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오세은(下)

한번도 아내의 장바구니를 들어준 기억이 없는 오세은. 행여 무거운 짐을 들다 손을 다쳐 연주를 못하게 될까 두려워서였다. 그는 음악을 늘 인생의 최우선 순위에 둔 외골수 스타일이다.

3집까지 록과 포크를 모두 섭렵했지만 음악적 성취감 보다는 마음 한편에 마치 큰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그래서 3년간의 설악산 생활은 심신을 맑게 하는 명상의 시간이자 새로운 음악을 탐구한 모색기간이었다.

1975년부터 국립국악원의 김중섭 선생으로부터 대금과 단소를 배우면서 우리가락에 눈을 떴고 이후 박동진 선생에게 창과 판소리, 단가를 이양교 선생에겐 시조를 배우면서 국악의 깊은 맛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됐다.

1978년 4인조 혼성포크그룹<해바라기>의 한영애가 솔로데뷔를 꿈꾸며 곡을 부탁하는 바람에 오세은은 은둔에서 벗어나 세상속으로 되돌아왔다. 2,3집 시기에 만들어 놓은 '작은 농산'과 설악산 생활 때 만든 '설악산' 등 9곡으로 한영애의 솔로데뷔음반 <한영애 작은동산-유니버샬 SIS78105, 1978년12월>을 제작했다.

이 앨범에서 오세은이란 이름 석자는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금지된 3집이후 검열의 무게 때문에 모든 곡을 김동운, 우성삼 등 친구 이름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영애가 공식1집으로 주장하는 <여울목-서라벌. 1986년>에서는 그가 2곡을 작곡하고 기획, 편곡, 코러스, 연주까지 참여했다. 한영애의 끈적이는 느릿한 창법이 오세은의 그것과 흡사한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4집<노래하는 나그네-한국음반 HC200122, 1981년12월24일>은 6년간의 음악 공백을 깨뜨린, 당시로서는 일반에게 생소한 국악가요앨범이다. 타이틀은 원래 '거리의 악사'였지만 왠지 모르는 가위눌림이 '노래하는 나그네'로 순화시켰다고 한다.

외국의 아트록 앨범 자켓을 능가하는 멋진 추상화 자켓은 홍익대 미대를 나와 경주대 미대학장을 역임한 김명호 교수의 작품. 자켓만으로도 4집은 마니아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하다.

대표 곡은 '노래하는 나그네'이지만 다운타운가에선 '여행'이 DJ연합회 인기차트 3위까지 오르고, 라디오방송의 주요 레퍼토리였을만큼 히트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4집은 국악을 배우면서 산조를 마스터하지 못해 완벽한 수준이 아니었다. 열심히 했지만 깊이 있는 연주보다는 대중가요적인 노래 위주의 창법에 머물러 아쉬웠다"고 겸손해 한다.

4집의 10곡은 국악의 5음계 가락을 오세은의 기타, 손학래의 라이어콘, 박훈의 베이스, 김명곤의 오르간, 알토 섹소폰, 배수연의 드럼, 타악기 등 서양악기에 접목을 시도한데 의미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2면 끝에 건전가요로 아예 <애국가>를 넣어버린 오세은식의 세상 비꼬기다.

4집을 내면서 그는 서양악기로 국악을 완벽하게 표현하기엔 실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래서 어설픈 음반 발표보다는 7년동안 국악배우기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또한 1983년에는 블루스록 연주에 필수적인 블루그라스 기타주법에 관한 교본을 집필하여 보급에 앞장섰다. 블루그라스는 에릭 클랩튼 등 서양의 대부분 일류 기타리스트들이 구사하는 주법으로 국내에서는 오세은이 독보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적 가락이 한층 농익은 5집<남사당-서라벌SKJY90008, 1988년8월8일>은 10여년을 국악에 몰두한 오세은 음악의 결정판이다. 서양 악기로 표현한 우리 국악의 5음계는 가슴 떨리는 감동을 줄 정도.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세은이 읊어대는 시조가락. 한영애, 이보임의 보컬과 어우러진 강강술래가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땐 현란한 환상음악 특급 그 자체이다.

진도아리랑, 한오백년의 오세은식 해석도 새롭다. 이 불후의 명반에서 압권은 아리랑블루스와 타령3,2,1. 가장 어려운 영산회상곡인 타령1, 경복궁타령 같은 일반적 타령을 타령2로, 가장 쉬운 각설이 타령인 타령3을 감상자들을 위해 쉬운 곡 우선으로 역순배열을 했다.

5집<남사당>에 왜 마니아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정답. 이처럼 깊이있는 대중가요는 유래가 없다.

그의 음악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미발표 상태지만 판소리 완창에 버금가는 기타산조 연주음반의 완성으로 음악적 갈증은 어느 정도 해갈하였다. 그는 기타산조를 위해 앰프기타를 버리고 클래식 기타에만 전념했다.

최근 일본의 음악 제작자들이 자주 찾아오긴 하지만 상업적 농간에 환멸을 느껴 음악적 의욕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요즘은 컴퓨터로 듣는 전세계의 새로운 음악듣기에 푹 빠져있다.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국악에 기초해 재즈와 접목한 테크노와 정통 블루스. 전설적인 인물이지만 베일에 가려있는 오세은. 그가 진정한 평가를 받아 다시 음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우리 가요계의 변화를 기대해 보는 것은 아득한 꿈일까?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5/0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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