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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창] 美·中, 동남아 백신 공여로 인도·태평양 패권 맞서

본격화하는 백신 외교전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외교단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비롯한 중국 외교단이 지난 3월 18일 알래스카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제공)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백신으로 자기 세력 확대에 나섰다. 양국이 백신 외교를 통한 역내 영향력 확보에 나선 만큼 우리 정부도 신남방 전략 차원에서 전략적인 대응과 지원을 통한 역내 영향력 확대가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리는 일련의 회의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맞섰지만 올해 상황은 많은 변화를 보였다. 코로나19 백신 공여가 핵심 주제로 부상한 것이다.

이는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 최근 코로나19가 급증하며 근심을 안기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흐름이다. 통계 매체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지난 3일 현재 인도네시아의 하루 신규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3만5000여명에 달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2만여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 한때 코로나19 청정지역으로도 거론됐던 베트남에서도 하루 7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경제 성장 지연이 불가피한 동남아 국가에 백신 확보는 무엇보다 강력한 성장 촉진제가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이 포함된 아시아 지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이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선물은 과거 어느 때 보다 솔깃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확실한 효과를 가진 백신을 보유한 미국은 이를 통해 아세안 10개국에 다가서려 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은 백신 공급을 앞세워 미국의 공세를 차단하고 역내 영향력을 유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은 이번 회의에 앞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백신에 초점을 맞췄다. 미 국무부는 성명에서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아세안 회원국들에 2300만개 이상의 백신과 1억5800만 달러 이상의 지원을 제공했다”고 언급했다.

국무부는 또 “미국이 코로나19와의 전투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는 점을 주장하면서 “미국이 아세안의 코로나19 대응 기금에 자금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백신 기부에 아무런 정치적 경제적 조건이 붙지 않았다는 점을 주장했다.

ARF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지난 4일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에서도 미국과 중국은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도 당근을 제시하며 서로의 편에 설 것을 요청했다.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EAS 회의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중국이 다른 국가에 7억5000만 도즈 이상의 백신을 제공했으며 향후 4개월 동안 추가로 1억1000만 도즈를 제공할 것임을 강조하고 나섰다. 왕 부장은 또 향후 3년간 30억 달러(약 3조4000억 원)의 국제 원조를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점도 밝혔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중국은 시노백과 시노팜이 제조한 백신 1억9000만 도즈분을 아세안 회원국에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 백신 공여에 뒤늦게 나선 반면 중국은 선제적으로 백신 외교를 시작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중국산 백신을 먼저 확보했다. 듀크 글로벌 건강 혁신 센터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들은 지난 7월 23일 기준 총 2억3800만 도즈의 중국 백신을 주문했다. 이는 전체 주문량의 30%에 이른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중국 백신의 효력에 의문부호가 붙으면서 미국산 백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백신 공여 경쟁외에 기존 논쟁거리에 대한 공방은 여전했다. 왕 부장은 아세안, 일본, 한국, 중국 간의 경제 통합을 촉구했다. 아울러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기 발효를 위해 노력하고, 지역 경제 통합 프로세스를 가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이 아세안 국가들과의 공급망을 유지해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중 양국은 이번에도 인권과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갈등했지만 그 수위는 다소 낮았다는 평가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EAS 외교장관 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비전과 아세안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불법적인 남중국해 해상영해 주장도 비판했다.

블링컨 장관은 EAS 외교장관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트위터에 “EAS 국가는 인도-태평양의 미래에 대한 열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이에 맞서 왕 부장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외부 국가의 개입을 비판하며 “남중국해는 강대국의 경기장이 아니며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백신을 앞세워 인도·태평양 지역 공략에 나서는 상황은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앞서도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보건 분야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 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열린 한미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기술과 한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한 한미 백신 글로벌 포괄적 파트너십 구축을 발표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가 힘을 합해 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까지 10억명이 접종할 수 있는 물량의 (백신을) 생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에 백신을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 아세안 국가들에 대한 백신 공급의 역할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백신 공급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미국은 북한에 대한 백신 공여에 대한 언급이 아직 없다. 블링컨 장관은 EAS 외교장관 회의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밝혔지만, 북한에 대한 백신 공급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아세안의 예에서 보듯 북한에 대한 백신 공여는 충분한 대화 매개물이 될 수 있다. 아세안 대응을 위해 한국에서 생산되는 백신이 미국의 기부로 북한에도 제공되고, 북한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하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대화 조건은 충분히 무르익을 수 있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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