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4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선거 유세 중 총격을 당해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최후의 목표가 있다. 

일본 우익 세력들이 갈망해 온 개헌이다. 현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아베가 총리에서 물러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일본의 개헌 추진은 그의 사망과 함께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모습이다. 

일본 개헌은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극히 민감한 문제다. 마침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과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통해 동맹의 무장을 강화하고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그 연장선에서 일본의 개헌을 지지하고 실제 성사되면 향후 역내 군비 경쟁은 물론 역사적인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아베 전 총리가 총격을 당해 사망한 다음 날인 지난 10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열렸다. 결과는 집권 자민당의 압승. 자민당과 개헌에 동조하는 당의 의석수는 개헌 가능 선인 3분의 2 이상을 차지했다. 

아베가 여러 차례 조기 총선을 시도했음에도 실패한 일이 그가 사망한 다음 날 현실화했다. 아베에 대한 애도표가 자민당이 압승하는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다.

아베가 남긴 '마지막 선물'은 이제 포장지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아베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런 기회를 외면할 리 없다. 기시다 총리는 선거 승리 후 개헌을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일본 우익은 평화헌법의 종식을 목표로 한다. 2차 세계 대전 종식과 함께 시작된 미 군정은 일본의 재무장을 막기 위해 헌법을 수정했다. 그 결과 1946년 이후 일본은 공식적으로는 무장 국가가 아니다. 교전도 할 수 없다. 

당연히 해외 파병도 불가하다. 일본 우익은 이런 상황을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2년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이런 요구를 관철하려 했지만, 국내외 여론을 돌파하지 못했다. 

개헌을 위한 의석수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아베의 사망이 개헌을 추진할 동력이 됐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중·참의원에 설치된 헌법심사회 논의를 거쳐 중의원에선 100명, 참의원에 50명 이상이 헌법 개정안 초안을 발의해야 한다. 이후 중·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은 개정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의회에서의 첫 단계가 가능해졌으므로 국민투표에서만 절반의 찬성을 얻으면 일본은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자민당의 개헌 추진은 비판을 의식한 듯 꼼수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개헌의 핵심은 자위대의 존재와 집단 자위권을 헌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도 사실상 세계 5위 규모인 자위대 전력 보유를 법적으로 인정받으면 방위에 그치지 않고 해외 파병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일본의 침략을 경험한 한국과 중국, 동남아 국가들에 집단 자위권이 특히 껄끄럽다. 집단 자위권은 불법적 침해를 예방한다는 이유로 인접 국가의 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이 한국을 침략하면 일본이 한반도에 파병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의 의지와 달리 일본이 독자적으로 파병을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 과거 군국주의를 경험했던 일본이 또다시 시대에 역행하는 행보를 할 수 있다는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일본은 지속해서 군사비 지출을 늘려왔다. 일본은 최근 5년 이내에 방위비(국방 예산)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는 '경제재정 운영 및 개혁 기본방침'을 확정했다. 

현재 일본 방위비의 GDP 비중은 1%다. 미국은 자국군을 파병한 국가에 GDP 2% 수준의 국방비 지출을 요구해왔다. 일본이 미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GDP의 1% 지출만으로도 세계 5위권 전력을 확보했는데 이를 배로 늘리면 일본의 군사력은 무섭게 증가할 수 있다. 미국의 지원 속에 무인 전투 장비, 우주 전력, 전자파 무기, 사이버전 능력이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개헌에 대해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미국의 변화다. 과거 일본의 무장 해제를 유도했던 미국이 마침내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점은 미 조야와 언론에서도 포착된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일본 총선 직후 사설을 통해 일본 자위대가 헌법상 근거를 가져야 한다면서 미국과 동맹 민주 국가들이 이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진보 계열 대표 언론사가 일본 총선이 끝난 직후 이 같은 주장을 편 것은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본의 개헌을 지지할 것임을 예상케 한다.

WP는 일본의 개헌을 민주주의의 수호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강조하는 민주주의 동맹 강화를 위해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저지선으로 일본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드러난 셈이다.

미국 정부의 입장이 이렇다면 일본 개헌에 대한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 국가들의 입장도 난처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시진핑이 주도하는 중국의 변화를 지켜본 미국은 ‘충복’ 일본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그렇기에 미국의 외교적 압박이 은연중 이뤄질 것임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피벗 투 아시아' 전략을 시행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위안부 합의를 유도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재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미 긴장은 시작됐다. 중국 정부의 속내를 대변해온 후시진 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내 직감은 중국과 한국이 어떻게 반대해도 미국이 물길을 터 준 이상 자민당이 결국 개헌할 것이고, 일본은 군대 보유를 합법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 자위대를 통해 대만 방어에 나설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아베를 저격한 이는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까.


백종민 아시아경제 오피니언 부장 cinqang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