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정보원의 한 직원이 서울대생을 프락치로 포섭, 학원사찰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물론 국정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이름까지 바꾼 국정원이 과연 ‘변한 게 있나’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와 인권운동사랑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6월 22일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실에서 “국정원 직원 이모씨가 이 대학 체육교육과 4학년 강모씨에게 접근, 프락치 활동을 요구했다”고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강씨는 기자회견에서 “과 조교의 소개로 만난 과 선배인 국정원 직원 이모씨가 ‘정보원으로 활동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강씨는 97년 NL계열로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 운동권 사정에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강씨는 이날 이씨가 프락치 행위를 강요한 증거로 이씨와 전화통화한 내용을 녹취한 테이프를 제시했다.

이 테이프에는 이씨가 강씨에게 ‘경영대 학생회장과 접촉, 북한 대남방송인 구국의 소리방송 내용을 모아놓은 ‘구국의 길’의 발행처 등을 알아봐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사진출·유학주선” 회유 주장

강씨가 국정원 직원 이씨를 처음 만난 것은 5월10일. 교생실습중이던 강씨는 졸업논문에 대해 의논할 것이 있으니 과 조교실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학교로 갔다. 조교는 “82학번 선배”라며 이씨를 소개했다. 논문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이씨는 “식사나 하자“며 강씨를 학교 부근 식당으로 이끌었다. 이씨는 “국가정보원에서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한뒤 강씨의 총학생회장 후보 출마를 비롯한 학생운동 전력, 부모와 친한 친구들의 근황까지 얘기했다. 은근한 ‘겁주기’였다. 이어 이씨는 본색을 드러내 전현직 학생회 간부 30여명의 이름을 대며 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고 추궁조로 물었다. “간부들을 잘 모른다”고 대답하자 이씨는 “협조를 하지 않으면 내 앞에서 조사를 받을 수 있다”고 협박했다.

이후 이씨는 2~3일에 한번씩 전화를 걸거나 교생실습중인 학교로 찾아가 정보제공을 요구했고 생활비에 보태쓰라며 3차례에 결쳐 30여만원을 주기도 했다. 특히 5월18일에는 ‘구국의 길’이라는 북한 관련 문건을 들고 교생실습중이던 학교로 찾아와 “북한 방송을 청취하는 서울대생 이름을 알려달라”며 “협조하면 교사진출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유학도 주선하고 병역문제도 해결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씨는 강씨가 계속 거부하자 “최후의 수단을 쓰겠다”며 협박한뒤 6월14일부터 연락을 끊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강씨는 “마지막 관문인 교생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싶어 한달간 이씨를 5차례 정도 만났다”며 “나도 알지 못하는 작은 누나의 사생활까지 이야기해 두려움에 시달리다 인권운동사랑방(대표 서준식)과 인권실천시민연대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두 인권단체는 자체조사를 통해 강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22일 서울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폭로했다.

“탐문수사일뿐” 국정원 부인

확인과정에서 두 단체는 국정원에 이씨가 근무하고 있음을 확인했고 지난 17일 강씨로 하여금 이씨에게 전화를 걸게해 통화내용을 녹취했다. 두사람의 통화내용은 다음과 같다. “최후의 수단이 뭐냐”(강) “협상은 물건너 갔다. 선배로서 도와주려 했는데 네가 태도를 불분명하게 해 지난번 전화로 이미 끝난거다”(이)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강) “30명 전체를 파악해 줄 필요는 없고 북한방송 청취 문건을 작성한 사람만 얘기해 달라”(이)

이에 대해 국정원 공보관실은 “프락치로 활용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서울대 NL계 학생들 사이에 ‘구국의 길’ 문건이 은밀히 유포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하는 과정에서 NL계 운동권으로 알려진 강씨를 접촉하여 탐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또 “강씨가 ‘문건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가능하면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국정원 수사관 이씨는 제작자 검거를 위해 강씨를 5차례 만나거나 전화통화로 수사관련 사항에 대해 질문했을 뿐 프락치 행위를 강요한바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강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 국가보안법 혐의 사건에 대한 수사진행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이태규·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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