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몇 세부터 노인이라고 말해야 할지 헷갈릴 때가 많다.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신 때문인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60세가 돼도 주름살이 거의 없고 70세라고 해도 허리 굽은 분들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늘 사이좋게 한의원에 오시는 단골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진찰실에도 늘 같이 들어오셨다. 그래서 문진 중간에도 거칠 것 없이 곧잘 끼어들어 대신 대답도 하시는 재밌는 할머니들이었다.

그냥 사는 얘기를 나누는 재미로 한의원에 오실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편하게 말벗이 되어주곤 한다. 말벗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치료 효과가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할아버지하고 다시 부부로 살고 싶으세요?”

“아니!”

슬쩍 물은 질문에, 좀 고민을 하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바로 단호하게 답이 나온다.

“그럼 다음엔 어떻게 태어나고 싶으세요?”

“담엔 이~쁜 여자로 태어나 맘껏 사랑받고 살고 싶어. 아이구, 내 팔자야. 어쩌다가 우리 영감 같은 이를 만났는지. 지금도 다른 노부부들이 다정히 손잡고 다니는 것 보면 부러워 죽겠어. 사실 새끼들만 아니면 지금이라도 이혼하고 싶다고.”

“예? 이혼이요? 아니 그러면 자식이 커서 신경을 안 써도 된다면, 이혼하고 또 다른 멋진 남자친구라도 사귀어보고 싶으세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집 영감은 평생 사랑해줄 줄을 몰라. 내가 마흔을 넘어선 이후로 한 번도 ‘사랑’을 못해봤어. 남들은 칠십이 돼서도 사랑을 그렇게 잘 해준다고도 하더만.

며칠 전 아침에 TV 방송 못 봤어? 밤에 칠십 넘은 친정부모 방에 노크 없이 들어갔더니 아니 노인들이 사랑을 하고 있더라잖아. 그러니까 남자 하기 나름이라고. 우리집 영감은 술 마시고 소리나 지르고 욕이나 할 줄 알지 뭐.“

“나도 똑 같은 생각이야. 마흔 넘어서는 영감이 나를 한 번도 안아준 적도 없어. 애기 낳으려고 잠자리했지 뭐. 지금도 키 크고 멋진 영감이 할멈의 손을 잡고 가는 걸 보면, 저 여자는 뭔 복이 저렇게 많을까 하고 부러워. 그런 남자랑 사랑 한 번 해보고 싶어. 자식들 보기 창피해서 이혼 안하고 살지, 나도 다음엔 이쁜 여자로 다시 태어나 공부도 좀 더 하고,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어.”

“언니, 우리 이제 찜질방에 갑시다. 원장도 <죽어도 좋아> 그 영화 한번 봐봐. 사랑은 역시 남자 하기 나름이야. 우리집 영감은 사랑해줄 줄을 몰라. 자, 이제 일어납시다.”

‘사랑해줄 줄을 몰라’라는 말이 긴 여운을 남기고 귓전에 맴돌았다.

사실 대화가 이렇게까지 진행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69세와 67세 할머니들이 심지어 지금이라도 다른 남자랑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다니….

‘노인들의 마음도 우리와 똑같구나’,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구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노인들도 꾸준히 몸관리를 잘한다면 얼마든지 장년들 못지않게 성생활의 기쁨을 누리면서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부모를 봉양할 때 노인들도 장년 때처럼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중요한 효도구나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노인의 삶에 있어서 성은 근원적 에너지의 고양을 일으켜, 활기차게 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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