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비공식 경제 연계한 하이브리드 경제... 정권이 국가 자원 통제 특권층·관료·신층부유층의 ‘충성’ 유도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이슈의 숨가쁜 전개 속에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박영자의 북한읽기’를 통해 북한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분야별로 살펴보고, 변화의 양상을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한다. [편집자 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최근 북한의 약소국 연대 활동

최근 북한의 외교가 다변화되며 소위 “쁠럭불가담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쁠럭불가담운동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비동맹운동’으로 1975년 북한이 가입한 후 미국중심의 강대국 세계질서에 반대하는 약소국 연대 운동이다. 지난 2019년 7월 20~21일 간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된 <쁠럭불가담운동 조정위원회> 상급회의에 참석한 북한 대표단 단장이, 미국중심의 21세기 제국주의 행태를 비판하며 회원국들의 집단적 행동 및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참석하는 회원국들의 반제국주의 활동 촉구 연설을 하였다. 특히 북한은 반미전선에 앞장서고 있는 쿠바와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노동당 외곽기구인 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 서호원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꾸바단결위원회> 대표단이 지난 7월 23~30일 네팔에서 진행된 ‘제9차 쿠바와의 연대성을 위한 아시아태평양지역회의’에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행태로 쁠럭불가담운동 성원국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미국의 제국주의 활동에 반대하는 나라들이 국제적 정치세력으로서 지위와 역할을 강화해야 함을 설파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의 반미(反美)-반제(反帝) 정책의 중요한 연대 국가인 쿠바와 북한은 어떠한 동질성과 차이가 있을까? 이 지면에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2차례에 걸쳐 다루려 한다.

쿠바와 북한의 경제위기 대처에 동질성

1989년을 기점으로 한 사회주의체제 붕괴 흐름 이후 30여 년 간, 쿠바와 북한에 암시장이 창발된 이래로 양 국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장기 지속적 경제위기와 시장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두 정권은 각각의 국가 체계 내에서 주도적 위치를 유지하였다. 또한 핵문제와 개혁^개방 상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쿠바와 북한은 근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나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경제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저발전 포스트 사회주의(underdeveloped post socialism)는 1990년대 이래 위기극복 과정에서 국가 부문들에서의 공식경제와 비국가 섹터들에서의 비공식 경제 간에 강한 연계로 드러난 ‘하이브리드 경제(hybrid economy)‘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하이브리드(hybrid)의 사전적 의미는 (동^식물의) 잡종, 혼성체, 혼합물, 혼종 등이다. 서로 다른 두 종(種)이 합쳐져서 새로운 종의 양상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로 해석할 때 이 용어는 자동차 및 반려동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소 상이한 의미가 결합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그 복합적 의미가 깨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하이브리드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쿠바와 북한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로드벡사 폴레오 총서기를 단장으로 한 베네수엘라 통일사회주의당 청년전국지도부 대표단이 7월 2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최휘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나 담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연합

정권 주도의 계획과 시장의 결합

경제위기에 직면한 쿠바와 북한 양 국가의 정치권력은 국가경제 기구 운영을 시장 세력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정권이 나서서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을 향상시키는 방향에서 두 국가 모두 정권의 생존 위기에 대처하였다. 특히 2006년 이후 권력을 이양 받아 2008년 공식 집권한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와 2009년 후계자로 등장한 후 2012년 공식 집권한 김정은은, 일당지배 및 군부주도 국가 경제기구와 공존하는 다양한 영역의 생산과 투자를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공사(公私)영역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창출하였다. 그러나 노련한 라울은 2011년 이후 개인적 자유와 함께 대외적 경제 개방 중심의 개혁과 일부 정치적 자유화 조치를 취하며, 2015년 7월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2018년 4월 새세대 국가원수인 미겔 마리오 디아스카넬에게로 권력을 이양하였다. 반면, 김정은은 집권 초기 ‘인민들의 경제생활 향상’을 제기하다, 2013~2017년 간 3차~6차에 걸친 핵실험을 하며 핵보유를 통한 체제안정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2017년 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후 현재까지 공세적인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19년 현재까지 개인독재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행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국가는 정권이 국가의 자원을 틀어쥐고, 경제문제를 정치문제에 따라 조율하는 ‘문지기 국가(gatekeeper state)’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지기 국가(gatekeeper state)는 정권이 국가자원인 렌트(rents) 및 외부요인을 활용해, 국내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을 조율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 행태를 개념화한 용어이다. 본래 렌트란 지대(地代)를 의미하는 영어이다. 그런데 현대 경제학 및 정치학에서 그 개념을 은유적으로 발전시켰다. 최근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렌트/지대는 공적 권력에 의해 공급량이 고정되어 있는 재화(財貨) 및 서비스 공급자가 독점적으로 얻는 이익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아프리카 식민지 유산인 ‘문지기 국가’ 행태

‘문지기 국가’ 개념은 아프리카지역 국가를 연구한 역사학자 쿠퍼(Frederick Cooper 2002)에 의해 정립되었다. 쿠퍼는 저서 를 통해,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전후 보여주었던 통치행태를 ‘문지기 국가’로 개념화했다. 문지기 국가의 핵심 기능은 내부 정치적 통제의 불안정성을 외적 요인들로 상쇄하는 것이다. 쿠퍼에 따르면,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는 외세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그다지 체계적으로 통치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아프리카 식민지 국가들(colonial state)은 ‘국가와 세계 경제의 접점(the interface of national and world economies)’을 통제하는 문지기 국가가 되었다. 식민지 정권(colonial regimes)은 아프리카로부터 자연자원과 노동력 등 자원을 추출했다. 이러한 수탈과 통제를 위해 주요 도시에 막강한 군사력을 배치하는 등 무력통치에 의존했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조직화된 저항’을 쉽게 좌절시켰으나, 권위를 제도화하거나 통치의 정당성 확보는 어렵게 하였다. 따라서 식민지 정권들은 대중들이 외부세계와 직접 연계하지 못하도록 국가의 문(gate)을 철저히 통제하였다. 국가의 핵심 자원인 자연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각종 인^허가권 관련 제도를 틀어쥐고, 내부적 위기가 심화되거나 안정되는 정도에 따라 외부와의 문을 개방 또는 폐쇄하는 방식의 정권 안정화 정책을 펼치었다.

해방과정에서 통치행태의 지속성

한편, 아프리카 해방 과정에서 식민지 지도자들은 원주민인 토착 아프리카 리더들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정치적 안정을 이루거나 경제적 발전과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확보하진 못하였다. 신생 권력 대부분이 효율적인 통치제도의 경험이 있거나 그 정치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식민지(colony)의 생존은 국가의 내적 요인들이 아니라 외부의 자원이나 지원에 여전히 의존적이었다. 취약한 내부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외부적 종속성(external dependence)이 여전히 권력안정에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국가의 문을 지키면서 외부와의 연계나 개방 정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정권 또는 체제의 안정성 여부가 결정되는 구조가 지속된 것이다. 이러한 정치 행태를 쿠퍼는 “그 문을 지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외부를 향한 지향(an outward orientation focused on guarding the gate)”이라 칭하였다. 독재자를 중심으로 관료와 특권계층이 주를 이루는 문지기들(gatekeepers)은 국가의 지대들(rents of state)을 독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수입 대부분을 수출입 관련 세금 등으로부터 취하였다. 또한 비자발행 및 출입을 통제했으며 외국원조를 분배하였다. 그리고 자금 배분을 결정했으며 비즈니스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결정하는 각종 인허가권을 발행하였다.

‘국가의 문’을 장악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

탈식민지 국가들은 그들의 이전 식민지 통치자들로부터 ‘문지기의 기능과 역할(the function and mantle of gate-keeper)’을 계승했다. 그러나 게이트 키핑의 부정적 결과들이 심화되었다. 왜냐하면 문지기 질서를 강제하기 위한 군사력이 약한 상황에서, 권력 및 부와 연계된 문(gate)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탈식민지 국가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그 경제사회의 장기지속적 체제전환(a far-reaching transformation)에 영향 미칠 수 있는 권력을 갈망하였다. 이로 인해 다양한 정치세력 간의 영토, 권력, 이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그들의 통치자금을 구축할 수 있는 국가의 자원 통제권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수탈과 통제의 비용은 점점 더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그 문을 통제하기 위한 격렬한 경쟁은 아프리카 지역에서 쿠데타와 반쿠데타의 순환을 초래하였다. 즉, 그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은 20세기 중반 이후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강한 군사력을 구축하려 한 배경이 되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통해 장기지속적 체제안정을 추구한 배경을 이해하는 데 함의를 제공한다.

‘문지기 국가’ 쿠바의 경제개혁 특성

문지기 국가 개념으로 1989~2002년 쿠바의 정치경제를 연구한 학자는 제비어 콜라레스(Javier Corrales 2004)이다. 그는 쿠바의 경제 개혁과 개방을 정권 생존을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그 주요 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쿠바의 경제개혁은 국가로 하여금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쿠바 정권은 쿠바가 시장시스템으로의 전환 경로를 취하도록 의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체제유지의 강경파(the hard-liners) 쪽으로 비공식 영역의 시장경제가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또 다른 논거로 쿠바의 경제개혁은 정권이 권력을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도록 정권의 수용력(capacity)을 향상시켰다는 주장이다. 대개 시장개혁은 권위주의 사회 내 승자와 패자를 양산하고 그 두 진영이 국가를 압박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societal pressures)”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국가는 새로운 행위자들과의 성장을 모색하면서 새로운 연합(coalitions)을 구축해야만 한다. 그리고 덜 부패하고 더 투명한 국가제도를 수립하면서 “2단계 개혁(second-stage reforms)”을 시행해야 한다.

‘관광산업’과 특구 중심 개방을 원하는 북한에의 함의

그러나 쿠바에서 그 사회적 압력은 결코 강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국가는 2단계 개혁 제도를 수립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혁은 사회에 대한 국가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이로 인해 쿠바의 국가권력은 쇠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쿠바의 제한적 경제 개혁과 개방은 국가권력이 “새롭고 가치 있는 상품의 문지기(the gatekeeper of a new and highly valuable commodity)”로서 그 역할이 전환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대표적 상품은 관광산업과 노동력 송출이며 그 외 각종 국가 지대들(rents)이 정권의 문지기 역할로 인한 독점적 이윤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로부터 추출된 자금 및 각종 네트워크는 국가권력의 통치제도로 기능할 수 있었다. 문지기로서 국가는 새로운 상품과 함께 특권층-관료-신생 부유층 간 협력적 이익분배를 증대했다. 그 협력적 이익분배 구조와 제도를 이용해 국가는 ‘사회적 충성’을 유지했다. 이러한 충성기제를 통해 국가는 사회의 조직적 저항을 막아냈으며 정권교체(regime change)의 가능성을 약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쿠바정권의 문지기 국가 행태인 제한적 경제개혁 조치들이 “일당 권위주의 정권의 회복탄력성(the resilience of (one-party) authoritarian regime)” 증대에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쿠바의 경험은 현재 북한이 관광산업 및 특구 중심의 개방 정책을 추구하는 의도 및 배경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박영자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004년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숙명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북한 체제를 연구했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 연구위원으로 있으며 통일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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