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해진 북·미 관계

지난 11일 북한에서 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이 비행하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발사 장소는 자강도로 알려졌다. (사진=조선중앙TV 화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앞두고 북미 관계가 미묘하게 흐르고 있다. 북한이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에 나서면서 미국이 긴장 국면에 들어가면서 공방을 주고받는 양상이다. 이 같은 상황은 양국관계가 새로운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은 세 번째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발표하며 한국은 물론 미국을 다시 자극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의 극초음속 미사일 성능을 깎아내리자 더 성능이 향상된 미사일 발사로 대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사거리 1000km를 비행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것이다. 한미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성공을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허를 찌르는 행보였다.

김 위원장은 시험발사 성공을 반기며 “전략적인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전쟁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성과들을 쟁취해야 한다”면서 8차 당 대회에서 밝힌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에 따른 무기 개발에 매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대화보다는 지속적인 도발을 예고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수년 만에 미사일 발사 현장에 등장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안킷 판다 카네기 국제 평화 기금 선임 연구원은 “김 위원장의 등장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시사한다”고 평했다.

채드 오커럴 코리아리스크그룹 대표는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현장에 나타난 것은 미국이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 소속 마이클 맨든은 “한미가 극초음속 미사일에 회의적인 평가를 내린 것이 김 위원장이 참관 동기가 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망으로 막을 수 없는 무기체계다. 핵탄두를 탑재할 경우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아직은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는 없다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 미사일의 세부 사항을 평가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앞선 미사일 시험 발사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조 바이든 정부 들어 처음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제재를 단행한 것이다. 고위 관계자들이 연이어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대화에 복귀하라면서 기존의 대북 정책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미국도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중단한다는 북한의 약속이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 북한의 최근 동향은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이라는 ‘모라토리엄’ 선언 이후 빈틈을 노리고 있다.

마크 실러 ST 애널리틱스 로켓 전문가는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무기 보다는 주변국을 겨냥한 무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실러는 “북한이 자신들의 현실에 맞는 역내를 겨냥한 무기 개발로 돌아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결국 한국과 일본이 타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혼란을 야기한 상황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국 항공청(FAA)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서부지역 공항에 이륙금지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논란이 벌어지자 FAA는 예방적 차원에서 서부 해안 일부 공항에서 15분간에 걸쳐 이륙을 일시 정지시켰다고 밝혔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의 연관성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북한의 상황과 연계해 볼 수밖에 없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북한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이뤄졌던 것”이라고만 답변했다.

정부 당국의 부인과 달리 현장에 있던 기장들은 당시 국가안보문제로 이륙이 중단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 여파로 미국 당국이 본토 타격 가능성에 대비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은 당초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를 앞세워 알래스카의 알류산 열도나 서부 캘리포니아 해안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경고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본토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미국도 분명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을 8번이나 방문했던 미국 언론인 도널드 커크는 정치매체 더 힐 기고를 통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가 한미 관계를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커크 기고가는 “초음속 미사일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이 종전선언을 희망하며 미국에 북한에 대한 양보를 재촉해온 상황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일본의 불만을 키운 것이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직접적인 타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심지어 극초음속미사일이 자신들을 향한다면 불안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커크 기고가는 미국이 한일 모두를 관리해야 하지만 양국의 관계 개선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로 협력의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고 파악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한국보다는 바이든 정부와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미국의 제재에 대해 북한이 곧바로 반응하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도 이런 상황과 연계해 볼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은 마침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일 수 있다”고 언급한 후 나왔다.

북한 역시 수위를 조절하는 과정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대미 비난 담화를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만 발표했다. 전 주민이 볼 수 있고 김 위원장의 미사일 시험발사 참관 장면을 보도한 노동신문에는 싣지 않았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