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최근 북한의 헌법 개정 내용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었다. 금번 개정 헌법(이하 2019년 북한헌법)은 지난 4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시 의결된 것이다. 그 이전 헌법(이하 2016년 북한헌법)은 북한의 제7차 당대회 직후인 2016년 6월 29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 시 의결되었다. 2016년 당시 북한 헌법 개정의 핵심 특징은 당규약 개정과 연동된 ‘김정은 시대 새로운 국가운영체계의 명문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2019년 북한의 헌법 개정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지면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근대 국민국가에서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운영의 기본 원칙을 총론적으로 표현한다. 한 국가의 체제 정체성과 작용의 총체적 규범으로 국가운영의 원칙을 제시한다. 북한 역시 헌법이 원칙적으론 이러한 위상을 가진다. 그러나 수령독재-일당지배 체제인 북한체제 특성상 헌법 위에 당규약이 있고 절대권력자의 ‘말씀’이 있다. 법치주의가 구현되지 않는 북한체제 특성상 헌법이 우리와 같은 구속력을 가지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헌법 역시 국가체제의 성격과 운영원리를 명시한다. 특히 북한의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서문은 국가 정체성과 현존하는 정권 통치의 역사적 정당성 또는 정통성을 드러낸다.

2016년 헌법에 기초한 부분 보수

2019년 북한헌법은 이전 헌법 변화에 비해 획기적 내용이 담기진 않았다. 금번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2016년 당시 제7차 당대회 및 당규약 개정에 힘을 실으면서 헌법 개정시 미진했던 부분을 수정 및 보완하는 문구 개정 등이 두드러진다. 다만 주목되는 변화 내용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상 구별, ‘선군정치로부터의 탈피’ 공식화,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국가 대표성 공식화, 내각의 경제행정 관리책임기구로써의 위상 강화 등이다. 제7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김정은 시대 국가과업을 2019년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정비한 김정은 정권의 통치 가이드라인 제시라고 평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 4월 개정한 헌법에서 국무위원장의 지위에 대해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을 대표하는 국가수반임을 공식화했다. 연합

1980년 이후 36년 만에 개최된 북한의 제7차 당대회 시(2016. 5. 6~9) 기존의 비서국이 정무국으로 개편되는 등 당조직 체계에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당규약 개정 후 두 달여 만에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기존 헌법(2012년 북한헌법)을 개정하며 국가기구를 변화시켜 김정은 시대 국정운영의 ‘조직적 진용’을 갖추었다. 2016년 북한헌법의 핵심은 기존의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하며 ‘국가주권의 최고정책지도기관’으로 그 위상을 정립한 것이다. 또한 김정은을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전체적으로 국가기구를 재편한 것이다.

금번 2019년 북한헌법은 김정은 집권 5년차 정권안정화 단계에서 이루어진 2016년 제7차 당대회 결과에 기초하여, 2017~2019년 현재까지 정책과 상황 변화 등을 반영하면서 현 시기에 맞게 부분적으로 수정^보충한 성격이 크다. 특히 <제6장 국가기구> 편에서 첫째, 국무위원회 위원장 위상과 역할 측면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추가 및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을 ‘무력총사령관’으로 수정하면서 김정은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명시하였다. 둘째, 국무위원회 역할 중 ‘국방건설사업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정책을 토의결정한다.’ 조항에서 ‘국방건설사업을 비롯한’이란 문구를 삭제하였다. 이는 선군정치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

셋째, 최고인민회의 및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 권한을 약화시키고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령의 중요성을 강화했다. 즉, 최고인민회의 및 상임위 권한 중 기존의 명예부위원장 선거/소환 및 상임위의 명예부위원장 할당 권한을 삭제했다. 이는 또한 김정은의 세대교체 사업에 따른 고령층 배려 정책의 약화와도 연동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임위 임무와 권한 중 기존에는 최고인민회의 법령/결정이 헌법 다음으로 중시되었으나, 2019년 북한헌법에는 헌법 다음으로 상임위가 중시해야 하는 것이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령이 되었다.

김정은 통치의 현재성과 방향 제시

이와 관련하여 금번 2019년 북한헌법의 서문에서 드러난 중요한 특징은 세 가지이다. 첫째, 김일성^김정일 위상의 분리정립 속 김정은 정권의 통치 정당성 제시이다. 2016년 북한헌법 서문에서 ‘위대한’ 또는 ‘영원한 수령’으로 통칭했던 김일성과 김정일을, 2019년 북한헌법에서는 김일성은 ‘위대한 수령’으로 김정일은 ‘위대한 령도자’로 분리하여 차별적 위상을 제시하였다. 이는 주권국가로서 북한의 국가정체성이 ‘김일성을 시조’로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으로 계승되었다는 3대 세습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 김정은 정권의 국가중시 의식의 투영이다. 2019년 북한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개정 내용은 서문의 첫 번째 문장 변화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국가건설사상과 업적이 구현된 주체의 사회주의국가이다.”로 개정한 것이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으로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의 국가건설사상과 업적이 구현된 주체의 사회주의 국가’로 수정하였다. 이는 김정은 시대 북한이 이전 세대에 비해 민족보다 국가를 중시하며, 강하고 발전된 국가로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의 반영이다.

셋째, 김정은 우상화와 함께 민족 보단 국가 중시의 통치 방향 제시이다. 2019년 북한헌법은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란 명시는 지속했으나, 국가발전 과업을 중시한 김정은 통치의 현재성이 강조되었다. 이는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통해 밝힌 국가운영에서 김정은의 위상과 역할 강화를 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무엇보다 2016년 헌법 서문에 있던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다.”라는 문장을 완전히 삭제하였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김정은 우상화 작업과 연동된다. 김정은 우상화를 본격화한 북한의 선전전략 속에서 ‘현재의 태양, 김정은’을 부각하기 위한 복선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하나는 국가주의에 기초한 김정은의 통치 방향이다. ‘역사적-당위적 통일 과업’보다는 ‘실리적 국가발전 과업’이 김정은 시대 북한의 1순위 과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선군사상 삭제 ‘핵중심 군사강국’ 과업 지속

2019년 북한헌법 서문에는 김정일의 기존 업적 중 ‘선군사상’이 삭제되었다. 또한 제1장 정치 영역 중 제3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인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로 수정되었다. 국가운영 원리로써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이 없어지고 그 자리를 ‘김일성-김정일주의’가 대체한 것이다. 이는 마치 스탈린이 소비에트사회 운영의 원칙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정식화하며, 이에 대한 해석권을 자신이 차지한 것과 유사한 양상이다. 즉, 자신의 국가통치 가이드라인에 따라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의 대를 이은 “최고령도자 김정은”으로 조직, 사상, 보위 3대축을 중심으로 한 김정일 시대 통치시스템은 계승하고 있다. 즉, 선군에서 선당 및 국가중시 등으로 국정운영방향 전환을 공식화하였으나, 영도방법은 김정일식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조이다. 특히 서문에서 김정일의 업적이며 김정은이 계승하는 과업으로 선군사상은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업적 중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는 내용은 수정하지 않았다. 그 의미는 선군사상은 계승할 필요가 없으나 ‘핵중심의 군사강국’ 과업은 계승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 2019년 북한헌법 <제1장 정치> 편에서 변화는 첫째, 국가의 대중 주권이 노동자, 농민, 군인, 지식인에게 있다며, 2016년 헌법의 “근로인테리”를 “지식인”으로 수정하였다. 둘째, 군중노선이라 칭하는 대중정치 방법으로 기존의 “… 대중의 자각적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관철한다.”를, “대중의 정신력과 창조력을 높이 발양시키는 혁명적 사업방법을 견지한다.”로 수정하였다. 즉, 김일성 시대 만들어진 개념들은 김정은 시대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바꾸며 그 의미도 다양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공식화

2019년 북한헌법 <제2장 경제> 분야에서 중요한 개정 내용은 북한의 전통적 생산관리제도인 “대안의 사업체계” 삭제 및 내각 역할 강화이다. 즉 2016년 북한헌법 <제2장 경제> 제33조 “국가는 생산자대중의 집체적 힘에 의거하여 경제를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사회주의경제관리형태인 대안의 사업체계와 농촌경리를 기업적방법으로 지도하는 농업지도체계에 의하여 경제를 지도관리한다. 국가는 경제관리에서 대안의 사업체계의 요구에 맞게 독립채산제를 실시하며 원가, 가격, 수익성 같은 경제적공간을 옳게 리용하도록 한다.”가, 2019년 “국가는 생산자대중의 집체적 지혜와 힘에 의거하여 경제를 과학적으로, 합리적으로 관리운영하며 내각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인다. 국가는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실시하며 원가, 가격, 수익성같은 경제적공간을 옳게 리용하도록 한다.”로 개정된 것이다.

중앙의 자재^원료 지원 및 노동자 생활보장을 전제로 생산관리제도인 대안의 사업체계는, 이미 현실에서 무력화되었으며 김정은 정권 들어서 정책적으로도 사문화된 것이므로, 이는 현실을 추인 반영한 것이다. 또한 김정은 시대 경제개혁의 핵심 키워드인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대안의 사업체계를 대체하였다. 이는 이제 각 기업은 중앙의 도움에 기대지 말고 자체의 능력과 자원으로 살아나가며, 이윤을 극대화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라는 지침을 헌법상 공식화한 것이다.

내각의 위상 강화 천명 ‘권한 없는 역할 강화’에 불과

김정은 시대 북한 내각의 위상과 역할 관련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분분하다. 기본적으로 김정은 시대 노동당의 내각 지도는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내각 총리/부총리급이 당의 주요 보직으로 이전하면서 내각의 위상 강화 등이 논해졌으나, 이는 노동당의 경제지도 역할의 강화 성격이 훨씬 높다. 무엇보다 내각의 위상이 강화되었다면 내각에 인사권과 재정자율권을 주어야 하는데, 이러한 실질적 권한 확대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2019년 헌법 개정 문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경제에 대한 관리운영에서 내각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높이었다. 다시 말해 권리는 없이 책임과 역할만 강화된 것으로, 국가권력기구로서 내각의 실질적 위상과 권한이 강화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내각은 경제행정기관으로 국방^안보^정보^사상(선전선동) 분야를 제외한 국가경제 및 국가행정사업을 관할하는 기관이다. 북한체제 특성 및 당지도 노선을 강화하는 김정은 정권의 통치전략으로 볼 때, 내각의 위상과 역할이 질적으로 강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내각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 수행의 실질적 집행 사령탑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집권 후 김정은 정권이 지속적으로 내각책임제를 강조하고 있는 데, 그 실질적 의미는 ‘내각이 앞장서서 인민경제를 재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책임을 다하라’는 통제와 역할 강화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주요 변화 외에 2019년 북한헌법에서 드러난 개정 내용은, 2016년 북한헌법을 중심으로 국제적 규범/흐름과 변화된 북한 정책현실 사후 반영 및 김정은의 언어 코드에 맞추어, 단어를 수정하고 의미를 현대화한 수준이다.

●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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