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FTA 마찰 피해가는 미국산 제품 조달 강제에 주목해야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사진=연합뉴스 )
[주간한국 박병우 기자]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이 상원에서 초당적으로 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법안을 놓고 대립을 했던 양당은 중국 문제만큼은 함께 뜻을 모았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들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지난 8일(현지 시간) 중국의 지정학적 부상에 맞서 외교 안보, 산업, 기술 등 총체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USICA를 가결했다. 찬성 68 대 반대 32의 압도적 표 차이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미국이 중국의 경제패권 전략에 대응하기 위한 대중국 지정학 전략이 총망라가 됐다. 법안에 따르면 앞으로 5년 동안 최대 2500억 달러(약 280억원)에서 최소 2000억 달러(약 227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특히 기술 개발에 1900억 달러(210조원)를 투자하면서 미국 내 반도체 회사에 540억 달러(약 61조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최종적인 규모는 오는 8월 하원과 협의를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동맹과 함께 중국의 지정학적 위협 막는 전선 구축

이번 법안은 상무, 외교, 국토안보 등 6개 상임위원회에 발의됐던 중국 관련 법안을 통합한 형태로 입법이 추진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이 대표 발의한 첨단 기술 육성을 위한 ‘무한 국경 법안‘을 기본 법안으로 삼았다.

초당적 지지 속에 가결된 이번 법안은 앞으로 하원과 조율을 통해 오는 8월 중 최종 입법화를 마칠 예정이다. 현재 하원에는 비슷한 내용인 ‘미국의 국제 리더십 및 관여 보장 법안’이 계류 중이다.

미 상원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제규범 등이 중국 공산당과 충돌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대해 새로운 국제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중국이 7개 분야 미래 산업 기술 육성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미국과의 경제패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경쟁법의 주요 내용은 △ 반도체 생산, 차세대 5G 구축 △ 첨단 미래기술 △ 중국 견제를 위한 지정학 전략 △ 국내 제조업 보호, 사이버 대응 △ 무역관련 조항 등 5개 분야이다.

우선 반도체 생산 증진과 연구개발 지원에 5년 동안 535억 달러(약 60조원)를 편성했다. 국방부의 전략 반도체 연구개발 프로그램에 20억 달러를 배정하고, 국제 반도체 안보 혁신기금을 위해 5억 달러의 예산을 할당했다.

또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에 15억 달러의 예산을 편성해 차세대 소프트웨어 기반 개방형 무선통신 모델(OpenRAN)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두 번째로는 미래 과학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5년간 1200억 달러(약 136조원)를 투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립과학재단(NSF)내 기술혁신처를 신설해 5년 동안 290억 달러를 투입, 미래전략 기술 분야의 기초, 응용 기술 연구, 상용화 개발에 지원을 집중한다는 것이다.

또한 NSF의 핵심 업무인 기초과학 증진을 위해 5년 동안 520억 달러를 투입해서 교육역량을 강화하고 인재 양성을 도모키로 했다.

에너지부에는 169억 달러를 배정했다. 차세대 에너지 관련 핵심 기술의 개발과 유관 산업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민간 상업용 우주 탐사 프로젝트 및 관련 기초과학 연구와 교육에도 투자한다. 이를 위해 항공우주국(NASA)에 100억달러를 쏟아붓는다.

세 번째, 중국을 겨냥한 지정학 전략을 수립키로 했다.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미국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를 위해 △ 과학기술 △ 국제 인프라 개발 △ 디지털 기술과 사이버 보안 △ 교육미디어 등에 투자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동맹과 국제 파트너십 증진을 위해 인도o태평양 지역을 포함한 전 세계 동맹 및 파트너와 안보, 평화o경제 협력을 재확인하기로 했다. 국제 기구 및 다자협상 체제를 활용해 외교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리더십 복원 계획도 담았다.

트럼프의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확대 승계

네 번째는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바이 아메리카’규정의 적용 요건을 확대하고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연방정부의 금융지원이 투입되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전수 조사해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철강o부품o자재 등을 조달할 때 미국산 사용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또한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산하에 ‘Made in America Office’를 신설키로 했다. 이 부서는 미국산 조달 규정의 이행 감독, 면제 절차 검토, 부처별 협력 증진 등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백악관 OMB는 이밖에도 국내 산업 기술 보호를 위해 연방정부 내 인공지능(AI) 기술 활용을 위한 원칙과 지원 계획도 수립한다. 사이버 보안 및 인프라 보안국에 사이버 위기 상황을 선포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응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긴급권한도 부여했다.

끝으로 무역 관련 조항의 경우 지난해 만료됐던 개발도상국 특혜관세 제도와 기타 수입관세 철폐법안의 유효 기간을 오는 2027년 1월까지 연장했다. 무역대표부(USTR)내 감찰관 제도를 신설해 행정부의 무역정책 감독도 대폭 강화한다. 중국의 강제노동을 동원한 어업활동 규제와 중국 내 디지털 검열 대응과 관련한 조항도 법안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도체, 배터리, 사이버보안 등 분야에서 국제 연구 협력 기회가 증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미국 제조업 부흥을 위해 자국산 조달 우대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고 규정을 강화하는 정책이 제안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이전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처럼 국제협정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관측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는 바이 아메리카를 위한 규정을 강화하는 동향에 대해서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바이 아메리카 법안은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요구하는 조달시장 개방 의무에서 제외된다. 즉 국제 협정과 상충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조달시장에서 미국산 사용을 강제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어“다른 국가의 기업들은 미중 간 시장, 기술, 국방, 외교 등 전방위적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급망 다변화 등 업계 차원의 위험 분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병우 기자 pbw@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