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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바이든표 인프라 투자, ‘신자유주의’ 탈피 신호탄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주말을 보낸 뒤 백악관 인근 엘립스 공원에 도착해 취재진에게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EPA 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2조2500억 달러의 인프라투자 계획을 밝힘으로써 미국의 경기부양과 장기적인 생산성 개선을 위한 문을 열어 젖혔다. 그가 밝힌 인프라 투자는 2단계로 이뤄지는데, 이번에 밝힌 것은 1단계로 ‘미국 일자리 플랜’이다.

주거개선에 6890억 달러, 교통개선에 6210억 달러, 복지개선 및 연구·개발에 9800억 달러가 투입된다. 4월 중 발표될 2단계는 ‘가계 플랜’으로 보육과 의료 등 인적 인프라에 1조~2조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도로, 교량 등 사회 인프라는 낡은 것으로 악명 높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가 오랫동안 요구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실행하지 못하던 것을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제에 심하게 타격을 입었다가 회복되는 중으로 이번 인프라 투자계획은 그러한 회복 추세를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비록 남의 나라의 일이지만,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끄는 기관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무심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더구나 이번 계획은 미국의 경제정책에서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첫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국과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사실상 종막을 고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는 정부가 사회와 경제의 모든 분야에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고 규제완화와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의 부를 극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것은 전후의 ‘케인즈 정책’이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도입된 것이며 장장 40년의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국가 간 및 사회 내부의 양극화를 촉진시키고 인프라 등 장기적인 성장에 필수적인 시설투자에 등한히 하도록 했으며, 단기적인 금융이익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것이 결국 2008년 금융위기로 파국에 이르렀으나, 그 후에도 근본적인 기조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양적완화와 저금리 등 자산을 가진 계층과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의 집행으로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화됐다.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계획은 그러한 정책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1900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 중 상당부분은 블루칼라의 직종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로 2만 마일과 다리 1만개 재건, 시골까지 초고속통신망 확장 및 제조업 투자는 이러한 분야의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약화된 미국의 중산층을 재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러한 투자의 재원으로 세금인상이 계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낮춰 놓은 법인세를 21%에서 28%로 다시 올리며,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7%에서 39.6%로 올릴 예정이다. 이에 더해 다국적기업의 해외소득에 대한 최소세율을 10.5%에서 21%로 인상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세금인상이 즉시 이뤄지지 않고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므로 경제에 주는 충격은 크지 않을 전망이나 정부가 적자재정보다는 세금을 통해 사회공공재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미국은 재정지출의 상당부분을 적자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채워 왔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러한 추세는 더욱 심화됐다. 그 결과 2018년 미국의 국가부채는 21조46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04%에 이른다. 전 세계 국가부채의 31%가 미국의 몫인 것이다.

아무리 기축통화국이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의 재원충당은 미국 국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며 국채의 상응물인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실추시킨다. 바이든의 증세는 이러한 추세에 제동을 건다는 의미를 지닌다.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인상에 따라 미국 기업이 해외로 이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국제적인 법인세 최저세율을 정함으로써 국가 간 법인세 인하 경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일랜드와 터키 등은 10~15%의 법인세율을 제시함으로써 미국 등으로부터 정보통신과 금융기업 등을 유치해왔다. G20 등 주요 국가 간 협의를 통해서 이러한 법인세 정책이 하나의 체제를 이룰 수도 있을 전망이다. 해외사업장이 많고 해외와의 경제적 교류가 많은 한국의 기업들도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셋째, 친환경 인프라를 강조하지만, 기실 중국과의 패권경쟁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와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프라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중국’이라는 단어를 무려 6번이나 언급함으로써 체제경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전기차로 말하자면 미국에도 테슬라와 같은 선도적인 기업이 존재하지만 중국은 국가적으로 전기차산업을 양성하고 있어 미래를 예단하기 어렵다. 이번 계획에는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50만개를 짓고 전기차에 보조금 등으로 1749억 달러를 쓰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전기차를 미래의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해 이 분야에서 중국에 뒤지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미국과 같이 자유기업을 강조하던 국가가 본격적인 산업정책을 사용하려는 것으로, 정책의 큰 변화가 읽혀진다.

반도체의 경우에도 500억 달러의 지원내용이 들어 있다. 인프라 계획에는 명시적인 반도체 지원내용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는 미국의 거대한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계획의 일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부족현상의 해결이라는 명목으로 삼성전자를 백악관에 초청한 바 있다.

여기서 실제로 어떤 내용이 요구될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에 대한 현지투자 강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의 중국 배제 등이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이번 인프라 계획에 화답하듯이 반도체의 1인자인 인텔이 200억 달러를 투자해 파운드리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밝혀 삼성전자에 대한 압박이 강화될 우려가 높다.

미국의 인프라 투자계획은 아직 뼈대만이 발표된 상황으로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채워야 할 공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기조는 거대한 방향전환을 예고하고 있고 미국과 글로벌 경제에 의존도가 큰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미국의 정책방향을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큰 흐름에 올라탈 수 있도록 사전적인 준비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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