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호흡 맞추기… 10년 경력에 이제 햇병아리 면해"녹록지 않은 연습·공연, 30년차쯤 돼야 고참 행세… 특유의 자세 때문에 직업병에 시달리기도

대금연주자 김정승(34) 씨의 출근 준비는 좀 뒤죽박죽이다. 걸핏하면 세수를 빼먹고 출근한다. 1주일에 하루쯤 빼고는 십중팔구 그렇다. 애틋한 부성애와 빠듯한 일정을 모두 감안한 김 씨만의 고육책이다.

“아침 시간이 아니면 30개월된 우리 쌍둥이 얼굴을 볼 시간이 하루 중에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세수할 시간 대신 아이들과 10분이라도 더 놀아주다가 마지못해 떨어지는 겁니다. 세수는 국악원에 출근한 뒤에 곧바로 하구요(웃음).”

김 씨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연주단원이다.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국악연주자 집단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의 일과는 시작부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매일 아침 10시면 총 연습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 국립국악원의 단원 관리는 엄격하기로 소문나 있다. 출결 여부와 연습 내용, 특기 사항 등을 적는 일지가 매일 철저히 기록된다.

지각하면 1차 구두 경고를 받는다. 선임자가 지각생을 따로 불러 부드럽게 말하지만, 경고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사자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한 달에 두 번만 경고를 받아도 프로로서의 자책감에 스스로 ‘죄인’ 기분까지 든다. 지각 3회는 결근으로 처리된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연습은 점심 식사 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오후 3시까지 이어진다. 1년 내내 철칙처럼 지켜지는 하루의 기본 일과다.

공연 일정은 이미 1년치가 빽빽이 잡혀있다.

매주마다 돌아오는 토요상설 공연에다 1~2개월에 한 번씩 돌아오는 지방공연, 그리고 기획공연과 정기공연이 각각 1년에 약 2차례씩 기다리고 있다. 역시 비슷한 횟수의 해외공연까지 합치면, 한 공연을 준비하고 마치기가 무섭게 다음 공연이 눈앞에 들이닥친다. 하루가, 그리고 1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비교적 레파토리에 익숙한 토요상설 공연도 연습이 녹록치 않다.

연주 때마다 구성원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매번 새 호흡을 맞춰야 한다. 단 한 번 레파토리를 훑어가며 호흡을 맞춰보는 데만 최소 1시간이 걸린다. 레파토리까지 바뀌면 당연히 연습량은 껑충 늘어난다.

연습 시간도 곱절 걸린다. 국립국악원의 정악단만 약 70명, 그중 대금연주자가 13명, 그 외 민속악단과 무용단, 창작악단 등을 합치면 수백명의 프로 국악인들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설공연 때 평균 연주자 인원이 약 80명, 대규모 공연 때는 100여 명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상설공연은 이들의 1년 일정 중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부분이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도 연주자들은 그대로 무대를 지킨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월드컵 대회 때나 폭우, 폭설 같은 천재지변이 있었을 때에는 열 명 남짓 되는 관객들을 앞에 두고 공연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초년병 때는 그럴 때 솔직히 회의감도 들었는데, 조금씩 진정한 국악원 식구가 되어가면서 이제는 그런 것들이 아주 당연하고도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기획공연이 다가오면 더 전시체제로 들어간다. 연습 등 준비기간만 약 넉 달. 상설공연과는 또 달리 완전히 새로운 레파토리를 익히고 연습해야 한다.

전통 국악 연주의 가장 큰 특성은 양악과 달리 악보 없이 모든 곡을 다 외어서 연주해야 한다는 것. 간단한 모음곡 1편을 연주하는 데만 평균 1시간이 걸리는 암기 분량이다.

이런 암보(악보를 외는 것)에서 고수의 차이가 더욱 더 확연히 드러난다. 원로 연주자들은 평소 머릿속에 담고 다니는 악보 분량만 ‘대금 정악’ 한 권 수준이다. ‘대금 정악’은 백과사전 한 권 두께만큼 두껍고 빽빽한 악보집이다.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쉬지 않고 분다 해도 단 한 차례 연주에만 최소 10여 시간이 걸리는 분량이다. 평생에 걸친 피나는 노력과 경륜의 결과다.

치열한 실기 테스트를 뚫고 입단한 실력파 단원들도 경력 10년이 넘도록 암보량이 70~80% 선을 넘지 못한다. 지나친 긴장 때문에 공연 중 잠깐만 정신을 팔아도 바로 연주가 무너진다.

최소한 경력 30년차쯤은 지나야 암보가 완전해진다. 그쯤 되면 설령 도중에 실수로 대목을 놓치더라도 노련하게 금세 제자리를 찾아가는 고수가 된다.

“제 자신만 해도 경력 10년이 넘었다면 여느 직장에서는 사실상 고참 대우를 받을 만한 나이지만, 여기서는 ‘간신히 햇병아리 수준을 벗어난 정도’에 불과합니다. 선배님들이나 원로 선생님들을 보면 아직 한참 더 배워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요.”

정악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종묘제례악 재현 때에는 특히 고도의 호흡 맞추기가 이뤄진다. 무대 안팎을 다 합쳐, 공연에 동원되는 스태프가 수백 명.

이때는 음악 연주만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정통 궁중 제사 의식이 함께 치러지면서 연주의 시작과 중단, 재개 등 연주 타이밍이 매우 복잡해진다. 연주단의 악보만이 아니라 의식의 절차까지 함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완벽한 암보와 사전 연습 없이는 불가능한 공연이다.

“며칠 안으로 당장 1시간짜리 악보를 새로 외어야 한다든지, 새로운 테크닉을 구사해야 한다든지 할 때, 그런 연주 스트레스가 상당히 큽니다.

더구나 우리 정악은 곡 자체가 양악처럼 변화무쌍한 멜로디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악보를 외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연이 다가오면 항상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지요.”

김 씨의 평균 퇴근 시각은 자정. 준비할 일들이 밀릴 때에는 새벽 4시까지 연습하다 귀가할 때도 있다.

기획공연은 평균 2시간, 길게는 2시간30분짜리도 있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공연 때의 긴장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특히 새로운 내용을 발표하는 기획공연이나 정기공연 때에는 막이 오르기 전부터 바짝 입이 마른다.

긴장한 나머지 엉뚱한 실수가 터질 때도 있다. 김 씨 자신만 해도 언젠가 본공연이 시작되기 전 수십 명 전체가 정좌한 채 무릎에 악기를 놓고 연주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실수로 혼자서 불쑥 대금을 들어올렸다가 아차 싶어 슬그머니 다시 내려놓은 일도 있었다. 관객들은 웃었지만 본인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완벽하게 외고 있던 악보가 머릿속에 하얗게 지워지면서 앞이 캄캄해진 적도 있다. 연주자에게는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억울한(?) 천재지변이다.

“분명히 저는 악보를 외었는데, 그렇게 한순간에 무대가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릴 때 너무나 괴롭지요.”

‘때아닌 솔로’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소동도 치렀다. 공연 도중 다른 단원들은 악보대로 연주를 멈춘 사이, 이를 깜빡 잊어버린 김 씨는 혼자 계속 대금을 불다가 본의 아니게 ‘솔로’가 되어버렸다.

그 바람에 자신의 실수가 확실하게 탄로나고만 김 씨. “그 순간 온몸에 식은 땀이 흘렀다”고 말한다. 모두 초년병 시절에 겪은 일들이다. 공연이 끝난 뒤 김 씨는 시말서를 써야 했다.

깜빡 잊고 복두(정악단의 전통 의상 중 일부인 공연용 두건)를 안 쓴 채 무대에 올랐다가 공연 내내 달랑 혼자 맨머리로 앉아 진땀을 뺀 한 동료 단원의 ‘전설’도 자자하다. 일단 무대에 입장하고 나면 연주자는 공연이 끝나기 전 그 어떤 이유로도 무대를 떠날 수 없다.

“그 동료요? 역시 시말서를 썼지요(웃음). 관객들 눈에는 단지 재미있는 해프닝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아주 심각하고 괴로운 실수죠.”

대금은 국악기 중에서도 인체에 가장 고통을 주는 악기다. 연주 자세부터가 심상치 않다. 내내 목을 왼쪽으로 튼 채 입과 양 손가락들로 대금의 취구(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구멍)와 지공(손가락을 대어 연주하는 소리구멍)을 각각 막거나 떼었다 하며 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보기에는 멋스러운 이 특유의 자세가 갖가지 고질병을 남몰래 불러온다. 목과 어깨, 척추, 팔, 손가락 등에서 만성 통증을 느낀다. 심하면 목뼈와 척추가 한쪽으로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근육통과 신경통은 대금연주자들의 일반적인 증세. 때로는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이도 있다. 김 씨 역시 한때 팔꿈치의 ‘엘보’ 증세까지 생겨 치료받은 적이 있고, 요즘도 장시간 연습하다보면 팔꿈치 주변이 시리고 아프다.

피부가 약한 경우, 연습이 조금만 과할 때면 취구에 대는 입술이 습관처럼 짓무르고 터지기도 한다. 지공을 막는 부분의 손가락 살도 굳은 살이 박히다 못해 뼈처럼 볼록 튀어나와 있다. 연주가 오래 계속되다보면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심하면 근육과 신경의 감각이 마비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공연 도중 손가락 마비로 연주를 하지 못한 때도 있다. 대금 연주자들의 일반적인 직업병이다.

“하지만 그런 통증이나 스트레스도 오히려 대금 연주를 하면서 함께 해소됩니다.

음악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그 정도의 고충은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도지요. 악보 하나하나를 차츰 완벽히 외어가는 것, 대가인 원로 선생님들의 길에 조금씩 근접해간다는 것, 그런 배움의 기쁨과 성취감이 큽니다.

특히 저희를 최고의 연주자로 바라봐주는 사회적 인식이라든가 특히 해외공연 때 우리가 국가를 대표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저희의 버팀목이기도 합니다.”

김 씨는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 1997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했다. 현재 서울대와 한양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는 한편, 서울대 대학원의 박사과정을 밟으며 서울대 출신 대금연주학 박사 제1호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이수자이자, 국악과 양악을 접목하는 실험적인 음악인의 모임 ‘현대음악 앙상블’의 일원으로도 활동중이다.

김 씨를 비롯한 국악원 단원들은 신분상 공무원이 아닌 계약직 형태다. 입단 시 경쟁도 치열하지만, 입단 후에도 2년마다 한 번씩 정기 오디션을 거쳐 재계약 여부를 판정받는다. 국립국악원의 경우 경력 10년차의 연봉이 약 3,600만원 선이다.

1주일 중 일요일과 월요일, 이틀을 쉴 수 있으며, 여느 직장에서 보기 어려운 ‘평생 가족과 같은 끈끈한 동료애’가 형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음악인으로서의 ‘정상 정복’을 꿈꾸는 이들에게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김 씨가 그러하듯이.

“나태해질 수가 없습니다. 옆방에서 연주 소리가 나면 은연 중에 자신의 실력과 비교를 하게 되거든요. 그것이 한편으로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스트레스 덕분에 스스로 더욱 분발하고 연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도 행복한 일입니다. 뛰어난 선배들, 넘볼 수 없는 경지의 원로 선생님들의 연주소리를 들으며 내 연주를 깎고 다듬을 수 있다는 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행운이지요.”

< 프로 국악연주자가 되려면 >

대개 결원 시에만 공채한다. 국립국악원의 경우, 별도의 서류전형 절차 없이 오디션과 면접시험을 통해 채용한다. 고졸 학력 이상, 만 40세 이하 누구나 응시 가능하며, 오디션 때의 실기 실력이 당락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소득 면에서는 방송사 소속 국악관현악단이 더 유리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주로 창작음악 위주의 국악을 다룬다. 각 지역마다 국악단이 많이 창단되어 있어 취업의 기회는 비교적 넓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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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