담도가 만들어지지 않아 담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정체돼 간에 손상을 줘서 황달이 지속된다.

이를 방치하면 간경화로 진행되고, 결국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무서운 질환이다. 특히 갓 태어났을 때 바로 수술을 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송혁이는 백일 즈음 간문부와 장을 연결하는 ‘카사이 수술(Kasai)’을 받았다. 5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지만, 다행히 어린 생명은 잘 견뎌주었다. 그러나 이후 송혁이의 성장 기록은 끊임없는 합병증으로 인한 병원의 입ㆍ퇴원과 수술의 반복으로 얼룩졌다.

입에서 피 쏟으며 생사고비 넘나들기도

카사이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한 달쯤 되던 무렵. 아이가 갑자기 입에서 선홍색 피를 쏟기 시작했다. 토혈이었다. 간 질환자의 주요 합병증인 식도정맥류(식도에 혈관이 형성되고 식도 혈관이 커지면서 출혈이 발생되는 질환)가 나타난 것. “같은 질환을 앓는 엄마들로부터 식도정맥류가 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까 너무 떨렸어요.”

이후로도 아이는 길게는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짧게는 한 달에도 두어 번씩 피를 토했고, 엄마는 그때마다 응급실을 찾아 수혈을 통한 혈액 보충과 지혈 처치를 받았다. 그러다 큰집 제사가 있어 경남 창원을 찾았다가 위태로운 순간을 맞았다.

제사가 끝난 뒤 아이가 다시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는데 지방이다 보니 이렇다 할 응급조치를 취해주는 병원이 없었다. “창원에서 마산으로, 마산에서 부산으로 구급차를 타고 돌았어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피를 토하는 아이를 보면서 집에서 멀리 떠나온 걸 가슴 치며 눈물을 흘렸죠.” 결국 부산에 2박3일간 머무르며 응급조치를 취한 뒤 서울에서 내시경으로 출혈 부위의 정맥을 고무밴드로 묶어주는 결찰요법 치료를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어섰다.

하지만 갈수록 태산. 송혁이가 열 살이 됐을 때 입술이 퍼래지고, 숨이 차서 잘 뛰지를 못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폐동맥에 폐정맥길이 생겨 깨끗한 피와 혼탁한 피가 섞이게 됐대요. 이로 인해 산소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뇌에는 농염이 생기고 말았어요.”

이렇듯 합병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간이식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같은 B형인 아빠가 송혁이에게 간을 이식해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픈 송혁이를 위해 아빠 이의철(44) 씨는 담배와 술을 끊고, 운동으로 건강한 간을 만드는 데 힘썼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었다. 아빠는 조그맣게 자영업을 하다 거듭된 실패로 막노동 일로 근근히 생계를 꾸려갔다. 그런데 간 이식 수술을 받으려면 수술 전 병원에 내는 예치금 3,000만원에, 각종 검사비가 1,000만원을 넘어서 감히 수술 엄두를 내기가 어려웠다.

“애를 왜 저 지경이 되도록 놔두냐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어요. 눈 뜨고 아파하는 자식을 보는 심경이 어떻겠어요. 돈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이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도 못했어요.”

라디오 프로그램 통해 수술비 지원받아

어머니는 너무 막막한 심정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적어 보냈고, 편지가 소개돼 수술비 지원을 받게 됐다. 지난해 11월 13일 10시간에 걸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송혁이는 40일간의 병원 생활을 끝내고,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퇴원했다. 사실 당시 송혁이는 산소포화도가 낮아 한동안의 입원 치료가 요구됐다.

하지만 하루 20만원이 넘는 1인실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간 이식 환자의 경우 면역력이 현저히 낮아 1인실 사용이 필수적이기 때문. 의료진과 상담 끝에 엄마는 산소발생기를 단 채 아이를 퇴원시켰다.

송혁이는 지금도 매일 13~14종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면역억제제, 간에 대한 약, 혈액응고 방지제 등을 꾸준히 복용해야 돼요.” 비록 간 이식이란 큰 산을 넘었지만, 험난한 세상으로 나아가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면역력이 없어 항상 주의해야 해요. 피부암이 생길 수 있어 한여름에도 긴 팔 티셔츠와 긴 바지를 입어야 하고요. 림프종 발병 확률도 높아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도 송혁이는 여러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건강을 되찾은 행운아다. 주변 환우들 중에는 아직도 막대한 치료비와 입원비 등으로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담도폐쇄증의 환아들을 위한 담우회’(http://www.sumin4you.com.ne.kr) 방현진 회장은 “지난해 1월 담도폐쇄증이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등록돼 의료비 혜택을 받게 됐지만, 차상위계층(국가에서 인정하는 최저생계비보다 조금 더 많은 정도의 소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엔 의료 혜택이 거의 없다”면서 “특히 간이식 수술이나 카사이 수술 후 나타나는 다양한 합병증과 입원실비용 등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어 환아 가정의 부담이 상당하다”며 안타까워했다.

◆ 원인 및 증상

담도폐쇄증이란 출생직후, 또는 생후 1개월 전후에 간외담도의 일부 또는 전부가 폐쇄되어 담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간에 손상을 주어 황달이 생기고, 변이 하얗게 나오면서 간경화로 진행되는 질환이다.

증상은 신생아의 눈 흰자위와 피부에 황달기가 나타나고 노란색 소변을 본다. 병을 오랫동안 앓으면 소화장애도 나타난다. 변에 답즙이 전혀 없으므로 흰색 변을 본다.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발생비율은 1 대 2로 주로 여아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 진단 및 치료

출생 후 아이가 황달이 있고 변을 하얗게 보아도 잘 자라며 건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증상을 보일 경우 반드시 전문 의료진을 찾아가 검진을 받아야 한다.

임상증상과 혈액 검사를 기본으로 담도폐쇄증이 의심되면 복부초음파, 핵의학 검사, 세침간조직검사 등을 시행하여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담도폐쇄증 치료의 1차적 수술 방법인 ‘카사이수술’은 생후 8주 이내에 수술하면 예후가 좋다고 보고되어 있다. 담낭을 포함한 폐쇄된 간외담도를 간문맥 분지 부위까지 제거하고, 소장과 연결하여 담즙 배출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수술 경과에 따라 간 이식이 필요할 수 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