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 염정아, 24년차 '고고한 아우라' 머리채 잡히다
'우리네 엄마'변신 투쟁 선두에 머리채 뜯기고 물대포 맞고…'고고한 이미지' 완전 망가졌어요… 당분간 백수 '동탄 아줌마'로 살아
2014-11-08 최재욱기자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정말 출연하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내가 해온 역할들과 달랐지만 정말 잘해낼 자신이 있었거든요. 내가 이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인데 나에게 잘 맞을지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신기했어요. 감독님과 제작자(심재명 명필름) 대표님에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연기 변신'라는 의미에서 의욕을 낸 건 아니에요. 현실에 발을 붙인 캐릭터를 정말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카트'가 절 찾아왔어요."
'카트'는 염정아가 연기한 선희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족을 위해 동료들은 외면하고 앞만 보고 달리며 회사에 충성했던 선희는 정직원이 되기 며칠 전 일방적인 해고통지를 받는다. 처음에는 노조가입도 꺼렸던 선희는 투쟁의 과정에서 여러 번 시련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눈을 떠가고 투쟁의 선두에 서게 된다. 염정아는 기대대로 혼신의 열연을 펼친다. 순박한 엄마에서 부당함에 항거할 줄 아는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형상화해내 깊은 감동을 준다. 해고를 당한 날 음식물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으면서 흐느끼는 장면에서의 연기는 압권이다.
"정말 서럽더라고요. 선희는 그날 해고를 당했는데 애들한테 표현할 수 없고. 혼자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데 얼마나 고독했겠어요. 애들에 대한 미안함과 막막함이 복합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빈 곳이 있을까 꾹꾹 눌러 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 장면은 감정이 휘몰아쳐 정말 한 번에 갔어요. 선희는 극중에서 정말 여러 번 변화를 겪는데 그걸 표현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어요. 그러나 내가 엄마니까 더욱 공감이 가고 선희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실 전 촬영 전 비정규직 문제가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그들의 아픔을 연기하면서 엄마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고민이 더 커졌어요. 좀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염정아는 연기에 대한 칭찬을 건네자 모든 공을 '카트'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선후배 배우들에게 돌렸다. 그는 문정희와 김영애, 황정민, 천우희 등 출연진과 부지영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번 토로했다.
염정아는 '카트'에서 일종의 '액션 연기'를 펼쳐야 했다. 공권력이 시위대를 진입하면서 머리채를 잡히고 물대포를 맞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또한 반항적인 아들 태영으로 나온 도경수(엑소 디오)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도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선희의 머리채를 확 잡고 끌고 가야 하는데 경찰로 나온 단역 배우분이 마음이 약해 잘 못 잡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러시면 제가 더 고생이니 확 잡으시라'고 부탁했어요. 그랬더니 확 잡고 무자비하게 끌고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실감나는 장면이 완성됐어요.(웃음) 다친 곳은 찰과성 좀 난 거 이외에는 다행히 없었어요. 그보다 경수를 때리는 장면이 더 힘들었어요. 엑소 팬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착하고 예쁜 애를 때려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찍기 전 '엄마가 한번에 가게 해줄게' 하고 진짜 세게 때렸는데 두 번 갔어요. 하얀 뺨이 빨개진 걸 보니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염정아는 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영화 홍보 일정이 있는 날에는 여느 평범한 엄마처럼 살고 있다. 현재 MC를 맡고 있는 스토리온 '트루 라이브 쇼'도 곧 막을 내릴 예정이어서 당분간은 '동탄 아줌마'로서의 삶을 이어갈 전망이다.
"40대 여배우가 할 역할이 참 없는 거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 '카트'를 만날 수 있었던 게 정말 고마운 일이죠. 저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 있으면 다시 나오게 되겠죠 뭐. 초조해하지 않아요. 두 아이를 키우니 일을 안할 때 더 바빠요. 애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청소하고 빨래 하다보면 하루가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어요.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정말 무서워요. '카트'를 촬영하면서 곳곳에 숨어 있는 아픔을 더욱 눈여겨보게 됐어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좀더 아름다워지고 공평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