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조이고, 중국은 풀고’

제롬 파월 미국 연준의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의 3월 금리 인상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전 세계 경제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미국 중앙은행의 처방이 예상보다 강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새로운 위험에 대비해야 필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강력한 긴축에 나서는 반면 중국은 오히려 완화에 나서며 발생하는 주요2개국(G2) 간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위기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이틀간의 통화정책회의(FOMC)를 마친 후 매우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평소 완화적 통화정책을 선호해 ‘비둘기파’라고 불렸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매파’로 180도 돌변했다. 파월 의장은 “조건이 무르익는다고 가정한다면 3월에 금리를 올릴 수 있다”며 “상당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에서 꾸준히 벗어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발발 직후 제로(0)수준으로 낮췄던 금리를 빠르게 정상화하겠다는 직접적인 예고였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고용을 위협하지 않고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여지가 꽤 많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올해 남은 7번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때마다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겸손하고 민첩할(humble and nimble) 필요가 있다. 향후 데이터와 전망 변화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거침 없이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금리 인상에 대한 연준의 입장은 최근 몇 달 사이 극적으로 달라져 왔다. 연준은 지난해 10월까지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라는 입장이었지만 파월 의장의 연임이 결정된 이후 본격적인 금리 인상 신호를 내비쳤다. 배경은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7%나 치솟으며 40년 사이 최고를 기록하면서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인 점도표는 올해 3차례의 금리 인상을 점쳤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이런 전망은 사라졌다.

이제는 4번의 금리 인상이 당연시 되고 있고 그 이상의 금리 인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단순히 0.25%포인트 인상이 아닌 0.5%포인트의 ‘빅스텝’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확산 중이다.

시장 안정을 위해 소통을 중시해온 파월 의장이 예상보다 매파적인 성향을 드러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2013년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긴축을 시사하며 전 세계 금융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진 ‘긴축발작’ 후 연준은 금리 정책 조정 시 시장에 큰 충격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금리 인상이 예상됨에도 지난해 말까지 미국 증시가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도 연준이 시장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9조달러 가까이로 늘어난 연준의 자산을 축소하는 양적긴축 조치도 시장을 불안케 하고 있다. 파월 의장이 이달 초 인준 청문회에서 올해 말이라는 시점을 제시했지만 이제는 상반기에도 양적긴축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 중이다.

통상 미국 금리가 상승하면 전 세계 국가에 투자됐던 달러가 미국으로 돌아온다. 신흥국 시장의 경우 자본 유출로 인한 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 금리 인상으로 신흥국들의 경제회복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금리 인상은 미국 내에서도 고통을 수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잡았지만 미국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내몰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미국 경제는 한국의 1997년 외환위기 상황만큼이나 암울했다.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 사업계획에도 악영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중에 금리가 인상될 경우 성장이 둔화된 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해 미국 경제가 5.7% 성장했지만 올해는 성장률이 3%대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수요 위축과 대출이 많은 개인과 미국 정부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연준이 급격하게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조 바이든 미국 정부도 현 재정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 부채규모는 2019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80%였지만 지금은 100%가 넘는다. 금리가 오르면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이자도 늘어난다. 정부의 살림도 빠듯해진다는 뜻이다. 금리 인상 후 경기가 진정되고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면 금리 인상이 지연될 수도 있지만 섣불리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 호황으로 수출이 늘면서 지난해 8% 성장을 유지했지만 올해는 성장 속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이 4.3%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상황을 제외하고 중국 성장률이 5% 아래로 떨어진 적은 천안문 사태가 발생한 1990년 3.9%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19’ 정책을 유지하는 데다 부동산 부채 위기가 확산하는 점도 중국 경제 불안 요소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과 달리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시작했다. 경제 상황만 보면 위안화가 약세를 보여야 하지만 최근의 상황은 다르다. 외국 투자자들은 위안화 표시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중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한 투자인 셈이다. 최근 전세계 펀드매니저들이 달러 보다는 위안화 편입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G2 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상반된 재정 및 통화 정책을 펴는 상황은 드문 일이다. 전 세계 정치와 경제 분야에 막대한 영향이 불가피하다. 금리 인상과 인하로 갈라진 미국과 중국의 결정이 양국간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 경제의 미래도 종속 변수다. 미국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지, 중국의 미국 추격이 더욱 거세질지에 대한 세심한 분석이 필요한 상황이다.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백종민 아시아경제 뉴욕특파원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