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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창] 조급한 文대통령, 미국에 노골적 압박

트럼프는 변죽만…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문제와 관련, 미국에 노골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유산을 폐기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지금 바로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과 미국의 대북 정책 재검토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미국에 방향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따라 한미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나왔다. 통상 정상 순방 직전에 현지 유력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이 관례지만 이번에는 한 달여 앞서 이뤄졌다.

우리 정부는 지금껏 서훈 국가안보실장,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앞세워 미국과 대북 전략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처럼 직접적인 어조로 미국에 공개적인 요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도 도쿄 올림픽이 남북은 물론 북미간의 대화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불참 선언으로 이 기대감은 사실상 무산된 만큼 새로운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침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며 미국에 대화를 우회적으로 촉구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대북 전략 재검토가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후 재검토가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한 달이 되도록 소식이 없다. 그사이 미일, 한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잡혔다. 사실상 일본과 한국 정상의 대북 관련 입장을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들은 후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먼저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하고 대북 전략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제시했다. 뒤이어 회담할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면 곧 6월이 된다. 사실상 상반기를 모두 보내야 바이든 정부의 입장이 확정되는 셈이다.

연말이면 사실상 대선 정국으로 접어드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북미 대화를 유도해야 하는 문 대통령의 마음도 급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반영하듯 문 대통령은 NYT 인터뷰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강경한 어조로 미국에 우리의 입장을 천명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북미 관계에서 나아가 미중 관계까지 개입을 시도했다. “만약 미중간의 갈등이 격화된다면 북한이 그런 갈등을 유리하게 활용하거나 이용하려고 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동맹국이 미중 관계 악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례적인 상황이다. 스가 일본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과 중국을 미국과 공동 대응 대상으로 지적하고 대만에 대한 관여를 거론하는 등 미국의 입장에 동의한 것과도 대비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안내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예상치 못한 발언을 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변죽만 울렸을 뿐 완전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는 1차 북미 정상회담 후 문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지난 수십 년 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고 언급한 것과 180도 달라진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칭찬외교’를 ‘깎아내리기 외교’로 둔갑시켰다.

당장 외교가에서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한 외교가 소식통은 “변죽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전임 대통령이라 해도 이 정도로 미국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것이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 정책을 견인하는데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정부의 정책을 재검토한다고 했지만 완전히 폐기한다는 입장을 내놓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전 정부에서 대북 정책을 다뤘던 인사들을 면담하는 등 일부 정책에 대해서는 계승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의 입장도 대동소이하다.

안킷 판다 미국 과학자연맹(FAS)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선언을 불필요하게 폐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데 동의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일어난 일을 핵 협상이나 그에 가까운 것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협상이 이뤄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변과 풍계리의 핵시설, 서해 미사일 시험장,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과 핵 모라토리엄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선임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평화 어젠다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데 놀랐다”고 말했다.

이윤성 터프츠대 플래처 스쿨 교수는 문 대통령이 “양측이 하노이의 실패에서 배운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발언에 대해 지나친 조언이라고 평했다. 그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해 6월 문 대통령의 6ㆍ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 발언에 대해 "철면피한 궤변"이라고 평가한 것을 상기했다. 미국은 물론 북한도 문 대통령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인 셈이다.

미 국무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무부는 우리 정부가 북미 대화를 견인하려는 입장을 경계했다.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인터뷰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필자의 질의에 “북한과 관련해 가능한 모든 옵션을 평가하고 검토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 등 다양한 목소리를 통합하고 구조화하는 프로세스를 주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대북 정책 검토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며 한국은 그에 대한 의견을 내는 동맹국이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우리 정부나 문 대통령의 입장만 반영하지는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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