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책임론, 화웨이 제재, 홍콩보안법까지…극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

미중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이주영 기자] 미국과 중국의 냉전이 점점 극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 책임을 물으며 화웨이 제재로 숨통을 조이더니, ‘홍콩보안법’을 계기로 궁지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오는 11월 치를 대선과 상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 세계는 긴장감이 감돌며 각국에 미칠 여파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멱살 틀어잡은 美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진 결정적 계기는 중국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달 28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표결을 강행하고서부터다. 중국 전인대는 이날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3기 3차 전체회의를 열고 홍콩보안법 초안을 의결했다. 이번 표결은 반대 1명, 기권 6명을 제외한 모두가 찬성하면서 만장일치에 가깝게 통과됐다.

사실상 ‘홍콩의 정치적 자유’가 사망했다고 풀이되는 이번 의결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홍콩보안법 처리 전날 밤 홍콩의 자치권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홍콩이 미국에서 각종 혜택을 부여받은 근거인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수순을 밟았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코로나19와 관련해 “전 세계에 걸쳐 중국으로부터의 매우 나쁜 ‘선물’인 코로나바이러스가 계속되고 있다. 좋지 않다”고 적었다. 이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중국 책임론’을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코로나에 재선 흔들흔들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대유행 확산 책임론을 중국에 추궁하기 시작한 후 중국을 향한 비난 수위를 높여왔다. ‘악랄한 독재정권’, ‘또라이’, ‘얼간이’ 등 원색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20일 코로나19에 대한 중국 정부에 대한 책임론과 비난을 작심한 듯 쏟아냈다. 그는 “중국은 1949년부터 악랄한 독재 정권의 지배를 받아왔다”며 “우리는 수십년간 무역과 외교적 접근, 개발도상국 지위로서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통해 그 정권이 우리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한층 거친 발언을 던졌다. 그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중국의 어떤 또라이가 수십만명을 죽인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해 중국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라는 성명을 방금 전 발표했다”며 “누가 좀 이 얼간이에게 전 세계적인 대규모 살인을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중국의 무능’이라고 설명해라”라고 적었다. 이는 전날 궈웨이민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대변인이 베이징에서 열린 화상 기자회견에서 “일부 미국 정치인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왔다며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데 그들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브레이크 풀린 듯한 트럼프 정부의 ‘중국 때리기’ 노림수는 오는 11월 앞둔 재선 승리를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 운동이 끝나기 전까지 결코 중국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은 “올해 11월 대선에서의 재선 당선에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 압박은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 대선 승리를 위한 역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라며 “중국 책임론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대응 실패와 대량 실업 등 경제 상황 악화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관심을 돌릴 수 있는 한 수”라고 분석했다.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역시 “올해 초 재선 승리를 확신했던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방역에 실패해 최대 피해국이 되면서 ‘트럼프 책임론’에 시달리고 있다”며 “외부의 적을 만들어 책임을 전가할 정치적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보복 카드 만지작

중국 또한 미국에 맞대응 할 전략을 준비 중이다. 중국 내에서는 미국을 향한 반격 카드가 충분하다며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8일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에서 “홍콩보안법 제정은 홍콩 내에서도 지지 탄력이 붙고 있는 법안”이라며 “홍콩을 둘러싼 미·중 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홍콩은 중국 통치 하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무용지물이 된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을 향해 내놓을 수 있는 반격 카드 중 하나는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규모다.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 국채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지난 3월 말 기준 1조800억달러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한꺼번에 대량 매도할 경우, 달러 가치가 급락하거나 미 채권 가격 급락과 금리 상승을 야기하고, 이는 달러 및 금융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

위안화 활용 또는 평가절하도 중국이 활용할 수 있는 보복카드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양지룽 연구원은 “미국의 대중국 금융제재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며 “다른 나라들과의 통화 결제에서 달러 대신 위안화를 활용하는 방안을 촉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경우 대 중국 무역적자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그동안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달 25일과 26일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낮춰서 고시해 미국과의 또 다른 갈등을 예고하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홍콩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긴장 고조에 위안화 가치가 급락했다. /연합뉴스 제공
美中 싸움에 韓 새우등 터질까 우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에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수출도 우려를 낳고 있다. 다만 당장 현실로 나타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지난달 29일 ‘홍콩보안법 관련 미·중 갈등과 우리 수출 영향’ 자료에서 “홍콩이 특별지위를 잃게 되면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과하는 최대 25% 추가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며 “금융허브로서의 역할 상실로 외국계 자본의 대거 이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홍콩은 총 수입 중 89%를 재수출하는 중계무역 거점이자 한국의 4위 수출 대상국이다. 홍콩으로 수출하는 우리 제품 가운데 114%(하역료, 보관비용 등을 포함한 금액 기준)가 제3국으로 재수출되고 이 중 98%가 중국으로 향한다. 낮은 법인세와 안정된 환율제도, 항만, 공항 등 국제금융·무역·물류 허브로서 홍콩을 중계무역 기지로 활용해 온 것이다.

무역협회는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를 철회하고, 중국에 적용 중인 보복 관세를 홍콩에도 즉시 적용할 경우 홍콩의 대미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했다. 협회는 다만 “한국은 홍콩으로 수출하는 물량 중 미국으로 재수출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7%여서 당장 우리 수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난감해진 韓 반도체…비메모리 전쟁 가시화

미중 간 갈등에 난감한 쪽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 모두 놓칠 수 없는 시장이지만, 최악의 경우 둘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어서다. 특히 미국은 최근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TSMC를 자국에 끌어들였다.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목표로 한 삼성전자로서는 겹악재를 마주한 셈이다.

앞서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활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수출 규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골자는 미국 정부 허가 없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둔 삼성전자 등도 직간접적 타격을 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D램과 낸드플래시 등을 납품하고 있다. 매출 규모는 연간 10조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당장의 피해는 따르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타깃이 비메모리 반도체에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실제 화웨이의 가장 큰 경쟁력은 통신장비와 단말기 제조에 들어가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화웨이와 비메모리 반도체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우려하는 시각은 단연 불확실성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불똥이 언제 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판매처를 다각화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을 보지만, 중국의 대응 및 향후 전개에 따라 반도체 기업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TSMC가 미국의 요구 때문에 미국에 신규 공장 설립을 결정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TSMC는 120억 달러를 들여 애리조나주에 5나노 기반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내년에 착공해 2024년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미국의 목적은 물론 TSMC와 화웨이 간 거리두기다. 때문에 현지에서 오스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도 같은 압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TSMC가 미국에서 규모를 키우면 현지의 애플과 퀄컴 및 AMD,엔비디아,브로드컴 등 반도체 기업은 TSMC 주문량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133조원 투자를 공언한 삼성전자인데, TSMC와의 격차 좁히기를 위한 투자에 더 나서야 할 여지가 발생한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사태가 생각보다는 심각해지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란 게 이유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는 정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기업도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완전히 포기하는 극단적 상황까진 갈 수 없을 것”이라며 “양쪽에서 손을 내미는 분위기에서 몸값을 띄우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국내 반도체에 협력을 요구하는 손길은 여럿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대만 경제일보는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협력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속내가 화웨이 견제라는 게 확실하므로, 삼성전자가 현 시점에서 화웨이 요구를 받아들이긴 어렵다고 바라본다. 또 화웨이는 삼성전자의 고객인 동시에 스마트폰 경쟁사이기도 하다.

미중 갈등에 삼성전자가 난처한 상황에 놓인 것은 사실이지만 해볼 만한 도전이란 의견이 많다.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력만 놓고 보면 TSMC와 큰 차이가 없어서다. 두 회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한 곳이다. 양산 및 납품영업 측면에서 TSMC가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

작년 말 기준 TSMC의 7나노 이하 생산능력은 월 14만장, 삼성전자는 3만장 수준이다. 생산성 및 영업력 강화가 향후 승부처로 꼽힌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퀄컴과 같은 기존 고객들의 수주 비중을 늘리고, 애플 같은 과거 핵심 고객들을 다시 끌어올 것인지가 우선”이라며 “잠재 고객 유치에 대해서도 주도면밀한 전략 수립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지난달 극자외선(EUV) 기반 최첨단 제품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경기도 평택캠퍼스에 파운드리 생산 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역시 ‘반도체 비전 2030’ 관련 후속 조치 일환이다. 평택 파운드리 라인 공사는 이달 본격 착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할 전망이다.

5나노 공정 이하 제품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게 우선 목표다. 정은승 삼성전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5나노 이하 공정 제품의 생산 규모를 확대해 EUV 기반 초미세 시장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전략적 투자와 지속적인 인력 채용을 통해 파운드리 사업의 탄탄한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주영 기자 주현웅 기자



이주영 기자 jylee@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