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이 쓴 영화 비평서

서사, 캐릭터 등 영화의 문학적 요소 찾아서

2011-03-31     이윤주 기자
시네 리테르
백지은 외 16인 지음/ 장석남ㆍ권혁웅 엮음/ 문예중앙 펴냄/ 1만 5000원

좋은 문학 작품은 보편적 진실을 낯설게 바라봄으로써 허위와 가식을 벗기고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라고 문학평론가 김현은 말한 바 있다.(김현문학 전집 14 <우리시대의 문학/ 두꺼운 삶과 얇은 삶>)

때문에 근대와 함께 열린 저 찬란한 문학의 시대에 최고의 작가는 또한 당대 최고의 사상가이자 지식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그 시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기 시작한 90년대까지 지속된 것 같다. 그 풍경을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또 이렇게 말했다.

"민족문학 논쟁과 모더니즘 논쟁이 격렬했어요. 한국적인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문학이 던졌고 우리 새내기 대학생들도 어떤 식으로든 그 답을 맹렬히 찾고 있었거든요. 저는, 영화라는 범주 안에서 그 대답을 나름의 방식대로 구하고 있었고요."(2009년 9월 <씨네 21> 인터뷰 중에서)

김현의 당위적 수사는 기실 거의 모든 예술에 해당하는 말이고, 이제 그 첨병에 정성일이 천착했던 영화가 있다. 한때, 문학의 파편을 기식하며 자라난 영화는 이제 되려 문학에 새로운 영감이 되고 있다. 물론 문학도 영화의 출현 이후 변해왔다. <시네 리테르>, 이 책이 기획된 이유다.

'우리는 영화가 공들여 가꾸어온 영역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문학에서 훈련받아온 전문가들의 영화독법에서 새롭고 유의미한 지점들이 생겨나기를 희망했다.'

이 책을 엮은 두 명의 문인은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백지은, 허윤진, 신형철, 복도훈 등 이 책에 원고를 쓴 대부분의 필자는 문학평론가다. 오은, 신해욱 등 시인도 있다. 이 책은 문인이 쓴 영화 비평서라는 말이다. 이들은 서사, 이미지, 구성, 구조, 율격, 몽타주 등 문학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바라본다.

일례로 문학평론가 백지은은 '무엇에서 그것을 보는가'에서 문학의 영화적 기법, 영화의 문학적 주체에 대해 말하며 박민규의 소설과 이창동의 '시'를 다룬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청준의 '남도사람' 연작과 영화 <서편제>, <천년학>을 비교하며 각각에서 두드러진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한다. 시인 신해욱은 소설 <렛 미 인>과 영화 <렛 미 인>에 등장하는 호칸 벵손이란 인물을 분석하며 금지된 욕망을 지닌 비극적 인물상에 주목한다.

'문학과 영화. 학창 시절 단짝이었던 두 친구의 이름을 10년쯤 지난 동창회 자리에서 불러보는 기분이다. 각자 개성 강한 두 친구는 타 장르들보다 월등한 존재감으로 자기 세계를 각인시키면서도, 둘이서 자주 붙어 다니며 좋은 개성을 서로 나눠 가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지난 세기의 한 풍속이었다는 생각이 사실은 든다.' (13페이지, 백지은 '무엇에서 그것을 보는가')

영화평론가들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영역, 즉 화면의 쇼트(shot)와 쇼트 사이 행간을 읽어내는 데 집중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서사와 캐릭터, 영화를 둘러싼 컨텍스트 등 영화의 문학적 요소를 짚어내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고로 이 저자들은 문학을 말할 때처럼 자유롭고, 냉철하며 지성적인 말하기를 할 수 없다.

이 책의 한계이자 가능성은 여기서 비롯된다. 우리는 각자 딛고 있는 현실에서 세상을 경험하고, 이 차이를 인식하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더 큰 세계를 그려볼 수 있으니까. 이 책이 유의미한 이유다.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최형선 지음/ 부키 펴냄/ 1만 4000원

생존은 극단의 환경 변화와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결과다. 하지만 저마다 벌이는 생존 노력은 자신도 모르게 공존을 위한 순환적 협력을 이룬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에게도 수많은 생존의 비밀이 있다. 이 책은 치타, 낙타, 고래, 기러기, 박쥐, 캥거루, 코끼리 등 동물을 통해 진화의 아름다움과 생태계 소중함을 보여준다.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
앙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 양영란 옮김/ 책과함께 펴냄/ 각 권 1만 8000원

저자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 연구에 평생을 바친 스위스 학자다. 30년 동안 스위스 로잔대학에서 그리스어, 그리스 문학 교수로 지내며 철학자, 문학가, 과학자 등에 관한 연구를 했다. 신간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 성과를 집대성한 책. 베일에 가려진 고대 그리스 문명의 핵심을 되살린 그리스사의 고전이다.

보이지 않는 주인
더글러스 러시코프 지음/ 오준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1만 8000원

책의 부제가 책의 논지를 집약하고 있다. '인간을 위한 경제는 어떻게 파괴되었는가.' 이 책은 기업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인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나아가 세계 경제 중심부에서 어떻게 사람이 배격되고 기업이 주인공이 되었는지를 다룬다. 르네상스 시대 탄생한 기업이 법인의 형태로 '인격'까지 획득하기에 이른 과정을 흥미롭게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