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는 원칙론에 그칠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연합뉴스 제공)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마침내 화면을 통해 마주하고 양국 관계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악화하던 미·중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확산하는 가운데 미·중 관계 개선이 북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에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6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고위급 회담 후 연내 가상 정상회담 합의를 발표했다. 미국이 희망했던 대면 정상회담은 아니지만, 가상 정상회담 개최 합의는 미·중 관계의 방향을 제시할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정치국원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스위스 취리히 회담 결과에 대해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한 건설적이고 유익한 자리였다”며 이례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 회담(2+2 회담)에서 서로 말 폭탄이 오고 간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인 미국과 중국이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 분기점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무역과 대만 문제에 국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설리번 보좌관이 이날 회담에서 미국은 대만 방어를 지원할 것이며 현 상황을 변화하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단계 미·중 무역 합의 이행에 대해 중국과 솔직하게 대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내부에선 타이 대표의 발언이 양국 정상회담의 의제 중 하나가 무역 분야임을 예고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 언론들은 대만 문제도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중국으로서는 자국의 핵심 이익(대만, 홍콩, 신장 위구르 및 티베트,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태도 변화가 없으면 ‘빈 수레’ 회담으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로서는 미·중 정상회담이 북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 문제 해결에 중국이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미국이 중국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종전 선언도 성과를 볼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면도 아닌 화상 정상회담을 통해서는 북핵 문제나 종전선언과 같은 큰 그림에서 진전된 의견 일치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전문가들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 중국을 활용하는 창의적인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화상 미·중 정상회담은 기껏해야 2~3시간 남짓인데 이 시간 중에 미·중 관계가 아닌 북한 현안까지 심도 있게 논의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종전선언은 거론조차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신 센터장은 “미·중 갈등관리 이슈만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론’만 반복하고 끝낼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어 “종전선언은 이야기도 안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적성국 분석국장은 북한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고스 국장은 미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데 중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중국의 대북정책의 우선순위는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안정이나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는 데 있다고 우려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수석부차관보는 “중국은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전망은 어둡다”면서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비어 수석 부차관보는 중국은 오래 전부터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무장을 하는 것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파악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한미 정책국장도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을 통한 북한 문제 해결 가능성이 더 낮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미국에 어떤 호의도 베풀진 않겠지만 북한 문제는 중국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북한 관련 대화가 진행된다면 중국 쪽의 요구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선언에 대해 중국은 지지 의사를 표했지만 미국은 이에 대한 견해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북한 문제가 대화 테이블에 올라도 ‘원칙론’만 반복하고 끝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대북 제재와 관련해 중국은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참여국들이 더욱 강하게 대북 제재를 시행해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도 특별한 상황 변화의 계기가 없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조건 없는 대화를 할 수 있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UN) 안보리 위반이다’, ‘남북 간 통신선 복원을 지지한다’ 등 기존에 해 왔던 원칙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양 교수는 “결국 중국은 스냅백(위반시 제재 복원) 조항을 담은 대북 제재 완화 등 미국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하며 맞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