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글우글' 세균과 함께 사는 세상가정·사무실·화장실 등은 세균들의 스위트 홈, 청결한 개인위생이 세균 이기는 왕도

일러스트 정우열, 해피니언 출판사 제공
영화 <에비에이터>의 실존 인물이었던 전설적인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1905~1976)의 삶은 실제로도 영화 같았다. 약관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됐고, 미국 항공기 산업을 개척했으며, 당대 최고의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다.

화려한 로맨스로도 유명하다. 영화 배우 뺨치는 수려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까지 지녔던 그는 캐서린 햅번, 에바 가드너 등의 여배우와 사랑을 나눈 ‘완소남’이었다.

그러나 이 영웅도 세균 앞에서는 한없이 작았다. 가히 지독한 ‘세균 공포증’의 지존이었다. 화장실 문은 다른 사람이 열어주지 않으면 손도 대지 않았고, 흰 장갑을 낀 직원들이 건내준 서류만 읽을 정도로 극도의 강박증을 보였다.

급기야 말년에는 진공 유리관에서 은신하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세균과의 전쟁’을 평생 이어갔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또한 잘 알려진 ‘세균 민감족’이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멋지게 악수하며 웃음 짓는 부시 대통령의 뒤에는 손 소독제를 든 비서가 항시 대기한다.

공중 시설의 문을 팔꿈치로 연다는 캐머런 디아즈와 틈만 나면 항균 비누로 손을 씻는다는 미식 축구 선수 랜드 모스도 유별난 수준의 세균 혐오족이다.

이렇게 세균과의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이들은 비단 미국인만이 아니다. 이 정도의 세균 공포증은 아니더라도 근래 들어 세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굿바이 세균>이란 세균 탈출법에 관한 책을 펴낸 ‘해피니언’ 출판사는 블로그를 통해 이색적 이벤트를 진행한 바 있다. “세균 민감족 나도 봤다” 혹은 “내가 바로 세균 민감족이다”에 관한 사연을 공모한 것. 그 결과 이벤트 기간에 무려 360 여 건의 사연이 올라왔다.

“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르는 어떤 할아버지께서 다가와 ‘아이고, 이뻐라’ 하며 아이 볼을 쓰다듬어 주시는데, 정말이지 다가오실 때부터 움칠했던 나의 모습과 관리 안 되는 표정으로 인해 그 할아버지께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것은 아닐까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연신 아이의 볼을 제 손으로 닦아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감기에 걸려 기침을 콜록콜록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슬금슬금 멀어지는 걸 보았다. 그래서 ‘너 왜 그래? 이리와’ 했더니 손수건 같은 걸 얼굴에 감더니 제 옆에 오더군요.”

■ 일상생활 속 세균 탈출법에 높은 관심

바야흐로 세균 민감족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세를 불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이벤트를 진행했던 해피니언 출판사 이현정 전략기획팀 팀장은 “최근 들어 세균에 민감한 이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이래서 어떻게 살아’ 하며 놀라워하는 반응들이 속속 올라오는 한편, 암 투병 등 주변에 환자가 있던 경우나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 속 세균 탈출법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현대인들은 왜 이토록 세균에 민감하게 됐을까. 세균은 그토록 우리 생활을 위협하는 존재일까.

우선 세균학 박사이자 자칭 세균 민감족 엄마라는 앨리슨 젠스가 함께 펴낸 <굿바이 세균>을 통해 일상 속 공포의 주범인 세균의 실체를 들여다 봤다. 실상은 예상 외로 충격적이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우리의 안락한 가정은 세균들에게도 스위트 홈이다. 가정에서 세균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곳은 행주와 수세미, 싱크대 배수구, 수도꼭지 손잡이, 문 손잡이 등의 순인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주방용 수세미에는 720만 마리의 세균들이 살고 있고, 90%의 주방 개수대에는 살모넬라균이 증식하고 있다고 한다.

도마 역시 세균이 우글거리는 공간이다. 찰스 거바 박사는 “도마와 변기 깔개 중 무엇을 핥을지 결정해야 한다면, 차라리 변기 깔개를 선택하라”고 말할 정도로 세균 덩어리라는 것이다.

화장실도 가정 내 세균의 주 위험지대다. 물기가 많은 화장실에서는 박테리아 1개가 밤새 10억 개로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세면대는 매주 살균 소독하고, 수건은 식구 한 사람마다 별도의 수건을 사용하는 것만이 지긋지긋한 세균을 조금이나마 죽이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직장도 세균의 안전 지대일 순 없다. 어찌 보면, 세균이 우리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공간일 수 있다고. 평균적으로 1평방인치마다 발견되는 세균들의 숫자는 전화수화기 2만 5,127마리, 컴퓨터 2만 961마리, 컴퓨터 키보드 3,295마리 수준. 변기 깔개에 평균 약 49마리가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 오염의 심각성에 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세균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찰스 거바 박사는 “손을 씻고, 살균 세정제를 사용해 사무실과 책상을 닦는다면 약 25%의 박테리아를 감소시킬 수 있다”며 “하루에 한 번 정도만 청소하면 충분하다”고 권고했다.

국내 전문의들이 말하는 세균 탈출 노하우도 이와 일치한다. 여름철 대표적인 세균 질환인 식중독의 경우 손 씻기만 철저히 해도 90%는 예방이 가능하다. 물론 이때는 어떻게 씻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대략 손을 씻은 전후 균의 잔존 정도는 손을 안 씻었을 경우 60%, 물로만 씻었을 때는 40%, 비누로 씻었을 때는 20% 정도가 남는다고 한다.

또한 손 씻기의 방법 못지 않게 자주 씻는 것이 권장된다. 고대 구로병원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 몸의 균은 씻어내도 30분 정도가 지나면 2배 이상으로 재증식이 가능하다”며 “따라서 식사 전후나 외출 전후 등 수시로 손을 씻는 것이 일상생활의 청결을 유지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 면역력 강화시켜 세균 이겨야

면역력 강화도 세균을 이기는 좋은 방법이다. 김우주 교수는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배탈이 나고 어떤 사람은 괜찮은 것은 얼마나 면역력이 있는가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면역력 증강의 방법으로 <3일만에 읽는 면역>(서울문화사)이란 책에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인용돼 있다. 1960년대 초 로버트 구드라는 의사가 실험한 ‘최면이 면역력 강화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서다.

실험은 최면 상태의 환자 양팔에 알레르기 환자의 혈청을 주입한 후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론상 양팔 모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암시를 걸었다. "한 쪽 팔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고, 다른 쪽 팔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과는 그랬다. 의사의 암시대로였다.

마음가짐 여하에 따라 면역력이 강하게도, 약하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마와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 세균의 증식이 우려되는 이즈음, 막연히 세균을 두려워하거나 극단적인 청결주의에 빠지기보단 기본적인 청결 습관을 유지하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이 외려 효과적일 수 있다.

어차피 세균이 없는 공간에서 살 수 없다면, 조화로운 공생법을 모색해보는 것도 편안하게 살아가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세균공포증 (맥베드증후군)
세균에 대한 감박관념, 지나치면 해롭다

“아기에게 균을 옮기면 어떡해요? 두려워요.”

올 봄 서울의 한 정신과병원을 찾은 주부 A씨. 그녀가 극단적인 세균공포증에 빠지게 된 과정은 혐오스러운 세균의 모습이나 위험성을 지나치게 확대 광고해온 항균성 제품 업계와 미디어의 폐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씨는 최근 인공수정으로 결혼 5년 만에 귀한 아기를 얻은 엄마. 어렵게 얻은 아기였던 만큼 보살핌이 남달랐던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우연히 아기를 안고 대형 슈퍼마켓에 갔다가 “손의 세균을 보여주는 프로모션”에 참여한 것이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다. 자기 손에서 끊임없이 번식하는 세균을 보고 소스라치게 경악하고 만 것이다.

이후로 A씨의 육아법은 크게 달라졌다. 아기 변을 치우지 못해 쩔쩔 매는가 하면, 한 번 입힌 아기 옷은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급기야는 안을 수도 없게 됐고, 아기와 딴 방을 쓰게 됐다. 손을 진물이 흐르도록 씻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강박증의 일종인 세균공포증. 소위 ‘맥베드증후군(맥베드 부인이 살인 후 손을 반복적으로 씻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평범하던 사람들이 세균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는 증상은 비단 A씨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우리나라 국민의 약 3~5%가 이러한 세균 공포로 인한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평소 꼼꼼하고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병은 이러한 자신의 행동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환자 본인이 인식하면서도 행동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 주된 증상이다. 드물게는 병이라는 것조차 인식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름이면 기승을 부리는 집단 식중독이나 전염병 등의 발병 소식이나 황사, 사스 등도 이러한 세균 공포증의 늪에 빠져들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김 원장은 “지나친 의학적 정보가 환자에게 병이 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이러한 세균 공포증은 “점점 불안해지고, 잠도 못이루는 등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다가 우울증에까지 빠져들게 할 수 있다”며 “증상에 따라 심리치료와 약물 치료 등으로 마음 속의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도움이 필요한 세균 민감족 체크 리스트

세균에 대한 민감이 자칫 공포로 발전한다면 도리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아래 문항을 읽고 해당되는 것에 체크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지나침은 없는지 확인해보자.

- 당신의 깔끔함이 업무에 방해가 된다

- 당신의 습관이 결혼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 혼자 있을 때는 세균 생각을 한다

- 당신의 지나친 깔끔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토를 단다

- 세균과 관련된 자신의 행위를 감추려고 한다(예: ‘옷 소매로 화장실 문손잡이를 잡으면 눈치채지 못하겠지’ 등)

- 당신의 지나친 깔끔함이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손 세정제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손이 따끔거린다 등)

이 중 한 문장도 해당되지 않으면 당신은 매우 상식적인 중도파 세균 민감족이다. 2개 미만에 해당된다면 자신의 행동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3개 이상이면 중증이다.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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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