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發 우려에 ‘가격인상’·‘구조조정’ 명분 얻는 대기업

美 트럼프 대통령,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 제출받아… 한·중 철강 수입제재 나설 가능성↑

좁아질 대미 수출길·중국산 철강재 공급 감소… 현대제철·동국제강에는 호재(?)

원자재 가격상승에 구조조정 명분까지 생겨… 일부 과점기업에 우려보다 긍정적 상황 이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의 발동을 결정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연합)
한민철 기자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 가능성이 커지며, 국내 철강의 미국 수출량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심지어 과거 주요 철강 수출국이었던 중국마저 최근 자국 내 철강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국내 철강 업계의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이런 미국과 중국 양측에서의 압박이 일부 과점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내 철강 업계에 우려가 아닌 회심의 미소를 자아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무역확장법 232조’와 관련된 보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지난 1962년 미국 산업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조항으로, 미국 내 특정 수입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추가 관세 부과나 수입 물량 제한, 세이프가드(SafeGuard·긴급 수입제한 조치) 등을 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미 상무부가 트럼프 대통령에 제출한 무역확장법 232조 보고서에는 수입 철강이 미국의 경제 및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 결과가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보고서의 구체적인 내용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대미(對美) 주요 철강 수출국들의 덤핑과 불법 보조금 지급, 철강 공급과잉 등으로 인해 국내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 그리고 이들 국가에 적용할 수 있는 수입 제재와 관련된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앞서 지난해 4월경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상무부 장관에 철강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로부터 이 보고서를 제출받은 후, 관련 규정에 따라 보고서 내 적시된 물품이 국가 안보에 위협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90일 내에 수입규제 여부 등을 결정해야 한다.

물론 무역확장법 232조는 지난 1962년 신설된 이래로 발동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철강 수입규제에 나선다면 글로벌 철강 시장에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보고서 내용을 이행할지는 미지수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내에서는 무역적자의 원인 중 하나로 철강 산업이 꼽히고 있고, 미군용 장비의 외국산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정치권 안팎으로부터의 압박이 큰 상태다.

특히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을 둘러싼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고, 최근 몇 년 간 미국 정부가 중국산 철강재에 대해 적용하고 있는 100% 이상의 고관세 부과 정책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아메리칸 퍼스트’를 내세우며 보호무역주의를 지향하는 트럼프 정부가 철강 수입규제를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국내 철강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예의주시하며, 다소 우려 섞인 관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보고서 내 철강 수입제재국으로 한국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무역확장법 232조 발동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철강시장의 대미 수출길이 좁아진다.

현재 국내 대미 철강 수출 규모는 전체 철강 수출에서 1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산 철강재를 이용한 완제품 수출량까지 포함한다면 그 비중이 더욱 커지는 만큼, 미국 수출 제재는 당연히 국내 철강시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철강시장이 수입규제에 포함된다면 관세 인상 및 수출 물량 제한 등 제재 범위나 수준이 과연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응방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발 우려 속에도… 현대제철·동국제강은 속으로 웃는다(?)

미국 발(發) 리스크로 예측 불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우려와는 다르게, 국내 일부 철강회사들은 ‘속으로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 더해 국내 철강시장의 의존도가 높은 중국 시장의 동향이 국내 대기업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측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발동한다면, 국내 철강업계들의 예상되는 첫 번째 행보는 당연히 생산량 감축 및 원가상승이다.

물론 각 국내 철강 제조사들마다 더욱 좋은 품질의 제품을 기획·생산해 미국의 규제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각 사들의 우선적 자구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국내 철강의 미국 수입규제 등은 자연스럽게 국내 주요 철강회사들은 소폭의 구조조정과 함께 가격상승의 명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명분을 강화시키는 데 중국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철강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2020년까지 1억 5000여만톤의 철강 생산량 감소를 목표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해 왔다.

지난 2016년부터 1만여만톤에 달하는 철강 생산설비의 폐쇄를 실행하는 가하면, 철강 생산에 강도 높은 환경규제를 가하는 등 생산량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이런 중국의 철강 공급과잉 해소 조치가 중국산 철강재 가격 상승 그리고 한국에 대한 철강 공급량 감소로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국내 철강업계들은 지난해부터 국내 철강 생산량을 일부 늘리고 가격인상의 명분을 만들며 수익성 개선이라는 반사이익을 봤다.

비슷한 시기 중국산 저가·부실 철강재의 국내 수입을 규제하는 산업표준화법 개정안이 발의되는 등 정치권에서도 중국산 철강재의 국내 유입을 제한하는 목소리를 내며, 사실상 국내 철강업계의 원자재 가격 상승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들이 미국 발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국내 철강시장의 큰 타격을 우려하고 있지만, 국내 철강시장을 과점하는 일부 대기업들은 속으로는 미소 짓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일부 철강업 관련 대기업들은 중국 발 영향 등으로 실적개선 및 주가상승의 이익을 보고 있다.

사실 국내 철강시장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그리고 동국제강 등 특정 대기업의 점유율이 절대적이다. 특히 철근 H형강의 경우 판매량의 60% 이상을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과점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 발(發)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국내 철강업 대기업들은 속으로 웃고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
때문에 앞서 언급한 산업표준화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철강업계 일부에서는 관련 개정법으로 중국산 철강재의 수입이 줄어들고 수입 철근에 부정적 이미지가 커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 일부 과점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지배력만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 대기업들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국내 철강재의 가격인상을 명분으로 건설비용이 불필요하게 높아져 소비자들의 부담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번 상황은 앞선 개정법안 발의 당시보다 일부 대기업들에 더욱 큰 호재를 예측하게 한다는 목소리다.

중국으로부터의 철강 공급량은 기존과 다르게 크게 줄어든 동시에 주요 철강 수입국 미국마저도 제재를 가하면, 국내 과점 기업들에게는 원자재 가격상승에 더해 구조조정의 명분까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연쇄 타격의 최종지인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고, 제품가에 거품이 끼면서 업계 내 소모적 분쟁마저 초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주요 철강 기업들마다 뻔히 보이는 ‘꼼수’를 지양하고, 제품의 질 향상에 보다 집중하는 한편, 정치권과 여론 역시 미국·중국 발 리스크보다 내부의 숨겨진 리스크에 보다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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