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3일 오후 10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버거킹’ 1층 화장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대학생 조중필(당시 22세)씨가 칼에 9군데나 무자비하게 찔려 살해된 것. 3평 남짓한 좁은 범행현장에 있었던 사람은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19)와 미군속 아더 패터슨(19) 단 두명. 친구사이인 이들은 서로 상대방이 조씨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외에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이들중 누구도 조씨를 살해해야할 이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 중의 한명은 반드시 범인. 다른 용의자는 있을 수 없는 명백한 사건에서 검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에드워드는 무죄로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그렇다면 패터슨이 범인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법원이 무죄를 내린 이유는 단순히 ‘증거 불충분’ 일 뿐이지 ‘에드워드가 범인이 아니다’ 라고 못박은 것이 아니기 때문.

피해자 가족 고소로 전면 재수사

검찰은 최근 이른바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 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 조씨 가족이 이달초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기 때문. 이들은 고소장에서 “둘중 한 명이 반드시 범인인 이 사건에서 검찰이 지목한 범인에게 무죄가 내려진만큼 다른 한명이 범인일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수사를 통해 패터슨을 살인 혐의로 기소할 경우 검찰이 그동안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세워왔던 자기논리를 완전히 뒤집어야 하기 때문. 게다가 패터슨에 대한 재수사 과정에서 에드워드가 명백한 범인임을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낭패’ 다. 에드워드에 대해서는 이미 무죄가 확정된만큼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다시 기소할 수 없을 뿐더러 그야말로 검찰의 자존심을 망가뜨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건은 ‘범인없는 살인사건’ 으로 영원한 미궁속에 빠질 것인가.

이 사건의 초동수사를 맡았던 것은 미육군범죄수사대(CID). CID는 사건발생 다음날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 는 익명의 제보를 받고 패터슨을 검거했다. 수사관들은 참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패터슨이 하수구에 버린 칼과 피묻은 옷 등을 찾아냈다. 또 친구인 랜디로부터 패터슨이 “내가 사람을 죽였다” 고 말했다” 는 진술을 받아냈다. 갱전문가인 톰반스 특별수사관은 손에 새겨진 문신모양과 특유의 말투, 사진포즈 등을 근거로 패터슨이 미 LA의 히스패닉계 갱단 ‘노르테14’ 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관들은 뒤에서 상대를 급습한 뒤 흉기로 목과 가슴을 순식간에 가격하는 그들의 범행수법이 이태원 살인사건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패터슨을 추궁한 끝에 사건발생일을 전후해 4일간 대마초와 환각물질인 LSD를 복용했다는 자백도 받아냈다. 그리고 CID는 이 사건을 한국 검찰에 넘겼다. 이 모든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긴 수사보고서와 함께.

용의자 두명 모두 풀려나, 공은 다시 검찰로

검찰은 그러나 에드워드를 범인으로 의심했다. 여기엔 ‘피해자가 별다른 반항없이 숨진 점으로 미뤄 가해자는 덩치가 큰 사람일 것’ 이라는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의 부검소견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피해자의 키(176㎝)를 감안하면 패터슨(172㎝)보다는 에드워드(180㎝)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이었다. 또 거짓말탐지기 테스트 결과 패터슨은 ‘참 반응’, 에드워드는 ‘거짓 반응’ 이 나왔다는 점도 중시됐다. 랜디도 검찰에서는 “패터슨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적은 없다” 며 진술을 번복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해 도핑테스트를 실시했으나 둘다 음성으로 나오자 패터슨의 마약복용 자백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검찰은 결국 에드워드를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패터슨은 단지 사건직후 피묻은 옷을 태우고 칼을 버렸다는 점을 들어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다.

1·2심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측의 치열한 공방이 오갔지만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은 무기징역, 2심은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에드워드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검찰의 유죄증거가 신빙성이 떨어진다” 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고 서울고법은 9월말 파기환송심에서 에드워드에게 무죄확정 판결을 내렸다. 에드워드가 구속된 지 1년5개월여만이었다. 패터슨도 항소심에서 장기 1년6월, 단기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상고를 포기했으나 지난 8월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됐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단 두명밖에 없는 용의자들은 이렇게 모두 풀려났다. 1·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던 지난해까지만해도 미국 CID의 수사결과를 성공적으로 뒤집었다고 해서 ‘우수 수사사례’ 로 선정해 홍보하던 검찰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공’ 은 다시 검찰로 넘어왔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외사부 정병두검사는 “일단 패터슨에 대해 고소가 들어온 만큼 1차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검토하고 국내에 있는 패터슨의 소재파악에 나설 방침” 이라면서도 “어느정도 성과를 거둘수 있을지는 미지수” 라고 고심을 내비쳤다. 뚜렷한 물증도 없이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는 이 사건에서 검찰이 ‘고소장’ 하나만을 들고 재수사를 한다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일 수도 있다.

검찰 “둘중 하나는 분명 범인아니겠냐”

검찰은 그러나 대법원이 ‘패터슨의 진술보다 에드워드의 진술이 더 신빙성있다고 판단된다’ 고 판결이유를 밝힌 부분에 한가닥 가능성을 두고있다. “범행상황 등에 대한 패터슨의 설명이 궁색한데 반해 에드워드의 진술은 별로 모순되는 점이 없다. 사후행적에 있어 에드워드가 범행사실을 적극 부인하면서 범행자체를 숨기지 않은 반면 패터슨은 자신의 범행을 자책하는 듯한 행동을 보이면서 증거물인 칼과 피묻은 옷 등을 인멸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에드워드의 단독범행이라는 패터슨 진술에 신빙성이 크게 의심된다” 는 것이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 판결 요지. “두명의 용의자가 서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에서 B보다 A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경우 A가 무죄라면 B가 범인이라는 것이 아니겠느냐” 는 것이 검찰측 설명이다.

‘이태원 살인사건’ 이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될 지의 여부는 결국 진실을 규명하려는 검찰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영태·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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