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공화당이 2000년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전열정비에 나섰다.

공화당은 11월3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에 사실상 패배한뒤 지금까지 당을 이끌어 왔던 뉴트 깅그리치(54) 하원의장이 물러나고 밥 리빙스턴(55) 세출위원장이 새롭게 하원의장으로 나서면서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공화당은 당초 중간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을 이용해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을 압도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의외로 민주당의 선전에 밀려 패배했다. 이때문에 공화당은 중간선거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심각한 내분갈등을 보였었다. 이에따라 94년 중간선거 이후 4년간 당을 이끌어왔던 깅그리치 의장이 차기 하원의장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깅그리치 의장은 또 78년 이후 10번이나 유지해온 하원의원직도 물러나겠다고 밝혀 정계은퇴의사를 표시했다.

깅그리치 의장은 94년 중간선거에서 이른바 ‘신보수혁명’을 주도하면서 공화당이 40년만에 상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동시에 탈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었다. 당시 그는‘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이라는 새로운 정치이념을 토대로 연방 재정적자 개선,‘작은 정부’등의 구호를 내걸고 100명 이상의 초선의원을 당선시키면서 의회를 장악했다. 깅그리치는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 출범이래 미국사회의 전반적인 방향이 잘못되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 가족의 가치가 더 중시되고 법과 공공도덕이 지배하며 기회가 보장되는 미국사회 재창조를 강조해 왔다. 그는 95년 의회 개원식에서 2002년까지 균형예산편성 달성과 복지국가가 아니라 능력을 발휘해 나갈수 있는 기회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깅그리치는 그동안 당 운영이나 정책과 노선에서 독선과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을 들어왔으며 95년 예산안 투쟁에 따른 연방정부 업무중단 사태와 지난해 탈세등 개인적 비리혐의로 하원의장직에서 축출될 뻔 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이번 중간선거에서 대다수 미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을 지나치게 당리당략적으로 이용, 의회의 탄핵절차 등을 강행함으로써 이번 선거 패배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을 들어왔다. 그의 퇴진은 이처럼 클린턴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같은 이유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들자면 민주당이 전반적으로 경제의 호황속에서 복지와 교육등 국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분야에서 공화당보다 더 국민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교육, 의료보장, 노후연금등 유권자들의 관심이 많은 정책을 효과적으로 내건 반면 공화당은 세금감면이나 국방비 증액 등에 매달려 선거에 졌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와 같은 선거패배의 원인에 따라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새로운 정책으로 차기 선거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밖에 없게 됐다. 공화당은 일단 당의 간판으로 하원의장에 리빙스턴 세출위원장을 내세우고 있다. 당내 온건파 중진인 리빙스턴은 연방정부의 예산을 삭감하는 것으로 유명한 루이지애나출신의 11선 의원이다. 그는 102년간 민주당이 독점, 공화당 의원이 당선된 적이 없던 루이지애나 제1선거구에서 77년 공화당 후보로는 극적으로 당선에 성공한 후 지금까지 평균 득표율 86%를 유지하며 연속 당선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특히 협상을 통해 행정부가 요구하는 예산을 깎는데 수완을 발휘해온 예산통이며 대화를 통한 타협정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가 처음 세출위원장을 맡은 104기 하원 회기에 세출위가 삭감한 예산은 2년간 모두 500억 달러에 달했다. 올해말로 끝나는 105기 회기에서는 행정부 및 민주당과 끈질긴 협상을 통해 작고 효율적인 연방정부를 지향하는 균형예산법을 마련하는데 성공, 9월말로 끝난 98회계연도에 만성적자에 허덕이던 연방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05기 하원에서는 예산 뿐만 아니라 공화·민주 양당이 합의로 구성한 하원윤리요강 개혁위의 공동의장을 맡아 윤리요강을 만드는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로욜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튤랜대에서 문학석사,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루이지애나에서 9년간 변호사생활을 거친 후 루이지애나검찰과 연방검찰 범죄국에 근무하기도 하는 등 그동안 공직생활에서 별다른 스캔들도 일으키지 않았다. 때문에 그가 당의 간판으로서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있는 요건은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이끄는 공화당은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국민들의 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전략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또 차기 대통령후보도 온건하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을 내세워 정치가 아닌 정책으로 민주당을 압도하겠다는 대책도 준비하고 있다.

공화당의 차기 선거에 대비한 전술·전략에 따라 조지 부시 전대통령의 장남인 조지 부시 2세(52) 텍사스 주지사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부시 주지사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손쉽게 재선에 성공, 공화당 경선 주자로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한 바 있다. 부시 주지사는 아직 공화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설 것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있으나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것이 유력시 된다. 부시 주지사는 이번 선거 유세에서 자신을 ‘온건 보수주의자’로 자처하면서 교육투자 확대와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를 강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 분석가 앨런 리트먼은 공화당이 2000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파가 아닌 온건파 후보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부시 주지사가 민주당의 앨 고어(50) 부통령과 마찬가지로 ‘합의된 후보’라고 평가했다.

부시 주지사는 잠재적인 공화당 경선 후보인 백만장자 스티브 포브스, 존 애쉬크로포트 미주리 주지사, 라마 알렉산더 전테네시 주지사보다 지지도에서 앞서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지금 당장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면 부시 주지사가 고어 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이길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공화당은 클린턴 대통령의 연임에 이어 고어 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도 승리한다면 무려 12년간 정권을 내주는 셈이 돼 앞으로 대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과연 중간선거의 패배를 교훈삼아 와신상담할 지 주목된다. 이장훈·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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