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發 생산직 채용…제조업 취업 시장 기지개 켜나

주요 대기업 잇달아 채용 계획 발표…울산 기반 정유사 취업문도 ‘활짝’

2023-03-10     송철호 기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제공)

[주간한국 송철호 기자] 삼성그룹,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세계적인 경기 불황 속에서도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방에 주력 사업장을 둔 대기업들이 잇따라 생산직 채용에 나서면서 지역은 물론 전반적인 취업 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 분위기를 견인하고 있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총 800명의 생산직을 신규 채용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400명, 하반기 300명을 각각 채용한다. 기아는 하반기 100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의 생산직 채용 일정이 시작되자 회사 서버가 다운되는 등 난리를 겪기도 했다. 한꺼번에 많게는 1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면서 현대차그룹 채용 홈페이지가 하루 종일 접속이 마비되는 사태가 난 것이다.

대기업들은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중장기 채용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한화·GS·현대중공업·신세계 등 10대 그룹이 향후 5년간 총 1055조 6000억원을 투자하고 약 38만 70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대졸 사무직 외에 여러 직군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업종별 채용 양극화는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킹산직’이라 불리는 현대차 생산직
‘소득·근로시간’ 선호 MZ세대 몰려

각종 직장인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 대한 글들이 대거 게재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한 중견기업에서 3년째 근무한다는 A씨는 “지원해 보고 합격하면 이직할 생각”이라며 “각종 수당과 성과급까지 감안하면 현대차그룹 초봉은 5000만원 이상으로 지금 받는 연봉보다 높은데다, 임금 체계가 근속 연수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안정적이면서 임금도 꾸준히 인상된다”고 지원 이유를 밝혔다.

현대차는 지난 2일부터 생산직 채용을 위한 서류 접수를 시작해 오는 12일까지 접수를 받았다. 서류 접수 첫 날부터 현대차 채용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등 구직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원래 현대차그룹 생산직은 인기가 많다. 2021년 기아가 2016년 말 이후 처음으로 생산직 채용에 나섰을 당시 100명 정도를 채용했는데 5만명이 몰리면서 경쟁률이 500대 1에 달하기도 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임금 근로자의 평균 소득은 333만원으로, 연봉은 약 4000만원 정도다. 반면 2021년 기준 현대차 생산직의 평균 연봉은 9600만원이다. 현대차 생산직이 이른바 ‘킹산직’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의 일자리 가치관이 기존 세대에 비해 크게 바뀐 것도 현대차 생산직 채용이 인기를 끄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세대에게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개인의 발전 가능성’이었다. 임금보다 미래 성장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아무래도 생산직보다 사무직을 더 선호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MZ세대 관련 ‘산업경제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MZ세대가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1~2위는 ‘소득’과 ‘근로시간’으로 나타났다. 일단 현대차 생산직은 평균 연봉이 높아 이 조건에 부합한다. 게다가 정년도 보장되고 업무시간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는 기대감도 큰 편이다.

김현우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MZ세대는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는 일자리, 공정한 보상, 좋은 복지제도 등이 보장되는 곳을 괜찮은 일자리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러한 직업 선호도의 변화는 중소기업 취업 기피로 이어지고 있는데 중소기업의 복리후생제도,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평판, 근무 환경 및 근무 시설 등이 청년층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사, 정년퇴직 대비 생산직 채용
조선 인력 부족…채용 양극화 심각

현대차가 움직이자 울산을 중심으로 채용 시장이 꿈틀거렸다. 에쓰오일(S-OIL)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생산직 채용에 나서면서 울산지역 취업 시장이 달아오른 것이다.

정유사들은 정년퇴직을 대비해 생산직 채용에 나서고 있다. 정유사 생산직 임금이 제조업 중 최상위인데다 사무직보다 상대적으로 정년 보장이 잘돼 있어 취업 경쟁률이 치열한 상황이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24일 서류 접수를 마감하고 필기시험, 인공지능(AI) 역량 검사, 면접, 신체검사를 거쳐 합격자를 선발할 계획이다. 합격자들은 오는 5월 초 입사하게 된다. 특히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는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국내 석유화학 분야 최대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에쓰오일에 따르면 이 사업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올해부터 2026년까지 4년간 9조원을 투자해 온산국가산단에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 시설을 건립한다. 하루 최대 투입 인원이 1만 7000명에 달하는 이 사업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 울산에는 하루 평균 1만 1000개의 일자리가 생길 전망이다.

울산시 관계자는 “울산에 주력 시설을 둔 대기업 생산직 채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울산이라는 도시도 주목받고 있다”며 “지금보다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더 많이 늘어나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도 하반기 생산직 100명 안팎을 채용할 예정이다. 이 밖에도 SK이노베이션은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SK인천석유화학,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계열 내 6개 사업 자회사에서 직무별로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한다. 전체 채용 인원은 세 자릿수 규모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서류 접수는 지난 6일부터 오는 26일 오후 10시까지 SK이노베이션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해 제출하면 된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다음 달 중순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필기 전형, 면접 전형(4월 말~5월), 채용 검진(6월)의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자는 오는 7월 초에 입사하게 된다.

울산 지역 내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차를 비롯해 정유사 중심으로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밝히면서 전반적인 지역 취업 시장은 활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조선업계는 구인난이 점차 심화되고 있고 올해 기준으로도 향후 1만 5000명 정도의 생산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채용 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2023 대한민국 채용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 19개 계열사 채용 일정 발표
포스코·LG·한화그룹 등도 속속 출항

주요 대기업들도 올해 채용 계획을 발표하며 우수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지난 8일 각 관계사별로 채용 공고를 내고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공개 채용 절차를 시작했다. 신입사원 채용에 나선 관계사는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삼성물산 등 19개사다.

삼성에 따르면 채용은 오는 15일까지 삼성 채용 홈페이지 ‘삼성커리어스’를 통해 진행된다. 상반기 공채는 ▲직무적합성평가(3월) ▲삼성직무적성검사(4월) ▲면접 전형(5월) ▲채용 건강검진(6월)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직무적성검사는 온라인으로 치러지며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 지원자들은 직무적성검사 대신 주어진 문제를 직접 코딩하는 ‘소프트웨어 역량 테스트’를 거쳐 선발한다. 디자인 직군 지원자들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디자인 역량을 평가받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보통 대기업들은 새 정부 출범 전후로 투자·고용 계획안을 준비해 놓는다”며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삼성은 향후 5년간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등의 그룹 내 주요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해 8만명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올해 채용 규모도 약 1만 5000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코그룹도 이번 달 포스코·포스코인터내셔널·포스코케미칼·포스코플로우가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시작했다. 포스코그룹 채용은 오는 22일 오후 3시까지 채용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되며 포스코그룹 회사간 중복지원도 가능하다. 최종 합격자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인적성검사와 1차 직무역량평가·2차 가치적합성평가 면접을 거쳐 선발한다.

LG그룹은 LG화학,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등이 신입사원을 뽑는다. 특히 LG전자는 고연차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한 후 경력·신입을 채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조직 내 인력 선순환을 목표로 만 55세 이상이나 수년간 성과가 저조한 사무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한화그룹은 ㈜한화 방산, 글로벌 부문과 한화솔루션, 한화손해보험이 신입 채용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던 ‘K-방산’이 인재 보강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현대위아는 오는 19일까지 연구·개발(R&D) 경력직을 100명 가까이 모집한다. 현대로템도 오는 12일까지 전 부문에 걸쳐 신입·경력사원을 모집한다.

아울러 129개 기업과 3000여명의 청년 구직자가 사전 등록한 ‘2023 대한민국 채용박람회’도 지난 2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 서초구 aT센터 제1전시장에서 열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번 박람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된 대규모 대면 채용 행사다. 오는 31일까지는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 채용박람회가 계속 운영된다.

이번 박람회의 산업별 채용관에는 현대차와 CJ제일제당, LS전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업종별 주요 기업들이 참가해 인재 채용에 나섰다. 또 채용설명회관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CJ제일제당, SK이노베이션 등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해 올해 채용 계획을 설명하면서 기업의 인재상과 취업 비결 등을 전수하기도 했다.

박람회에 참석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코로나19로 채용 확대를 꺼리다가 올해 들어 ‘불황 속 신사업에 집중’한다는 명분으로 인재 확보를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다시 형성되고 있다”며 “취업난이 지속되다보니 청년들이 채용 시장에 많이 몰리고 있지만, 정부가 기업들이 채용 계획을 이행하고 있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는 만큼 애초에 무리하게 채용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곳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