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박근혜"

2002-11-14     염영남
"내 사랑 박근혜"

이회창·정몽준 절절한 구애에 몸값 '쑥쑥'

‘박근혜 쟁탈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국민통합21은 그동안 한국미래연합 박근혜 대표와 먼저 손을 잡기 위해 경합을 벌여왔다. 현구도는 한나라당의 판정승으로 끝나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복당 외에 당대당 통합도 좋다는 저 자세를 계속 견지하고 있으며, 국민통합21은 창당 주역인 강신옥 단장마저 단칼에 무장 해제시키는 초강수를 두면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는 모두 박 대표를 겨냥, 첫 여성총리를 거론하는 등 ‘박근혜 몸값’을 올리고 있다. 박 대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는 일찌감치 선을 그은 바 있어 빅 3중 노 후보만 박 대표와의 연대에 무관심하다.

박 대표의 마음은 이미 한나라당에 절반은 가 있는 상태. 이를 놓고 벌써부터 ‘이통(李統)-박총(朴總)’(이회창 대통령과 박근혜 국무총리)의 결합이란 말까지 들리고 있지만 정 후보 측은 끝까지 박 대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왜 이토록 양당은 박 대표 모시기에 혈안이 돼 있을까.

고 박정희 대통령 부부에 대한 향수인가, TK지역의 민심잡기인가, 아니면 여성표를 의식한 상징성 차원에서인가.


한나라당, “상황종료! 발표만 남았다”

이회창 후보는 11월9일 박태준 전 총리를 만나 상호 협력이란 약속을 받아낸 데 이어 다음날인 10일 박근혜 대표와 회동을 갖고 합류를 전제로 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

11월7일 박 대표가 정몽준 후보와의 회동에서 당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합류를 거절했던 점을 감안하면 일단 모양새로는 한나라당의 판정승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회동 이후 “새로운 국가건설과 개혁을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박 대표가 한나라당에 합류해야 한다고 요청했고 이에 박 대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대세몰이에 나선 이 후보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든든한 원군을 거의 확보해 낸 셈이다.

사실 한나라당으로 보면 박 대표가 이 후보 당선에 절대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물론 박 전 총리와 박 대표와의 연쇄회동에 이어 자민련 의원과 민국당과의 연대에도 문을 열어놓은 채 ‘큰 틀’의 정치를 표방하고 있어 이런 점에서 보면 박 대표 영입도 현안이긴 하지만 그렇게 절박한 것은 아니다.

박 대표 출신지인 TK지역에서는 이 후보가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또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염두에 둔다 해도 지역별로 호남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50대 이상 장년층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다.

여성표는 어떨까? 박 대표를 데려온다고 여성 지지층이 갑작스레 두터워질 것이란 예상은 설득력이 없다. 또 지난 1997년 대선처럼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민주당 조 순 후보와의 깜짝 연대를 이끌어 내며 지지율 급반등을 이뤄내야 했던 만큼 불리한 상황도 아니다. 그렇다면 진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보험들기’라는 말로 설명한다. 5년전 대선에서 이 후보는 상대 후보의 연대전략에 철저하게 쓴 맛을 봐야 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DJP연대를 이뤘고,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는 박찬종 전 의원의 지원에 힘입어 부산지역 공략에 나섰다.

그 때도 JP와의 연대 및 박 전 의원의 재영입 문제가 막판까지 대두됐지만 이를 무시하고 선거전을 강행하다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번만큼은 그런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고 대세론으로 확실하게 잡겠다는 이 후보의 의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으로 박 대표가 합류하더라도 큰 폭의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정 후보 쪽으로 간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외로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 ‘박 대표 모시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통합21, “강 단장 잘랐고 대표도 줄 용의”

국민통합21은 아예 노골적으로 ‘박근혜 구애(求愛)’에 나서고 있다. 11월6일 박 대표는 정 후보와 만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의인으로 표현하며 명예회복 운동까지 벌인 사람과 같은 역사관을 가진 당하고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고 밝히자 부랴부랴 다음날 강 단장을 전격 해고했다.

강 단장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사직서 제출이지만 정 후보의 결단이란 점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정 후보는 초등학교 동창생이기도 한 박근혜 대표와의 연대가 후보단일화 면에서도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보고 오기만 하면 당 대표도 내어 주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박 대표의 자세는 완강하기만 하다. 정체성도 다르고 역사관과 국가관이 맞지 않다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강 단장의 해고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그가 당에 남아 있다고 가지 않고, 없다고 합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김재규씨를 의인으로 생각하는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당의 핵심참모로 일하고 있다면 그 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박 대표가 강 단장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 지는 본인 자유지만 그런 역사관에 동조하는 당과는 재고할 여지없이 같이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와의 회동에서 퇴짜를 놓고, 강 단장 해고에도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면서 한나라당 이 후보와의 만남에는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국민통합21 측은 더욱 몸이 달아 있다. 정미홍 홍보기획단장은 “박 대표가 오면 젊은 투톱의 지도자를 테마로 한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라며 “박 대표와 손을 잡으면 홍보와 선거전략 및 득표전, 모든 면에서 유리해진다”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표가 합류하자마자 적어도 지지율 5% 포인트의 수직상승은 가능해 질 것”이라며 “게다가 이 후보에 비해 약세를 보이는 TK지역의 만회와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가진 장년층 흡수, 여성층에 대한 호소 등을 감안하면 차후 모든 면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근혜 특수’를 설명했다.

그는 또 “그렇게만 된다면 후보단일화 협상은 사실상 하나마나 우리쪽으로 무게 추가 쏠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마음이 좀체 움직이지 않는 점이 정 후보측의 고민거리다. 박범진 기획위원장도 “박 대표가 우리 당에 오면 정치적 미래가 보장되는데 왜 앞길을 가로막을 사람들이 잔뜩 있는 저쪽(한나라당)에 마음을 두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박 대표, “이회창 후보와 많은 부분 공감”

박 대표는 사실상 ‘옛 님’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 당대당 합당이나 한국미래연합 당원들에 대한 처우문제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금명간 ‘한나라호’에 몸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는 이회창 후보와의 회동 직후 “국가건설과 개혁을 위한 이 후보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당과 협의해 최종적인 회답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뒤 “매우 만족스럽고 유익한 만남이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에 꼭 와서 일하는 게 필요하다고 이 후보가 말했고,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개혁 방안을 몇 가지 밝혔다”면서 “(같이 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많은 부분에 공감하고 찬성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 당과 의논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나라당으로의 합류의사를 밝혔다.

김기덕 공보특보도 “박 대표가 자리에 연연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에서 탈당했을 때 요구했던 당권-대권분리와 상향식 공천 및 집단지도체제 등이 이제 거의 이뤄져 당의 새로운 정체성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박 대표가 이 후보와의 회동에서 ▷ 정치개혁 ▷ 남북관계 ▷ 여성 ▷ 지역갈등 ▷ 정치보복 문제를 5대 국가적 과제로 다뤄야 하며, 특히 정치개혁과 관련해 ▷ 정당개혁 ▷ 권력분립 ▷ 선거제도 ▷ 정치자금법 등은 다음 정권에서 반드시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실제 김 특보에 따르면 박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나올 때 당내에서 본인을 고립화하려는 세력이 있었고 그 부분을 당시 이 총재가 묵인한 측면도 있다고 봤고, 그래서 더 이상 한나라당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탈당했다는 것.

그랬던 박 대표가 이번에 합류의사를 결정한 배경에는 이 후보가 박 대표에게 무언가 ‘확실한 당근거리’를 제시했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여성총리 제의 외에 당내에서의 일정 지분을 이 후보가 보장해주는 등의 입당 선물을 주지 않았겠느냐는 의견이다.

상한가를 치닫고 있는 ‘박근혜 몸값’에 대해서는 정확한 측정이 어렵다. 다만 고 박 대통령의 향수를 가진 계층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가능하다. 이는 유신독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박 대표에게는 동정적인 여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던 박 대표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 육영수 여사를 떠올리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여기에다 TK 출신의 유력한 여성 대권 예비주자와 때묻지 않은 참신성 및 강직한 이미지 등이 그의 평가에 후한 점수를 주는 배경이 된다. 이런 점들이 대권을 향해 뛰는 이-정 두 후보에게 도저히 박 대표를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2/11/14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