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함되면 국가 위상 제고되지만 중국 압박도 견뎌내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오후(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는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켰다. 군사위는 새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파이브 아이즈에 한국 등을 포함시키는 부수 지침도 포함시킨 것이다. 미 군사위는 중국·러시아로 인해 예전과 다른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정보 공유 대상국을 한국을 비롯해 일본, 인도, 독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파이브 아이즈 가입 논란으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쿼드(Quad)에 이어 한국을 향해 중국 견제를 위한 동참 압박이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지난 7일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파이브 아이즈 가입 여부를 공식적으로 검토해본 적 없다”고 발표했다.

외교부 “공식 검토한 바 없다”…靑, 입장 표명 따로 안 해

주요 2개국(G2)이라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새로운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한다. 양국의 갈등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에서 시작된 G2 갈등이 옛 소련(소비에트 연방)과 대치했던 냉전 대결을 연상시킬 정도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파이브 아이즈는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3년 영국과 미국이 독일의 암호화 프로그램인 ‘에니그마’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 것에서 비롯됐다. 종전 후인 1946년 미국과 영국이 소비에트 연방 관련 자료 공유를 목적으로 ‘UKUSA’ 협정을 체결하면서 공식적으로 기밀정보 공유동맹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1948년 캐나다, 1956년 호주와 뉴질랜드가 가입해 현재 5개 국가 간 정보동맹이 성립됐다.

소련과의 경쟁은 주로 군비확장 대결로 치달았는데 중국과의 대치 국면은 더 확장됐다. 미국과 중국은 최근 수년 간 양국 주재 영사관 폐쇄를 비롯해 미국의 중국 화웨이 제품 배제, 5세대 이동통신(5G) 네트워크 이용 갈등, 반(反)중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문제 등 정치·경제·외교 등 전 분야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자 신냉전체제가 도래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대결 구도는 장기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지유 진영의 체제를 위협하는 지형이 변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이브 아이즈의 확산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확장된 파이브 아이즈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보동맹에 가입한 국가가 화웨이 장비를 쓸 경우 파이브 아이즈 운영 원리에 따라 공유되는 핵심 정보들이 중국에 의해 유출될 수 있으니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들은 화웨이 장비를 ‘보이콧’하라고 촉구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중국을 의식해 톤을 조절하면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외교부 입장이 나온 날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최 차관이 정부를 대표해서 말씀하셨고 파이브 아이즈 관련해서는 저희도 마찬가지 답변”이라고 밝혔다.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에 방점을 찍으면 비공식적 검토가 물밑에서 진행됐을 수도 있다는 시각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이 국익 차원에서 파이브 아이즈 가담 여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파이브 아이즈로 인해 정보 영역에서 우리의 동력이 신장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가입해야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그 가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도전 요인을 잘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라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압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에 대해 공세적인 행보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신 센터장은 “향후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덜 자극적인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중국이 부당한 압력을 가한다면 주권적 영역의 침해이기 때문에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함께 대응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파이브 아이즈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과제라고 할 수 없다”며 “차기 정권에 따라 좌우될 성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미 정상회담, 韓 ‘패러다임 시프트’의 서막

파이브 아이즈 정보공유 국가 확대는 미국 NDAA 본법안이 아니라 부수된 지침 형태로 군사위를 통과했다. 확대 대상에 포함된 일본과 인도는 미국이 현재 호주까지 포함해 운영하고 있는 쿼드 회원국이기도 하다. 미국이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과 협력 분야를 경제, 군사훈련 등을 넘어 기밀정보 공유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군사위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NDAA는 상원과 하원이 각각 군사위와 본회의에서 처리하면 상·하원이 합동위원회를 구성해 추가로 조문화 작업을 진행한다. 합동위에서 여야 간 최종 조율이 이뤄지면 상·하원이 한 번 더 법안을 표결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내용이 최종 NDAA에 포함돼도 최종 결정권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쥐고 있다. 또 미국 정부가 확대를 희망해도 기존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 차기 정권의 과제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라는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에 포함됐을 때 국가의 위상 제고와 함께 향후 정보전에서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파이브 아이즈가 정보 공유를 넘어 안보·군사 측면의 협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지속적으로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고려하면 한국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택지를 두고 양자택일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군사 훈련에서도 중국 견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행보가 중국 견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면서 “한국은 미국 중심의 중국 견제를 위한 다자 협력 체제에 이미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러한 것들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일각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분법적 행보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현실과는 다른 내용”이라며 “바이든 정부의 미중 관계는 제로섬으로 갈 수밖에 없고 이제는 한국도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계속 애매한 포지션으로 선택을 하지 않고 나가려고 하면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무의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것이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 시프트’였다고 보는 것이고, 그 상황에서 한국은 이미 틀을 깨고 한쪽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왼쪽)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지난 4월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열 달 만에 中 왕이 부장 방한, 이 시점에 왜?

미국 하원 군사위가 파이브 아이즈 참여국을 확대하려는 관련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일부 미국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과거 민감한 기밀정보가 유출됐던 사례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데이비드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서 “파이브 아이즈 참여국을 확대하려면 미국이 이를 주도하더라도 기존 회원국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파이브 아이즈가 민감한 정보와 최고 수준의 기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를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맥스웰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가입 제안을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다”면서 한국이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배치로 중국에 당했던 경제 보복 등을 언급했다.

공교롭게도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오는 14일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지난해 11월 방한 이후 열 달 만이다. 짧은 방한 기간 동안 왕이 부장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양자회담을 갖고 한중 양자관계와 한반도 문제, 지역 정세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는 일정은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 외교부는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양국 관계의 심화와 발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의 이번 행보는 미중 대립 이슈와 관련이 있다고 해석된다. 특히 미국의 파이브 아이즈 확대 행보가 공개된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한국 정부는 미국 파이브 아이즈 확대 움직임에 대한 묘수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부정적인 측면으로 살펴보면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참여했을 때 중국을 비롯한 북한과 러시아까지 자신들에 대한 견제로 간주하고 한국을 비난할 가능성이 높다. 주변 3개국과의 외교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파이브 아이즈 가입 제안을 거부한다면 한미동맹과 관련해 입을 수 있는 타격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파이브 아이즈와 관련해 “아직 미국 의회 내에서 입법이 진행 중인 사항”이라며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조진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라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이브 아이즈 문제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디를 선택하라는 양자 선택의 문제로 보면 곤란하다”며 “물론 한국 입장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등의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의 관계가 모두 중요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한미동맹 관계를 생각했을 때 파이브 아이즈에 응하지 않는 것 자체가 오히려 외교안보 측면에서 더 위협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중국이 이러한 유형의 미국과의 동맹 문제에 대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등 해당 국가 모두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특별히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도 않았다”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유독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송철호 기자 so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