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가 권삼윤 씨가 쓴 문화기행 중에 “음식은 보수성이 강해 좀체 제 땅을 못 떠나는 성격을 가졌다”는 구절이 나온다. 음식에는 민족과 그 지역의 삶이 진솔하고 뿌리 깊게 스며 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방영 이후 체코는 한번쯤 가고싶은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옛 소련에 의해 오랫동안 공산체제로 유지되던 체코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먼 나라’ 동유럽의 하나였을 뿐이다.

체코의 연간 1인당 맥주 소비량이 독일보다 많을 정도로 체코인들이 맥주를 많이 마시며, 체코의 맥주 제조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게다가 가장 미국적인 맥주로 알려진 ‘버드와이저’의 원조가 체코라는 사실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체코 맥주에 대한 무지는 과거 동유럽과의 문화적 단절을 새삼 실감나게 한다.

체코에서는 맥주를 ‘흐르는 빵’이라고 부르며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음식으로 즐긴다. 이 나라에서 맥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체코는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크게 두 권역으로 나뉜다. 수도 프라하를 중심으로 독일 국경에 위치한 보헤미아 지방과 제3의 도시인 모라비아 지방이다.

보헤미아는 13세기 때 은을 대량으로 생산했고, 당시 이 은화가 유럽에 통용되면서 번영을 누렸다. 당시 바츨라프 2세는 보헤미아의 오지에 도시를 세우기 위해 이주민에게 자치권과 맥주 제조 판매권을 인정했다. 19세기에 체코는 독일의 맥주기술을 받아들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과 함께 보헤미안의 자유분방하고 예술적인 기질은 맥주와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밀란 쿤데라, 실존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음악가 드보르작과 스메타나 등 수많은 체코의 예술가들이 보헤미아 출신인 점은 모두 그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칸 영화제와 어깨를 겨누는 유럽 최고의 영화제인 ‘까를로비 영화제’가 열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음악예술 공연이 펼쳐질 만큼 보헤미안의 예술가적 기질이 넘치는 곳이 체코, 그중에서도 보헤미아 지방이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열정적이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이들 보헤미안은 맥주를 즐긴다. 반면, 전통을 중시하고 종교적인 모라비아 지역 사람들은 와인을 즐긴다고 한다.

필젠 지방의 ‘필스너’ 맥주와 체스케 부데요비에서 생산되는 ‘부드바이저 부두바’는 서로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체코 맥주다. 체코는 독일과 함께 정통 수제(手製)맥주를 생산하며, 3개월 이상의 자연발효공법을 통해 맥주 본래의 맛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필스너는 물의 경도가 낮아 은은한 호박색을 띠고 맛은 깨끗하며 향이 진해 오래 전부터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렸다.

현재도 필스너는 숙성맥주인 라거를 대표한다. 부드바이저 부두바는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라는 브랜드 명을 낳은 원조다. ‘부드바이저’가 미국에 가서 미국식 발음 ‘버드와이저’로 불리게 된 것.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부드바이저 부두바는 오늘날 ‘오리지널 버드와이저’라는 슬로건을 달고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버드와이저의 고향이 체코라는 사실은 세계 각지의 문화를 흡수해 미국화하고 다시 그 미국화를 세계에 강요하는 미국의 세계화 문화메커니즘의 한 단면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보헤미안의 역사와 삶, 자유분방한 정서가 녹아 있는 체코 맥주. 맥주 속에 담긴 보헤미안의 문화까지 음미하며 마신다면 미국 버드와이저와 체코산 맥주의 섬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세화 <뚜르드몽드> 기자 ericwin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