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서 살지 못하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바다집시. 지구상에는 세군데 지역에 이 바다집시들이 나뉘어 살고 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 안다만해의 모켄(Moken)족, 필리핀과 보르네오 국경, 술루해의 바자우(Badjau)족,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섬 모잠비크해의 베조(Vezo)족이 그들이다.

세 군데의 바다집시들은 생활양식과 민속이 비슷한 점이 많아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원래 고향이던 말레이시아 해변으로부터 몬순에 의해 생겨나는 취송류를 타고 멀리 아프리카까지 이주해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바다집시는 보통 산호초 지대의 얕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지만 건기에는 배를 타고 먼 바다까지 나가 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우기에는 작은 섬의 해변에 지어놓은 집에 머물며 몬순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안다만해의 바다집시 모켄족은 쓰나미를 피해 살아남아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부족이다. 쓰나미는 바다집시들에게 전설로 내려오던 대재앙이었다.

“잔잔하던 바다가 갑자기 물러나면 큰 파도가 돌아와 섬을 삼킬 것이다”

쓰나미가 있던 날, 모켄족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온 바다에 대한 탁월한 예견으로 해일이 닥칠 것을 짐작하고 산으로 대피하여 인명 피해를 내지 않음으로써 전 세계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쓰나미는 그 후 바다집시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바다가 위험하다고 하여 태국 정부에 의해 육지의 난민 캠프로 소개된 이들 모켄족은 본토에 남으려 하는 젊은 층과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연장자 층 사이에 세대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육지의 새로운 문화를 경험한 젊은이들은 고달팠던 바다의 기억을 잊으려는 반면에 바다만 바라보고 살아온 기성세대는 답답한 육지를 벗어나 삶의 터전인 바다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옛날에 모켄은 가옥형 배인 카방을 타고 안다만해 메르구이 제도의 해안선과 다도해 일대를 돌아다녔다. 카방은 모켄에게는 집이고 교통수단이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몇 대의 카방을 보면 밑바닥은 하나의 커다란 통나무를 잘라 만들고 양편에 널빤지를 붙여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그처럼 큰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카방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카방은 인체를 형상화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배의 각 부분을 부르는 명칭에 인체의 기관 이름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가슴(la-kae), 볼(ta-bin), 목(tu-koh), 어깨(ba-hoy), 갈비뼈(ta-bing) 등이다.

바다를 떠돌며 카방에서 살아가던 모켄들은 죽어서야 육지에 묻힌다. 다음 생에는 뭍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모켄들의 말에는 “원한다”는 단어가 없다. 필요할 때마다 바다에 들어가 자신들이 먹을 만큼만 잡고 필요한 양 이상으로 고기를 잡지 않는다.

바다집시들은 바다 건너 육지 세상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그들만의 삶을 이어왔다. 우기와 건기가 끊임없이 순환하듯 바다와 섬을 오가며 자유롭게 살아온 모켄족. 그러나 수천년간 이어져 내려온 이들 바다집시들의 삶의 양식이 언제까지 이처럼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3- 작살로 잡은 고기를 내보이는 바다집시 남자.
4- 바다 속으로 잠수하여 사냥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남자들.
5- 바다집시의 이동형 가옥인 카방을 몰고 바다로 나가는 가족. 한번 배를 몰고 나가면 한달씩 물 위에서 생활한다.
6- 추석날 밤, 보름달빛만으로 촬영한 수린섬 바다집시 마을의 야경. 원래 이들의 집은 수상에 지어졌으나 쓰나미 이후 해안선 뒤로 옮겨졌다.




박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