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가 7월23일 전격적으로 신당창당 구상을 공식화한 이후 국민회의 주요 당직자들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그렇다면 자민련과의 합당은 물건너간 것이냐”고 물으면 거의 예외없이 “두고보면 알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는 자민련과의 합당 모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뜻으로 읽혀질 수 밖에 없다. 국민회의의 핵심 인사들이 여전히 자민련과의 합당을 내년총선 승리로 가는 길목의 최대 이정표이자 정계대개편의 기본 골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지난주 국민회의의 정치적 행보를 되짚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아마도 지난주는 집권여당인 국민회의가 ‘국민의 정부’출범이후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한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7월18일 있었던 워커힐호텔 한 빌라에서의 김대중대통령과 김종필총리의 비밀 회동이 알려지자 국민회의 내부 분위기는 자민련과의 합당과 이에따른 신당 창당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듯 했다. 그러나 이른바 ‘DJP 비밀회동’이 20일 언론에 새나간 직후 자민련 충청권 세력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다음날인 21일 김대통령과 김총리, 자민련 박태준총재가 청와대에서 전격 회동했다. 회동후 김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 합당설을 부인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을 껐다.

합당설 부인 뒤 더 분주한 국민회의

그러나 김총리에 의해 합당설이 부인된 뒤 오히려 국민회의의 행보는 한층 현란해졌다. 김대통령은 김총리의 기자회견 다음날인 22일 유능하고 개혁적인 신진인사를 대거 영입, 제2의 창당을 하겠다는 ‘광양발언’을 터뜨렸다. 또 그 다음날인 23일엔 국민회의 이만섭총재대행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 8월말 전당대회를 대신할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신당창당을 결의하겠다는 것을 공식 선언했다. 이같은 국민회의측의 방향 전환은 우선 국민회의 자체의 당세확장을 통해 총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이른바 ‘1+α’ 방식의 정계개편 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러한 구상 자체가 자민련과의 합당을 전제로 한 ‘2+α’ 방식의 정계대개편을 포기한 것이라는 징후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는 자민련과의 합당을 위해 더욱 정교한 ‘플레이’가 시작될 것이라는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훨씬 강했다. 국민회의 이만섭총재대행의 ‘연애론’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대행은 신당창당 공식화 직후 자민련과의 합당 가능성에 대해 “남녀가 연애를 할 때 한번 바람을 맞았다고 관계를 끝낸다면 이 세상에 부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손도 잡고 ‘뽀뽀’도 하다보면 더욱 정이 들어 결혼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자민련과의 합당이 총선 승리로 가기 위한 국민회의의 정치적 목표임을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잘못 짚었던 김총리 의중

그렇다면 국민회의가 ‘2+α’ 방식의 정계대개편을 수면위로 부상시켜 다시 재추진하는 시기는 언제쯤이 될까. 현재로선 이같은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공동여당내에서 합당론이 채 익기도 전에 튀어 나와 ‘산통’을 깨트린 결정적 ‘실수’의 과정을 살펴 보면 합당론의 현주소를 대략은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김대통령이 합당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민회의 내에서는 정권출범 초기부터 공동여당의 원초적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길은 합당밖에 없다는 논의가 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가 당의 비공식 비밀 문건으로 정리돼 김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시기는 올해 1월말께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과의 합당 모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김총리의 의중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김대통령이 김총리의 비교적 솔직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던 시기는 ‘합당설 해프닝’이 있기 직전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평소 정계대통합을 주장해 오던 자민련 박철언부총재를 통해서다. 16일께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독대하기 전에 김총리를 먼저 만난 것으로 알려진 박부총재는 합당에 대한 김총리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음을 김대통령에게 전했다. 이때까지 합당에 대한 김총리의 입장은 “합당을 말하려는 사람은 당을 떠나라”는 극언을 할 정도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합당 절대 불가’쪽에 서 있었다. 김총리의 변화 가능성에 고무된 김대통령은 18일 워커힐 호텔의 한 빌라로 김총리 내외를 초청, 직접 합당에 대한 생각을 타진하기에 이른다. 김총리의 변화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김대통령은 이 비밀회동에서도 김총리의 긍정도 부정도 않는 ‘유보적’태도를 상당히 전향적으로 해석했다는 게 중론이다. 김대통령이 김총리를 만난 직후인 18일 밤 바로 국민회의 이만섭총재대행과 자민련 박태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일이 잘될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가 비밀회동 사실이 노출되면서 이 ‘기대’는 현실화를 위한 논의의 창구도 찾지 못한 채 잠복하게 된 것이다.

분위기 익을때까지 ‘조심조심’

이같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적어도 두가지 사실은 분명해 진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자민련 전체의 의견과는 별도로 김총리 자신의 의중은 ‘합당 불가피론’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김총리가 김대통령의 입장을 생각한 탓도 있겠지만 “합당은 안한다”고 하면서도 미묘한 대목에서는 계속해서 중의법을 사용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김총리가 움직일 가능성이 커지긴 했지만 합당 논의는 아직 초보적인 단계라는 점이다. 자민련내에도 합당론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흐름이 대세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회의측이 자민련측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도 이를 뒷받침한다. 합당론 파동의 와중에서 내각제 연내 개헌 포기라는 대어를 건져 올린 국민회의로서는 자민련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더욱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자민련에서 총선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돼 합당 쪽으로 내부 분위기가 정리되면 그 자체로 합당은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는 급류를 탈 것이 분명해 보인다.

고태성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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