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 꿈 '땅콩집'으로 이루세요"

건축가 이현욱 출간친환경 목조주택 3억으로 1달 만에 짓기… 현실적 '스펙'으로 인기

2011-03-09     박우진 기자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광장건축 이현욱 소장이 '땅콩집'(한 필지에 지은 두 세대용 집, 듀플렉스 홈duplex home 의 애칭)을 지은 사연이 알려지기 무섭게 상담이 밀려들었다.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20여 개. 규모도 7000만 원짜리 초소형에서 34세대용 단지까지 다양하다.

그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는 온라인 카페 '땅콩집 3억으로 한 달 만에 짓는다(cafe.naver.com/duplexhome)'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소장은 이곳을 통해 땅콩집 따라잡기에 나선 사람들의 땅도 봐주고, 견적도 내주고, 함께 살 친구까지 찾아준다. 자신의 집은 모델 하우스가 된 지 오래다. 오지랖이 마을 이장 수준이다.

"저도 놀랐어요.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저는 이제까지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랑하는 줄 알았거든요."

한국사회는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트 공화국의 부박한 상상력에 갇혀 있었던 걸까. 이 소장이 작년 여름, 친구인 한겨레신문 구본준 와 의기투합해 지은 쌍둥이 목조주택은 한 가구당 약 30평의 실내 공간과 36평의 공동 마당,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 3억 원의 비용과 한 달의 공사 기간이라는 현실적 '스펙'으로 집에 대한 우리의 로망을 일깨우고 있다.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에 있는 이 땅콩집은 앙증맞은 외양으로 주변 아파트 단지를 시시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사는 이의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고, 손님을 늘려준다. 단열에 힘 쓴 덕분에 관리비도 아파트보다 적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땅에서, 잔디밭과 나무 곁에서 뛰어 놀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추억이 없어요."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 소장은 마음이 급하다. 돈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혼자 하기 어려우면 동지를 찾아서라도 누구나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주거지로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새로운 꿈이 됐다.

이 소장은 얼마 전 차를 바꿨다. 연비가 높고 유해가스 배출량이 적은 하이브리드차를 장만해 아내와 요일을 나눠 타고 있다. "땅콩집에 살아 생긴 변화"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공간을 효과적으로 쓸 방법을 궁리하고, 똑같은 규모의 두 집 계량기를 틈틈이 비교하다 보니 절로 친환경적 삶에 가까워졌다. 땅콩집이 친환경적 집인 것은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로 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작정하고 친환경적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친환경 자재를 쓰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죠. 집을 작게 짓고 단열 잘하고 오랫동안 고쳐 가며 사는 것, 그리고 내복 입고 에너지 덜 쓰는 것, 그게 친환경적 삶이죠."

경제적일 뿐 아니라 건강하고 현실적인 대안 아닌가. 집에 투자하려면 당연히 이런 데 해야 한다. 이현욱 소장과 구본준 가 함께 쓴 땅콩집 이야기 <두 남자의 집 짓기>가 출간되자마자 동 난 사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상식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지난 3월 2일 "땅콩밭을 일구느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라는 이현욱 소장을 만났다.

<두 남자의 집 짓기>처럼 보통 사람 눈높이에서 쓴 건축 책이 흔치 않다.

"돈 없으면 10평에서 살아라, 함께 집 지을 사람을 찾아라, 가 너무 당연한 소리 같아서 처음엔 책으로 내기 창피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아무리 뒤져 봐도 없더라. 건축가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

요즘 잘 팔린다.

"친구들에게 책 사서 '인증샷' 찍어 보내라고 했는데(웃음) 책을 못 구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놀랐다. 다들 아파트를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다. 단독주택은 유지·관리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편견이 깨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책을 보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야근 중 샐러리맨 땅 보고 집 짓기>라는 차기작도 준비하나 보다.

"땅 구해달라는 상담이 많아서 아예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했다.(웃음) <두 남자의 집 짓기>가 큰 틀이었다면 앞으로는 땅 보는 법에서부터 설계하는 법까지 세부 과정을 담은 얇은 책 시리즈를 펴낼 생각이다."

온라인 카페에서는 땅을 공동 구매할 '친구'까지 찾아주고 있다.

"집 지을 때 땅 구하는 게 가장 어렵다. 소비자가 건설사, 시공사를 거치지 않고 공동 구매하면 큰 땅을 싸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지역별 실제 땅값이 얼마인지 제보도 받는다.(웃음)"

본업이 건축가인데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전세대란이라는데 정부가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서 그렇다. 나는 토지공사가 임대아파트를 짓는 대신 땅을 임대해줬으면 한다. 사람마다 각자 능력에 맞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자기 집이니까 오래 아끼고 고쳐가며 살지 않을까. 아파트 구입 자금을 대출해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직도 단독주택은 일부 계층의 특권처럼 여겨진다.

"단독주택 하면 대부분 고급 전원주택을 떠올린다. 정부가 공급하는 단독주택용 필지도 미국식 전원주택을 위한 것이 많다. 작은 집이 더 많이 필요한 한국 사정에 맞지 않다. 소비자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젊은 부부에게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대안은 거의 없다. 주거 환경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다."

왜 목조를 택했나?

"친환경적이면서도 단열이 잘 된다. 목조 주택은 빨리 지을 수 있어 공사 기간이 단축되고 부분적 보수가 편리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

땅콩집과 관련해 도전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인테리어 전문가, 조경 전문가, 여러 기술자와 목수 등 파트너들을 모아 공동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규모 건설사가 못하는 박리다매가 가능해질 것이다.(웃음) 이런 시장이 자리 잡으면 소비자는 싸게 다양한 집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모바일홈에 대한 인식까지 높아지면 언젠가 집을 자동차처럼 대리점에서 고르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중고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면 2000만 원으로도 단독주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땅콩집은 마을 재생의 매개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서울 근교나 지방에 땅을 공동 구매해 집을 지으면 자연스럽게 이웃들 간 교류가 일어날 것이다. 하다 못해 우리 단지의 방범 시스템은 어떻게 할까, 를 협의하는 동안 마을이 형성되지 않을까."

땅콩집 설계 상담을 받을 때 준비해야 할 사항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 건축가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아야 한다. 무리해서 집을 짓기보다, 예산 내에서 효과적으로 짓는 것이 목표다. 집이 10평밖에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평수보다는 아이들이 마당 있는 집에서 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크기 전, 당장 이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돈이 없으면 부모님과 함께 지어라. 덕분에 해체된 가족이 다시 모여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