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00일이 지났다. 바이든 대통령의 100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대위기속에 정권을 넘겨받아 과감한 정책기조로 미국의 리더십을 다시 세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먹구름 속으로 향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과 협의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중국과의 갈등을 강조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군사력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우리 정부의 희망과는 동떨어진 외교적 접근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취임 100일, 북한이 사라졌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8일(현지시간) 첫 의회 연설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과 이란 핵을 심각한 위협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동맹과 함께 외교와 억지력을 통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의 원칙을 강조하고 한미일 동맹 차원에서 대북 문제를 다루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여기서 끝났다. 곧 끝난다고 했던 대북 정책 재검토에 대한 조금의 힌트도 없었다.

이는 조기에 북미 대화를 희망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1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하루빨리 북미가 마주 앉는 것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촉구했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 직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나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최적의 시간”이라고 주장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오는 21일로 확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의 대화를 통해 북한 문제에 대한 방향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두번째 대면 회담을 할 상대로 문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그만큼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미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대북 문제에 대한 지나친 압박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한국이 북미간 중재 역할을 하려다 북한의 손에 놀아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북미 대화에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우리 정부에 부담이다. 미국 새 정부 출범의 요식 행위와 같던 북한의 도발은 사실상 사라졌다. 북한은 탄도미사일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강도는 예전에 비해 현저히 약했다.

북한은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중거리탄도 미사일로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버락 오마마 행정부 출범 초인 2009년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 첫 의회연설을 하루 앞둔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때도 미사일 발사 예고 후 연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극했다.

북한의 도발 때마다 미국 대통령은 강경하게 대응해 왔다. 북한의 핵실험에 자극된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의무를 준수해야만 안보와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원고에도 없던 발언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분노와 화염’이라는 거친 단어까지 사용해 북한을 비난했다.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명의로 성명을 통해 바이든 정부에 부정적인 평가를 했지만 역시나 수위는 과거보다 현저히 낮았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적극적인 대미 도발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됐다.

미국 역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며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하자 유엔(UN)결의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탄도미사일 발사시험에 대해서는 북한이 긴장을 고조하면 상응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지만 사실 별다른 대응 움직임은 없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안보당국은 재무부의 북한 관련 제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대북 정책이 확정되기 전까지 북한을 자극할 일을 만들지 말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바이든 대통령 아시아판 NATO 구축 시사

오히려 미국의 입장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를 향해 시급한 북한 문제 대신 중국에 대한 압박에 주력하고 있다. 인접 국가인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한 우리 정부의 고민을 키우는 요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인권 침해를 남용하지 말 것을 경고했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강한 군사력 유지 의사를 전달했다. 이는 현재 미국의 관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행정부 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워 중국의 패권 의도를 견제하고 있다. 국내 정치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한 도구로 중국을 활용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과의 외교 안보 및 경제, 기술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엿보인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결정했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는 오히려 군사력 확대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아프간에 배치됐던 군사력을 남중국해나 대만 인근, 중국과 일본의 분쟁지역인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집결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주한미군도 북한 보다는 중국을 겨냥해 활용할 수도 있다. 이미 주한미군에 배치된 U2정찰기는 수차례 중국 군사 훈련 감시를 위해 출격했다.

가장 큰 관건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안보연합체 쿼드(Quad)를 NATO 수준으로 확대하는 경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의회연설에서 "미국이 유럽에서 NATO와 함께 하는 것처럼 인도·태평양에 강력한 군사력 주둔을 유지할 것이라고 시 주석에게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분쟁의 시작이 아닌 방지 차원”이라고 했다. 그동안 떠돌던 아시아판 NATO 결성이 현실화될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미국이 이처럼 중국을 겨냥한 강력한 안보동맹의 연합을 주도하는데 한국이 동참하지 않는다면 철통 같다는 한미 동맹도 뿌리부터 흔들릴 게 자명하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