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영토로서 주권이 미치는 범위인 국토는, 국민의 생존을 위한 생산 공간이자 국민 모두의 생활 공간이며, 민족의 정체성이 구현되는 장소이다.
디딤돌, 『고등학교 사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르는 등 자국에서는 자본을 투자하여도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없게 되자, 잉여 자본을 유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식민지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을 제국주의라 한다.
대한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개인은 자기 결정권을 가진 몸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때 자기결정권은 국가의 주권과, 몸은 국가의 영토와 유비적 관계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제국주의는 독립된 주권(≒자기 결정권)과 영토(≒몸)를 가진 국가를 강제적으로 식민화하여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이념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식민지가 될 수 있다.

부연하자면, ‘몸≒영토’라는 주장은 ‘몸’의 물질성에 근거하여 지지된다. 개인의 영토인 ‘몸’이 국가의 ‘영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몸’은 ‘유동적 영토’라는 점이다.

가와구치 가이지의 <침묵의 함대>에 등장하는 핵 잠수함 야마토처럼. 이러한 생각을 좀 더 밀어 부치면, 개인은 일인국가(一人國家)라는 다소 급진적 해석이 가능하다. 일인국가에서 주권은 ‘자기 결정권’으로, 영토와 국민은 ‘몸’으로 통합된다. 이처럼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좀 더 확장적으로 사용한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일인국가=개인’에 작동하는 제국주의적 지배양식을 ‘일상적 제국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게 된다.

‘일상적 제국주의’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 몸을 강제적으로 관리하고, 훈육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들과 이를 정당화하는 모든 이념들로 정의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모든 개인은 식민지 경험을 몸에 각인하고 있다. 특히 일상적 제국주의는 고등학교 시절과 군복무 기간에 절정에 달한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갔다 온 남성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자신의 군대 경험을 자랑 삼아 떠벌리고,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자학적인 명령에 기대어 지난하고도 지루했던 그 시절을 견뎌낸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이와 달리, 두 번째 부류는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거나,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부정한다. 한 쪽에서는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라고 말하는 반면, 반대쪽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가지 말라!’고 말한다.

많은 예비역들은 군대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끈기나 인내처럼, 군대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가치들을 체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남자다운 남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는 식민지배가 피식민지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발언과 매우 유사하다.

병역 의무는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부여되는 ‘신성한’ 의무이다. 신성하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능하다. 신성하기 때문에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불순한 존재로 취급되고 감금당한다. 복종이든 불복종이든 나의 영토인 ‘몸’은 국가권력의 ‘식민지’가 될 운명이다.

다행히, 2년 여라는 기간이 지나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것처럼, 나의 몸도 나에게 반환되기는 한다. 그러나 2년여의 식민 지배 경험이 그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평균수명을 80세라고 볼 때, 2년은 인생의 40분의 1이고, 재미 삼아 계산해보면, 이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5,000년이라 쳤을 때, 약 125년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군대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에서도 ‘몸’은 일종의 ‘식민지’가 된다. ‘공포’와 ‘폭력’을 통해 통제되는 몸은 원하지 않는 시간(매일 오전 7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에 원하지 않는 공간(교실)에서 원하지 않는 행위(공부)를 해야 한다. ‘공포’와 ‘폭력’이라는 식민지배의 기본 전략은 일상적 제국주의에서도 활용된다.

아직까지도 한국의 고등학교에는 두발 규제, 복장 규제 등 ‘몸’에 대한 많은 제약들이 존재한다. 어떤 교사들은 친절하게도, 학생들의 울창한 열대우림에 ‘고속도로’를 건설해주기도 한다.

아침에 등교할 때마다 교문 앞을 지키고 서있던 선도부 선배들의 늠름한 표정과 학생주임 선생이 들고 있던 빛나는 야구방망이. 교문 앞의 지배적인 정서는 ‘공포’다. 그리고 학교 안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폭력’들-선생이 학생을 때리고, 학생이 학생을 때리고, 학생은 선생의 차를 부순다(아! 요새는 학생이 선생을 때리기도 한다).

이러한 ‘공포’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력은 성적과 전투력(?)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고등학생의 세계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 계열과 싸움을 잘하는 학생 계열로 양분된다. 그래서 양자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공존한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학생들이 최대의 피해자들이다.

고등학교 역시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군대와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금언이 마치 놀라운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신봉된다. 처음 훈련소에 입대했을 때, 조교가 들려주었던 그 금언은 진부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말이라면 고등학교 때도 이미 지겹게 들었으니까.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와 유사하게 ‘미쳐야(狂) 미친다(及)’라는 말이 유행했다. 한 친구는 기숙사 책상 앞에다가 이 무시무시한 금언을 큼지막하게 붙인 채 3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미치려다(及) 미치면(狂) 행복할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사실 나도 미쳐있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군대에서든 고등학교에서든 개인들은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연병장의 흙을 모두 갈아 엎으라는 황당한 명령이나, 대학진학이라는 절대적 명령에 순순히 복종해야 한다.

식민지의 백성은 명령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 군대에서 상관들은 자신들의 명령에 토를 다는 병사를 가장 싫어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왜 그 명령을 따라야 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보다는 ‘무조건 복종’을 강요한다.

자기 결정권을 포기하고, 주어진 명령에 순응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간혹, 자기 결정권을 재탈환하기 위해 싸우는 독립군들은 대부분 장렬히 전사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지배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마치 일본 식민지배 시절, 마지 못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백성들처럼 말이다.

요즘은 조금 덜한 것 같기는 하지만, ‘군대를 갔다 와야 남자’라는 말의 위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문제는 이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다.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려대 한승조 교수의 ‘일본 식민 지배는 축복이었다’는 발언과 그의 대변자로 자처했던 지만원 씨의 ‘먹힐 만하니까 먹혔다’는 발언은 마조히즘적이기까지 하다.

마찬가지로 예비역들의 입에서 나오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도,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런 말들이, 식민지를 경영했던 교사나 장교들의 입에서 나온다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식민지가 되어, 자기 결정권과 영토를 빼앗겼던 피해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영토 반환 이후에도 지속되는 피지배의 흔적을 가늠케 한다. 피지배자의 입으로 지배자들을 정당화하는 것이야말로, ‘내선일체(內鮮一體)’ 전략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처럼 피지배의 흔적은 영토가 반환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제의 잔재가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 남아서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국가로서의 제국은 사라졌으나, 지배양식으로서의 제국주의는 남아 있다.

자신들을 지배했던 제국의 논리에 익숙해진 피지배자들은 이제 새로운 정복자로 태어나, 자신의 식민지로 적합한 영토들을 탐색하고, 그곳에 자신들의 깃발을 꽂아보면 어떨까 하고 궁리하게 된다.

핍박받던 후임병이 악독한 선임병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처럼, 혹은 남성성을 획득했다고 자부하는 예비역들과, 군대에 갔다 오지 않는 사람들조차 때로는 끈기나 인내가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TOPIA 논술아카데미 선임 연구원


심원 i2u4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