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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美·中 사이에 낀 韓 반도체 산업 위기

  •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다음달 하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월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0일 동안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개 핵심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을 점검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지난 12일(현지시간) 글로벌 반도체 및 자동차 회사를 불러들여 개최한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인사말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인프라로 규정하면서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지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고 미국이 이러한 경쟁에서 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는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과 6월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도 반복될 전망이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다시 새로운 폭풍우가 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공격적인 행보는 의회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올해 초 ‘반도체생산촉진법’을 통과시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위해 100억 달러의 보조금과 최대 40%의 세액 공제를 제공키로 했다.

이어 미국 상원은 취약한 파운드리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 파운드리법’을 추가 발의했다. 여기에는 약 200억 달러의 반도체 제조 및 연구개발(R&D) 지원금을 조성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물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추방하면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은 한때 반도체 모든 분야에서 선두주자였으나 점차 수익성이 높은 팹리스(설계전문기업) 사업모델에 주력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조부문은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그 바람에 대부분의 생산은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 등이 담당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력의 72%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에 편중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자신의 편에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의도가 잘 먹혀 들어갈지는 의문이다. 반도체가 제작되는 생산지는 미국이 19%, 중국이 35%다. 또 최종 소비자 기준으로는 미국이 25%, 중국이 24%로 양자 간 격차가 크지 않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시장규모가 미국을 크게 초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떠한 기업도 중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주요 반도체 사업자들은 이러한 미국 압력에 우호적이지 않다. TSMC는 지난 16일 발표한 연간보고서에 미·중 무역갈등이 핵심 생산 장비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고 생산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의 조치가 상응하는 중국의 보복을 불러들임으로써 걷잡을 수 없는 지정학적 불안감을 일으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도 이러한 비판에 가세하고 있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수출통제가 중국의 자체 반도체 설비와 기술을 구축하는 시간을 지연시킬 뿐이며, 해외 기업들을 중국 시장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28나노미터 이하 공정 기술 보유기업과 사업기간 15년 이상 기업에 대해 최대 10년 간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50개 반도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여기에 약 280조 원이 투자되고 있다.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최근 7나노 공정개발을 완료했고 중국기업이 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15% 수준에 이르러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지난달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10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갈겠다”고 강조했는데, 그 핵심에 반도체가 있다. 중국은 또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희토류의 대미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위협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성전자가 현재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낸드플래시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용하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충칭에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물량에서 중국 비중은 39.6%에 달했다. 따라서 한국 반도체기업이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반도체협회(SIA)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공동 발간한 ‘불확실성 시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따르면 반도체 생산과정 전체를 수직 계열화한 회사나 국가는 없다. 반도체는 전 생산공정이 글로벌하게 분할돼 있고 공급망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가 120개 이상에 이른다. 미국이 이 모든 국가와 기업을 자기편에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다.

미국이 비록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정책을 사용해 반도체 공급망을 국내에서 완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SIA와 BCG에 따르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선행투자만 9000억~1조225억 달러가 필요하며, 그 후에도 매년 45억~1250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이 경우 반도체 가격은 35~65% 정도 인상되므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 양국의 경쟁이 가열되다 보면 이러한 출혈을 무릅쓰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승리를 거두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도체 생산 비중이 큰 한국과 대만 기업들은 큰 압력에 시달릴 것이며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닥치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장비와 기술에 종속돼 있으므로 미국의 뜻을 대놓고 거부하기 어렵다. 이는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크게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의 처지를 반영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참여가 절실하다. 어느 한쪽에 기울지 않고 사안별로 국가와 기업의 이익 관점에서 접근하는 균형 잡힌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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