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계속되는 최악의 나날

아프간 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 도중 고개 숙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 워싱턴 AP=연합뉴스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넘겨 받은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라는 불똥을 손에서 놓지 않고 꽉 쥐고 있다 화를 자초한 것이다.

아프간 정부가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진 데다 대형 폭탄 테러로 큰 인명 피해까지 발생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진보 진영의 압박을 받아온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 배신이라고 비난 받던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전략을 계승한 것이라는 변명을 해 보지만 선택은 바이든 행정부의 몫이었다. 향후 미국의 글로벌 외교안보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간 철군 정책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독일 주둔 미군 축소를 없던 일로 한 상황에서 아프간 주둔 미군을 빼내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이다.

북한과 대면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축소가 쉽지 않지만 주독 미군의 경우 인력 축소의 여파가 비교적 덜한 곳이다. 주독 미군을 줄인다고 해도 러시아 군이 유럽에 대한 압박을 확대하기는 쉽지 않다. 주독미군은 러시아와 마주 보고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독일 주둔 미국 축소를 없던 일로 하고 아프간 철군을 강행했다.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아프간 정부의 조기 붕괴와 전광석화와 같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이었다. 이어진 카불 공항 폭탄 테러 역시 이미 예고된 상황이었지만 막지 못했다. 미국은 이슬람국가(IS)의 테러 위험을 경계하고도 방어에 실패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철군 시한을 5일 앞두고 2011년 이후 가장 큰 미군 피해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아프간 사태가 악화된 후 연일 미국에 대한 맹공을 퍼부어 왔다. 아프간 철군이 결국 중국을 옥죄기 위한 방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스스로 무너진 부패한 아프간 정부를 미국이 지원할 수 없다면서 철군 강행 방침을 바꾸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서 희생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한발 더 나아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폭탄 테러 후 연설에서 “단 한 번도 통일하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미국인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철군 연기 주장에 대해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도 철군 방침이 문제를 불러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폭탄 테러 후 울먹이며 연설하던 중 “철군을 여전히 지지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현재 상황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일부는 살해 당하는 등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번 테러로 바이든 정부의 철군 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카불이 탈레반에 무혈점령 당하면서 한 차례 패배를 맛본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테러로 결정적 카운터 펀치를 맞은 셈이 됐다.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오늘은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어두운 날”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보수 매체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등의 비판은 더욱 거세다. 뉴욕포스트는 “눈물 가득한 바이든 대통령이 보여준 고통이 카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을 면제할 수 없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책임론을 주장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내 비판이 커지는 것도 바이든 대통령에는 부담이다. 민주당 소속의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은 “미국인의 안보에 대해 탈레반을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도 탈레반에는 인내를 보였지만 폭탄 테러를 주도한 IS에는 즉각 대응을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용서하지 않겠다”라거나 “잊지 않겠다”,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말하며 강경하게 반응했다. 아프간 사태로 인해 돌아선 여론을 IS에게 돌리려는 반응으로 보인다.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과 IS는 적대적 관계이기도 하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한 IS에 대한 보복을 위해 탈레반과 손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앞서 카불 함락시 보였던 바이든 행정부의 혼선이 다시 목격된 점도 우려되는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테러 발생 직후 안보라인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가졌지만 정작 자신의 메시지를 내놓은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트위터에는 “바이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해시태그가 퍼졌다고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백악관 대변인 정례 브리핑도 예정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 연설 이후로 미뤄지는 등 어수선한 대응이 이어졌다. 국방부, 국무부 등이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함락 시에도 휴가지에서 화상으로 홀로 브리핑을 듣는 사진이 공개되며 비난을 사기도 했다.

마침 폭탄 테러가 발생한 날 바이든 대통령은 라프탈리 베넷 이스라엘 총리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예정하고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모여 중동 정세의 향방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테러로 인해 만신창이가 됐고 결국 정상회담은 연기됐다.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은 중대한 위기에 처한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태로는 이란 핵협상, 북한 비핵화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주도하기 어렵다. 결국 한반도 역시 아프간 사태의 영향권인 셈이다.

오히려 바이든 정부의 어려움을 틈타 북한이 도발하거나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압박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이 한미연합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특별한 도발을 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허점을 보인 것은 바이든 행정부다. 우리 정부와 군을 위해 일했던 아프간인들을 성공적으로 데려온 것은 큰 성과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정부는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한 북한의 오판을 막는데 더욱 고심해야 할 것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