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대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편리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만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흔히 이상적인 부부 관계를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말에는 좀 위험한 면이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 아내를 마치 자신의 분신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들이 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부인들도 있지만, 남편들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이들은 자기 배우자가 나름대로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혼자서 주말 계획을 미리 세워놓고서 부인이 다른 선약이 있다고 하면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화를 낸다. 또 자신이 퇴근할 때 부인이 집을 비우고 있으면, 혹시 바람이라도 난 것이 아닌지 안절부절 못한다. 자신이 필요로 할 때는 부인이 항상 응해주어야 하지만, 부인의 요구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화를 잘 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도 일삼기 때문에 이들은 대단히 강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오히려 자신감이 부족하여 배우자에게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걸핏하면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화를 내곤 한다.

이혼을 하겠다고 위협하지만, 막상 상대 배우자가 응해오면 이제 당신의 진심을 알았다며 몰아세우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룬다.

반대 현상을 보이는 경우는 여성들에게 많다. 이런 부인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남편을 ‘아빠’라고 부르며, 자신은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처럼 보인다.

자신만의 의견이나 개인적인 욕구는 전혀 없는 것처럼 남편의 말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까와 하지 않는다. 이런 부인들은 남편의 출세와 자녀의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것 같다.

만약 남편이나 자녀가 다른 사람과 다투게 되면, 누가 옳고 그른 것과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 가족의 편에 선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조금이라도 고칠 점을 지적하면 심하게 상처를 받으며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다. 이들의 숨겨진 모습이 드러나는 것은 남편이나 자녀가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은근한 간섭에서 벗어나려 할 때다.

이럴 때면 이들은 심한 상실감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급격히 쇠약해져서, 결국 가족들은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어진다. 겉으로는 전형적인 순종형의 현모양처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약점을 무기로 하여 남편과 자녀들을 조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부인들이 위에서 말한 성격의 남편과 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마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천생연분이라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상대지만, 이들의 애정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그 사랑은 상대를 통해서 내가 최고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동안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도 오랜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의 기대대로 응해주지 않을 때에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내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이들은 자신의 욕구가 좌절되는 것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료실을 찾아오는 경우는 어느 한 쪽이 외도를 하거나, 심한 우울증에 빠져있을 때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보면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부부치료와 별도로, 부부 각자의 인격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개별 치료도 병행하게 된다. 치료를 통해서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서로의 약점을 깨달아 서로를 도와줄 수 있게 되면, 보다 건강한 가정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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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