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 되찾는다

서울 신당동의 좁은 골목길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음식점은 점심시간이면 몰려든 인근 직장인들로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붐빈다.

선원(禪院)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곳은 사찰요리 개념을 도입해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야채 위주의 식사 메뉴를 선보이는 이른바 ‘웰빙 음식점’이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오기까지 평균 20분 정도 소요되지만, 한꺼번에 주문이 몰리는 날이면 40분 이상 기다리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느린 서빙’에 짜증을 부리는 고객은 없다. 고객들은 흘러나오는 편안한 명상음악을 배경으로 함께 온 동료들과 차분히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기다린다. 2005년 10월에 문을 연 ‘벗’은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며 먹자’는 모토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한 박자 천천히 사는 게 빠른 것보다 안전하고, 손수 만든 음식이 일시적으로 혀를 자극하는 인스턴트식품보다 건강에 좋고,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것이 당장의 허기를 채우는 것보다 낫다는 것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후미진 골목에서 문을 연 지 2년도 채 안된 이곳이 입소문을 타고 몰려드는 단골손님들로 자리가 연일 꽉 차는 게 아닐까.

“삼청동에서 가장 잘되는 음식점이 어디냐”고 물으면 ‘소선재’를 꼽는 이들이 많다. 2004년 여름 ‘조앤리의 밥집’이라는 상호로 문을 연 이 음식점은 문을 열자마자 마니아 고객들이 생기고 언론에 소개되는 등 화제가 됐다. 얼마 전 상호를 ‘조앤리의 밥집’에서 ‘소선재’로 바꿨다.

소선재는 10년 넘게 경기도 광릉수목원 근처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조 씨의 부인과 이 씨의 부인이 의기투합해 오픈한 한식점으로 산야초와 싱싱한 문어 등 자연식자재와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고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린 조리법으로 웰빙 바람에 힘입어 큰 인기를 모았다.

메뉴로는 남편들이 포천에서 직접 뜯은 야생초로 무친 상큼하고 쌉싸래한 야생초 샐러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약 된장국, 직접 개발한 효소를 넣고 삶은 곰취보쌈, 맑은 새우탕, 영덕에서 산 채로 잡아 온 문어로 만든 문어숙회 등이 있다.

음식은 감칠맛보다는 정갈한 맛이 나며, 먹고 나면 속이 깔끔하고 편해진다. 나무로 지어진 한옥건물은 먹는 이의 편안함을 더해준다.

유명 셰프를 영입하고 화려한 실내장식과 광고비에 돈을 쏟아 붓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마당에 사찰음식점, 채식전문점, 유기농 레스토랑 등 웰빙을 컨셉으로한 음식점들이 입소문으로 꾸준히 호황을 누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웰빙 욕구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매출감소로 인한 고민 끝에 호밀빵이나 저칼로리 햄버거, 유기농 야채를 사용한 샐러드를 출시하고 있으나, 등을 돌리는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가공식품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일종의 사회적 강박관념으로 확대됐을 정도다.

1986년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가 진출한 것에 분개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패스트푸드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시작된 슬로우 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의 획일화된 맛에 반기를 들고 정성이 담긴 전통음식을 먹으며 잃어버린 미각을 되찾아 건강해지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런 슬로우 푸드의 특징은 자연친화적인 유기농 재료를 사용하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데 있다. 제철의 식자재를 사용하는 슬로우 푸드는 깡통 속 재료를 사용해 만든 인스턴트 요리를 먹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음식의 대량생산으로 먹거리는 풍부해졌으나 제대로 된 맛과 영양을 보급하는 데는 실패한 현대인의 식생활이 슬로우 푸드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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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화 뚜르드몽드 기자 ericwint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