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훈장달고 13년간 닦은 길…시간과 파도의 설치미술 포트캠벨 백미

호주 빅토리아주 해안을 끼고 달리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멜버른 아래 토키(Torquy)에서 와남불(Warrnambul)까지 바닷가 절벽을 깎아서 만든 214km 길이의 해안도로다.

길이 닦이기 전까지 이곳은 인간의 발이 닿지 않았던 땅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들이 대거 돌아왔을 때다. 갑작스런 노동인력의 증가로 경기는 불안해졌고,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일종의 뉴딜정책인 해안도로 건설이다. 퇴역 군인들이 가슴에 훈장을 달고 13여년 삽과 고괭이로 파내 닦은 길이다. 워낙 험한 코스라 공사중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기대와 달리 왕복 2차로의 좁은 길이다. 구불구불한 길의 일부 구간에서는 30~40km의 속도에 만족해야만 한다. 이 길에 붙여진 ‘그레이트’는 길을 닦은 그들 선조의 희생에 대한 호주인들의 경외심의 표현이다.

5- 무너진 런던브리지.
6- 백사장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호주인들.

토키에서 론(Lorne)을 거쳐 아폴로베이(Apollo Bay)까지는 하얀 백사장과 평화로운 어촌 마을이 차창과 함께 달린다. 우리 동해안의 옛 7번국도와 비슷한 풍경이다. 마치 4B연필로 자를 대고 반듯하게 그어놓은 것 같은 너무나 선명한 수평선이 인상적이다. 하늘과 바다를 완전히 가른 그 선은 가까운 남극에서 불어 온 청정한 공기 탓에 뚜렷하게 보인다.

토키와 론 사이에 있는 벨스비치는 세계적인 서핑의 중심지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폭풍속으로>의 무대였고, 유명한 립컬 세계 서핑대회가 열리는 곳이다.

포트캠벨(Port Campbell) 인근이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하이라이트다. 깎아지른 직벽의 해안과 그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많은 섬들이 이룬 장쾌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시간과 파도가 이뤄낸 거대한 설치미술이다.

워낙 물살이 거센 곳이라 이 근방에서 난파된 배가 160여 척이 넘는다고 한다. 영국에서 출발한 배들이 아프리카 희망곶을 돌아 목적지인 멜버른에 닿기 직전, 이곳에서 항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다 닻도 뽑아버리는 거센 파도에 휩쓸렸다고 전한다.

바다 위에 비죽 솟은 바위가 12개라고 해서 예수의 제자 ‘12사도상’이라 이름 붙여진 곳이 최고의 절경이다.

12사도상의 절경을 감상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헬기투어다. 고작 10분이지만 90 호주달러의 비용이 아깝지 않다. 12사도상 외에 로크 아드 고지(Loch Ard Gorge), 런던브리지(London Bridge)의 풍경을 그레이트 오션로드와 함께 담을 수 있다.

런던브리지는 파도가 뚫은 구멍으로 2개의 아치 모양을 하고 있어 그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91년 뭍과 붙어있던 한쪽 아치가 무너지면서 이제는 아치 하나인 섬으로 남았다.

로드 아크 고지엔 난파선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1878년 이곳에 50여명의 이민자를 실고 온 범선 ‘로크 아드’호가 침몰했고 남자 하나, 여자 하나, 단 두명이 협곡 안의 모래사장으로 떠밀려 왔다고 한다. 목숨을 건진 이들이 협곡 안 동굴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구조되면서 이 협곡이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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