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플랜B’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도입 검토…’이재용 특사’ 카드도 제기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5월 하순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16일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백신 늑장 대응으로 인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생겼다. 지난해 12월 23일 백신 수급 난항에 대비해 한미 백신 스와프를 체결하자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박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제기한 것이 시발점이다. 미국이 백신을 긴급지원 해주는 대신 바이오시밀러 강대국인 우리나라가 백신을 대량 생산해 미국에 갚는다는 내용이었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백신 스와프에 반대했다. 미국도 여유가 없기 때문에 백신 스와프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1일 기준 미국이 확보한 백신 물량은 인구대비 169%로, 백신 스와프를 체결하기 충분한 물량이었다. ‘골든타임’을 놓친 우리 정부는 비싼 값으로 미국의 백신을 수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급기야 정치권 일각 및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백신 확보에 나서게 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론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특히 삼성전자로서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참여를 압박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전환점을 맞이해 냉가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韓, “백신 스와프 논의” 공개하자 美, “우리도 부족”…사실상 거부
글로벌 백신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실패한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 접종 목표치와 11월 집단면역 계획 모두 전면 수정해야 할 전망이다. 이는 정부의 백신 확보 움직임이 늦어진 탓에 백신 수급 순서가 뒤로 밀렸기 때문이다. 3분기부터 미국 외 지역에 공급 예정인 모더나의 경우,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캐나다, 스위스, 카타르 등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계약한 상황이다.

또한 얀센도 혈전 발생 등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유럽의약품청(EMA)이 최종적으로 접종 권고 입장을 밝혀 네덜란드부터 접종이 재개돼 일단 한숨을 놓은 상황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골든타임’을 놓친 채 미국 주도 하에 백신 스와프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지난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외교적 관례를 깨면서까지 백신 스와프 논의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이지는 않다. 미국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한국과의 백신 스와프 논의와 관련해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며 발을 빼는 듯한 입장을 내비쳤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일침을 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해외 백신 공유와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우리가 중앙아메리카를 비롯해 다른 나라들을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지금은 백신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이어 “캐나다, 멕시코 및 ‘쿼드(QUAD.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와도 논의해 왔다”고 밝혔다.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도 쿼드 차원의 백신 지원계획을 밝혔다. 쿼드에 참여하지 않는 한국은 2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논란이 된 ‘이재용 특사’ 카드…여당 내에서도 검토 필요성 주장
이 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개발한 ‘스푸트니크V’가 부족한 국내 백신 수급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외교부에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접종 중인 각국의 이상반응 사례 등 정보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동안 검증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스푸트니크V 도입 문제는 우선 순위에서 계속 밀려난 것이 사실이다.

정치권도 이에 가세했다. 청와대는 지난 22일 스푸트니크V를 포함한 다른 국가 백신 도입 가능성에 대비한 사전 점검 작업에 들어간 상태라고 밝혔다. 여권에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당권 주자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잇달아 ‘플랜B’ 차원의 러시아 백신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마침 지난 2월 영국 의학잡지 랜싯이 스푸트니크V의 예방효과가 91.6%에 달한다는 결과가 공개됐다. 이어 러시아 당국도 두 차례 접종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예방효과가 97.6%에 달했다고 밝혀 안정성 문제를 해소시켰다. 스푸트니크V는 현재까지 혈전 발생 사례가 보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MA도 ‘플랜B’ 차원에서 스푸트니크V 승인 절차에 들어갔다. 식약처 역시 “EMA에서 어떻게 나올지를 두고 중요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밝혀 유럽의 승인을 거치면 국내 도입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푸트니크V는 국영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가 지원해 위탁생산 중인데 국내 기업의 경우 한국코러스와 휴온스글로벌 컨소시엄이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따라서 스푸트니크V의 품질 승인이 날 경우 국내 위탁물량이 접종물량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백신-반도체’ 빅딜론을 꺼내들었다. 이재용 부회장을특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김근식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5월 한미 정상회담 때 이 부회장을 임시 석방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미국으로 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에서도 백신 특사 카드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백신과 반도체와 관련해 "국익을 생각해 역할이 있으면 (사면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삼성전자에 반도체 ‘가치 동맹 밸류체인(AVC)’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이 결국 국가적 안보 동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백신과 반도체 빅딜론에 대해 일단 선을 긋고 나섰다. 정의용 장관은 협상 카드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등이 거론되는 데에 "이런 협력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미국 측과의 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전자가 코로나19와 관련해 정부를 도운 사례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정부의 마스크 수급 비상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지원요청에 응한 바 있다. 정부가 마스크 필터용 부직포가 부족한 사정을 삼성전자에 알렸고 삼성전자는 반년 이상 걸릴 원료 수입을 한달 만에 해결해 국민의 주목을 받았다.



노유선기자 yoursun@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