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서점 사진집·만화책 등 특화… '고서축제' 열려

도쿄 진보초 전철역 일대는 세계적인 고서점 거리이다. 지금은 치요다구로 들어갔지만 원래 간다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곳은 흔히 ‘간다(神田) 고서점가’로 불린다.

도쿄 토박이들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간다 지역에는 1백여년 전 메이지 시대에 도쿄 대학을 비롯한 학교들이 여럿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레 수많은 서점들이 몰려들게 되었다. 몇 개의 대학들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했지만 아직까지도 진보초 역을 중심으로 헌 책을 다루는 서점들이 150여 군데 남아 있다.

고서점 마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 헤이온와이의 헌책방 수가 40여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진보초에 있는 헌책의 어마어마한 양을 가늠할 수 있겠다. 서점의 위치와 취급분야를 적어놓은 지도가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진보초에는 헌책방뿐만 아니라 많은 출판사와 신간서점도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에서 문고판 독서 붐을 일으켰던 출판사 ‘이와나미(岩波) 북센터’를 비롯해 1881년에 개점한 산세이도(三省堂) 서점 등이 모두 진보초에 터전을 둔 회사들이다.

헌책방이야 서울의 청계천에도 있었고 부산 보수동에도 많이 남아 있지만 진보초의 고서점과 우리나라의 헌책방이 다른 점은 이곳의 서점들이 각각 특정한 전문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집이나 희귀 지도만 취급하는 서점이 있는가 하면 온갖 만화책만 쌓아둔 곳도 있다.

어떤 장르를 다루든 책을 대하는 주인들의 자세는 진지하기 짝이 없다.

진보초 고서점가 어느 가게를 들어가봐도 주인들이 정성들여 헌 책을 손질하는 장면과 쉽게 마주친다. 낡은 책이 들어오면 먼저 솔로 먼지를 털어낸 다음 마치 갓난아기를 돌보듯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가며 정성들여 손때를 닦아낸다. 청소가 끝나면 붓으로 책의 제목과 가격을 써서 띠를 두른다. 아무리 낡은 책이라도 붓글씨가 적힌 책띠를 두르면 그럴듯한 모습으로 타시 태어나게 된다.

비로소 헌책이 새로운 주인을 맞을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이 지극정성으로 책을 아끼다보니 진보초의 책방에 진열되는 책들은 비록 헌책일망정 고급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 주에 진보초 헌책방 거리에서는 무려 100만권이 넘는 서적이 선보이는 ‘고서 축제’가 열린다. 10월 27일부터 1주일간 열리는 이 행사는 올해로 49회째를 맞는다. 축제 기간 중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서 평소의 절반 가격으로 책을 구입하고 희귀본 경매에도 참가하게 된다.

반면에 세계10위권 출판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선 헌책방이 점점 모습을 감추고 있다. 절판된 책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그 책을 만들어낸 출판사에서도 구하기가 어렵다. ‘책읽기의 계절’ 가을.

책을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도쿄 진보초 거리에서 점점 볼품이 없어지고 있는 서울과 부산의 헌책방 거리를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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