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연일 ‘좌클릭’...통합당에 득 될까?

“보수 본연의 색깔 잃는다” vs “중도로 외연 확장하는데 필요”

2020-06-27     노유선기자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의 ‘좌클릭’이 매섭다. 강하면서도 발빠르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연일 정치권에 화두를 던지며 진보 정당보다 발빠르게 이슈를 선점하고 있다. ‘약자와의 동행’,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등은 평소 진보담론으로 여겨져왔다. 보수정당에서 이 같은 의제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이다. 통합당 내부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의 정체성, 보수의 가치와 거리가 멀다는 이유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김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좌클릭이 단기적으로 통합당에 ‘득’이 된다는 해석이다. 장기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보수보다 진취 강조
6월 3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도층의 통합당 지지율은 김종인 비대위 출범일과 비교해 7%포인트 상승했다(리얼미터 기준). 김 위원장의 좌클릭 효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 이후 줄곧 진보담론을 언급하며 정치권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약자와의 동행’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지난 1일 첫 비대위회의에서는 “진취적 정당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드러냈고 국립서울현충원 방명록에도 ‘진취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진취’라는 표현에 대해 “진보보다 더 국민 마음을 사는 것”, “진보보다 더 앞서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3일 초선의원 공부모임에서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자유는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면서도 “보수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합당이 보수정당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인식하기 때문에 굳이 보수를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진보 전유물, 보수가 선점
김 위원장은 4일 비대위 회의에서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비상한 각오로 정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국민의 안정과 사회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제도를 사실상 1호 담론으로 내세운 것이다. 기본소득제는 정부가 국민에게 일정 규모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해 기본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김 위원장은 “지금 기본소득 문제를 거론한 건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 어떻게 할 것인지, 기본소득을 실행한다면 국가재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기본소득을 얘기하는데 정책이란 건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날 “정치의 근본적 목표는 물질적 자유의 극대화”라며 “배고픈 사람이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를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진보의 전유물이었던 복지 아젠다를 선점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당 비공개회의에서 초·중등생 대상 '전일보육제'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본소득제, 전일보육제 등은 보수의 ‘선별적 복지’와 거리가 멀다. 김 위원장의 의도에 대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좌클릭을 통해 당 외연을 확장하려는 전략”이라며 “집토끼가 떠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기 때문에 산토끼를 잡는 데 적극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 정체성은 어디로
보수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좌클릭에 반발하고 있는 모양새다. 보수의 정체성을 잃고 진보의 아류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SNS를 통해 “좌파 2중대 흉내내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서는 우리는 좌파 정당의 위성정당이 될 뿐”이라고 전했다. 장제원 통합당 의원도 2일 SNS를 통해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와 공정, 책임이다. 법치를 구현하고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것”이라며 “보수의 소중한 가치마저 부정하며 보수라는 단어에 화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의견은 ‘대안 없는 비판’이란 분석도 있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통합당이 김종인 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당내 철학이 공백 상태였기 때문”이라며 “현재 통합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사상적 체계를 빌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의원들은 대안 없는 비판으로 또다시 좌우 이념논쟁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위원장의 좌클릭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평론가는 “김 위원장의 목표는 다음 대선 승리”라며 “단기적으로 지지율을 끌어모으기 위해서 좌클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복지 아젠다를 거론했을 뿐이지 당론으로 확정한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우선 이슈를 선점한 뒤에 리더십을 통해 당내 갈등을 봉합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노유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