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소프트웨어산업 거점 떠올라…독일 ‘인더스트리 4.0’ 협력도 주목

2015년 인도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메이크 인 인디아' 슬로건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다.
13억 인구 대국 인도가 글로벌 경제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워가고 있다. 특히 인도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 취임 이후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 정책 등을 앞세워 정보기술(IT) 산업의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어 주목된다. 권기철 케이비즈 대표ㆍ인도 비즈니스 컨설턴트

최근 불완전한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인도에 혁명과 같은 일들이 잇달아 벌어졌다. 이 혁명의 시작은 인도 최대 기업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y)’가 2016년 9월 설립한 신생 이동통신사 지오(JIO)의 등장이다.

지오는 설립 1년 6개월 만에 무려 1억 7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고, 고객은 4G 통신 서비스를 기존 요금의 10분에 1에 불과한 월 4700원만 내면 매일 1GB 데이터와 무제한 음성 통화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오가 일으킨 혁명은 2016년 세계 155위(62MB/월)였던 인도의 1인당 데이터 사용량 순위를 1년 만에 단숨에 세계 1위(1.6GB/월)로 끌어올렸다. 지오가 만든 데이터 혁명은 기존 통신사들의 파산과 합병이라는 작은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 증가라는 큰 변화를 만들어냈다. 또한 2018년 12월부터 시작되는 ‘지오 기가 파이버(Jio Giga Fiber)’ 유선인터넷 서비스도 기존 통신사 대비 속도는 높이고 가격은 대폭 낮춰 무선통신 서비스 때와 같은 빅뱅이 예상된다.

이와 같이 저렴한 통신료로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은 높였지만 볼 만한 콘텐츠는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콘텐츠 부족으로 유튜브 동영상에 삽입된 광고 시청률이 전 세계 최고 수준인 92%에 달하는 기현상도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인도에서 값싼 데이터로 인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쪽은 온라인 교육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다. 이들 스타트업 기업들은 매년 100% 이상의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은 2016년 11월 인도 정부가 갑작스럽게 시행한 화폐 개혁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함께 90%에 육박하는 현금 거래 비중을 줄여 부패를 일소하고 디지털 기반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모험이었다. 이 시도는 현재까지 순항 중이다. 화폐 개혁은 인도를 좀 더 투명한 사회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현금 사회’ 인도를 디지털 화폐 기반 경제로 급격히 이동시키며 블록체인, 핀테크 등 다양한 기술 기반 창업 광풍을 만들고 있다.

세 번째 사건은 2017년 7월 인도 건국 이후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상품용역세(GST) 통과다. GST는 기존 16가지의 복잡한 세금을 하나로 통합해 평균 2%P의 추가적인 경제성장 토대를 만들었다. GST 시행 여파는 물류 혁명으로도 이어져 물류 스타트업들에게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IT 기반 화물 운송 프로세스 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 ‘레츠’는 월평균 무려 27%씩 성장하는 등 물류 분야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네 번째 사건은 2017년 말 인도 인구 12억 명을 대상으로 세계 최대의 생체 인식 기반 주민등록제 ‘아다르(Aadhaar)’를 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다르는 홍채 인식 방식의 최첨단 기술로 순식간에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인도 방갈로르에 위치한 세계적 IT 기업 인포시스의 본사 전경

인도에서 잇달아 일어난 IT 혁명

그동안 개인 신원 확인이 어려워 운전면허 발급 및 은행 계좌 개설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은 이 기술 덕에 그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세금문제 등 부정을 줄이고 규칙에 기반을 둔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졌다.

홍채 인식 시스템을 국가기관이나 일반 광고회사들이 사용해 사회를 시스템화하고 개인화된 광고를 가능하게 만드는 미래 세계를 그린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이제 인도에서만큼은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홍채 인식만으로 은행 및 상업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고, 적절한 시행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소프트웨어(SW) 강국 인도와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 이유는 인도 IT 산업에 대한 정보와 사정에 밝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와 지식 없이 협업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인도가 먼저 손 내밀어 어떤 것을 같이 하자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도와 손잡으려고 하는 국가와 기업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빅데이터 분석 기업이 인도 ‘뮤 데이터’이고, 인도의 1000여 개의 빅데이터 분석 기업이 세계 빅데이터 분석의 3분의 1 이상을 담당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인도 스타트업 제닉AI가 2000만 건의 SNS를 분석해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맞혔다는 사실 등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2018년 7월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대비를 위해 ‘미래비전전략그룹’을 구성해 인공지능, 전기차, 헬스케어 협력의 거점을 마련하고 상용화 및 인도 시장 진출 기반 마련을 위해 뉴델리에 ‘한-인도 혁신협력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혁신협력센터 건립만으로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러한 조치는 애플의 창업정신을 본받자고 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창고를 모방해 만드는 것과 같다.

그간 인도를 방문한 한국 대통령들의 일정을 한 번 살펴보면, 왜 이 같은 언급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할 것이다.

#1. 문재인 대통령은 코빈드 대통령과 면담,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 등을 갖게 된다. 또 힌두교 앗샤르담 사원 방문과 간디 추모공원 헌화, 동포 간담회,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기조연설, 한-인도 당국기관 양해각서 교환식 등의 일정을 소화한다. (2018년 7월 언론보도)

#2.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인도 방문에서 만모한 싱 총리와 정상회담에 이어 프라납 무커지 대통령이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한다. 박 대통령은 한국 전통 공예 전시회 참석, 동포 간담회, IT 시장 개척 엑스포 및 ICT 비즈니스 간담회 그리고 한-인도 경제협력포럼 오찬 간담회 등에 참석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이다. (2014년 2월 언론보도)

#3. 이명박 대통령은 만모한 싱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동포 및 인도 진출 업체 간담회, 한-인도 경제인 오찬 등의 일정도 가질 계획이다. (2010년 2월 언론보도)

지난 10년 동안 인도를 방문한 세 대통령의 이름을 서로 바꿔놔도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인도는 13억 명에 달하는 거대 인구의 무한한 가능성과 정치적 상징성 때문에 한국 대통령이 되면 한 번쯤 의무적으로 방문하는 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문 대통령 방문에서 굳이 새로운 것을 찾자면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 사람 중심의 새로운 한국 경제를 만들겠다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만만치 않다.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 신규 취업자 수는 급감하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18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외적인 여건도 좋지 않다.

한국의 경제 상황이 이렇게 악화하고 있는 것은 지난 10년간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사회 환경의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워내기 위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작게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크게는 기술, 산업, 경제 및 사회구조를 바꿔놓을 거대한 흐름이다. 즉, 4차 산업혁명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2017년 8월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대통령 산하에 설치하고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내 현실을 돌아보면 암담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의 경우 국내 특허 수는 미국의 2% 수준이고 글로벌 선도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도 크다. 3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제조업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매출 의존도는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뒷받침할 소프트웨어 기술 분야는 인력과 기술 면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인도는 2017년 홍채 인식 기술을 활용한 주민등록제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인도와 전략적 협력 방안 모색해야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의 마지막 연결고리로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강조하고 ‘세계에서 소프트웨어를 가장 잘하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구호에만 그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의 인도 방문으로 새로운 비즈니스와 관계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했다면 그에 맞는 새로운 전략과 방향 제시가 필요하다. 즉, 한국과 인도가 가지고 있는 IT 강국이라는 공통점에 한국은 하드웨어, 인도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세계적 강점을 가진 IT 강국이라는 차이점을 시너지로 만들어야만 한다. 이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과 인도는 강점과 약점을 상호 보완해줄 수 있는 최적의 국가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다시 디자인해보면 어떨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독일의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제조업이 발달한 독일의 경우 정부가 사물인터넷(IoT) 등을 통해 제품 생산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인더스트리 4.0’ 정책을 통해 과거 기계 공업 중심의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하지만 인더스트리 4.0 기반으로 구현되는 ‘스마트 공장(Smart Factory)’ 시행을 위해서는 엄청난 소프트웨어 수요가 발생하는데, 독일 국내에서는 이를 감당하지 못해 시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10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함께 인도 방갈로르를 방문하여 ‘디지타이징 투모로우 투게더(Digitizing Tomorrow Together)’라는 이벤트를 만들어 참가했다.

독일이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4.0과 인도가 추진하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디지털 인디아(Digital India)’, 그리고 ‘스마트시티(Smart City)’ 프로젝트를 중심에 두고 인도와 독일의 연계 방안에 대한 구체적 발표가 있었다. 즉, 기술적 지향점과 철학을 공유하고 실용적인 공유점과 상호 보완점을 찾아내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방식이다. 하드웨어가 강한 독일과 소프트웨어가 강한 인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고 있는 보쉬, 지멘스, 메르세데스 벤츠, SAP가 ‘글로벌 인하우스 센터(GIC)’를 인도 현지에 설치했다. 특히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는 인도에서 약 2만 명의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해 독일 본사뿐 아니라 베트남, 멕시코 등 세계 각국 현지법인 등과의 글로벌 협업도 활발하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이제 인도를 활용하거나 인도와 협력하는 방법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권기철 케이비즈 대표ㆍ인도 비즈니스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