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에 걸린 바이든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제공)
2022년 벽두부터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이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처했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북한까지 미국을 자극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하는 상황은 향후 세계 정세에 불안감을 남기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연쇄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상황은 내치 문제로 갈길 바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게 큰 고민을 안겼다. 중국과의 갈등에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부각되더니 이제는 북한이 핵과 대륙간장거리탄도미사일(ICBM) 실험 재개 가능성을 예고하면서 한반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운 상황이다.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외교 정책 대상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북한은 후순위였다. 미국은 정부는 물론 여야가 초당적으로 적국 러시아와 신흥 경쟁자로 부상한 중국 견제를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다.

미국의 압박에도 중국은 지난해 미국 경기 호조 영향으로 수출이 크게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미국의 압박이 중국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지난해 7%나 상승한 상황에서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 양국 갈등이 격화할 경우 미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상승으로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중국과의 갈등 악화는 악재로 돌변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재계에서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인하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유가 급등은 러시아를 도왔다. 러시아는 미국 셰일 석유 혁명 이후 유가 하락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상황이 반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강경한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은 배럴당 85달러 이상으로 치솟은 국제 유가다.

바이든 정부가 산유국의 증산을 이끌어 내지 못한 데다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수요가 늘면서 국제유가는 날개를 달았다. 유가 상승으로 크림반도 합병 후 미국 주도로 이뤄진 국제 제재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점령한데 이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체를 노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크림반도를 찾아 “떼어낼 수 없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군대를 배치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연이어 말 실수를 하며 우려를 자아냈다. 앞서는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곧 침공할 것이라면서 침공 수위에 따라 미국의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진입에 ‘그린카드’를 제시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국무부가 연이어 나서 해명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런 상황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최근 연이어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에 이어 핵과 ICBM 시험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바이든 행정부의 혼선을 이용해 실익을 챙기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핵과 ICBM 실험 재개 가능성을 바이든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 맞춰 발표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의 정치적 이벤트를 대미 외교의 기회를 활용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에서 외교안보와 관련한 주제는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2시간여에 가까운 회견 내내 북한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런 상황을 예상이나 한 듯 미국의 허를 찔렀다.

북한의 발표 후 반응을 보인 곳은 국무부가 아니라 백악관이었다. 앞서 미사일 발사에 비해 상황이 엄중함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실 관계자는 “가정적인 상황을 언급하진 않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점을 매우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외교에 전념하면서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진전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 공조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NSC의 언급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논평에 비해 다소 차이가 있다. 핵은 WMD로, ICBM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으로 이해된다.

북한은 이번 결정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제재를 단행하고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추가 제재를 시도하는 상황에서 강수로 대응한 셈이다.

앞서 김 위원장이 언급했던 ‘선대선 강대강’ 대미 외교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2018년 이후 핵과 ICBM 모라토리엄을 유지해왔다.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연이어 발사해도 미국이 크게 개의치 않았던 배경이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전문가들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나고 한미 연합훈련 재개 여부, 한국의 대선 정국이 맞물리면서 3월에 북한이 강력한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고 있다.

안킷 판다 카네기 국제평화기금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미국의 제재를 핑계로 앞서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무기 실험을 재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판다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ICBM 시험 발사 재개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북한은 ICBM시험 발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38 노스의 제니 타운 연구원의 입장은 다소 다르다. 타운 연구원은 “과거에 비해 강력한 표현이지만 김 위원장이 필요에 따라 수사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유화적으로 나올 경우 김 위원장도 추가 도발을 자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