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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호 객원기자 칼럼] CPTPP 가입, 진지한 고려가 필요한 시기

  •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28일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달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에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이 임박해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8년이나 끌어온 이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음을 알렸다. 그러자 일제히 각종 농어촌 단체에서 반대의사를 밝히면서 논쟁에 불을 붙였다.

CPTPP의 전신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미국, 일본을 포함한 12개국이 참여해 2015년 10월 타결됐다. 무역자유화에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모든 상품에 대해 100% 관세철폐를 목표로 삼는다. 개방 정도로 따지면 모든 무역협정 중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TPP는 그동안 세계 무역질서를 관장해오던 세계무역기구(WT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미국이 대안으로 구상한 지역 내 무역자유화 협정이다. 겉으로는 무역의 자유와 개방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몰아냄으로써 경제적 타격을 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2017년 1월 TPP 탈퇴를 선언하면서 모양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미국은 TPP를 위시한 각종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무역자유화를 추진했으나 이로 인해 많은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고 미국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는 트럼프로서는 당연한 조치였으나 미국을 맹주로 하는 TPP 가맹국 입장에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 뒷수습을 맡아 남은 협상을 진행했고 이름을 CPTPP로 바꿔 2018년 12월에 타결했다.

이때 의약품 특허 보호 등 미국이 강력하게 주장해 오던 22개 항목에 대한 논의를 동결함으로써 미국의 몫을 남겨놓았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현재는 미국 정권이 유권자 눈치를 보느라 CPTPP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지만 여건이 성숙되면 언제든지 돌아올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9월 중국과 대만이 거의 동시에 CPTPP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일단 일본, 호주 등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은 대만 가입을 환영했으나 중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겉으로는 중국이 가입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웠으나 근본적으로는 지정학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만이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 글로벌 공급망 재편계획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다. 대만은 중요한 반도체 공급기지로 미국 반도체 산업 재건에 필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자신을 ‘자유무역과 개방의 옹호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과의 무역분쟁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처럼 묘한 상황은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중국이 가입을 신청했으므로 더 이상 중국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지나치게 높은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커지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미·중 무역갈등 이후 글로벌 제조기지가 중국에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움직이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에 따르면 전 세계의 대 아세안 직접투자는 2011~2015년 5604억 달러에서 2016~2020년 7310억 달러로 30.4%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대 중국 직접투자는 6330억 달러에서 6989억 달러로 10.4% 증가하는데 그쳤다.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이뿐만이 아니다. 아태 지역의 무역규칙 수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 올라탐으로써 반도체, 5G 통신, 전기차 등 미래 품목에서의 경쟁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도 있다.

중국과의 관계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고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가입하고 있다. 오히려 RCEP와 CPTPP 모두에 가입함으로써 아태 지역 무역망을 빠짐없이 촘촘하게 짤 수 있다.

CPTPP 가입으로 누적 원산지 규정에 따른 혜택을 입을 수도 있다. 이는 협정 국가 내에서 원재료 및 중간재를 조달할 경우에는 원산지를 모두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운신의 폭이 넓어지는데, 예를 들어 베트남에서 원자재를 한국에 들여와 가공한 다음 호주에 수출하는 상품도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가장 현저한 것은 농식품 산업에서 입을 피해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CPTPP 9개 회원국과 체결한 FTA 농식품 시장 무관세율은 평균 78.4%지만 CPTPP 회원국의 평균 자유화율은 96.3%에 달한다. 그만큼 개방품목이 늘어나는 것이다.

또한 CPTPP가 농식품 수입 허용기준을 국가단위가 아닌 농장단위(구획화라 한다)로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가령 독일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면 이제까지는 독일산 전체에 대해 수입을 불허할 수 있었지만 CPTPP 가입 후에는 병이 발생한 특정 농장 산출물에 대해서만 수입을 금지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이 CPTPP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도 장애물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무역에서 매년 200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 CPTPP에 가입하면 무역역조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또한 소재·부품 등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부문의 수입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후쿠시마산 등 8개현 수산물 금수조치 해제를 가입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한국은 이들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함으로써 일본과 무역분쟁을 빚었고 WTO까지 갔으나 승소한 바 있다. 일본이 이렇게 나올 경우에는 국민감정을 자극하게 되고 CPTPP 가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이 모든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CPTPP 가입은 불가피하다. 아태 역내 대부분 국가가 가입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만 고립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이 본격적으로 재편되고 있는 시점이다. CPTPP 가입여부는 우리나라 수출과 산업의 성쇠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부는 가입신청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차피 그 후에도 최종적인 가입이 이뤄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한편으로는 우리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제도적인 정비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입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극적인 쇄국은 쇠망의 길이요, 적극적인 개방은 번영의 길이기 때문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 경제학 박사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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