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찮았던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처음부터 잘난 듯이 뽐낸다는 뜻입니다. 올챙이 없이 개구리가 있을 수 없듯이 과거없이 현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근분을 잊지말자는 것이지요.

새 천년을 맞는 시점에서 1999년의 많은 사건들 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 옷로비사건입니다. 옷로비사건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교훈을 한꺼번에 안겨 주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도덕재무장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법에 앞서는 것이 도덕이자 양식입니다. 양식은 개인들 스스로가 키워가야 하고, 사회는 이를 고양시켜야 합니다. 양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회는 구심점이 없고 불신과 불만이 팽배합니다. 그런 사회는 법이 우선시되고 덩달아 불법과 탈법, 야합이 판을 치게 됩니다. 병든 사회이지요. 윗물이 맑지 않을 때 그 병은 더욱 깊어집니다.

옷로비사건으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들은 고위공직자이거나 그들의 부인들이었습니다.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소위 말하는 지도층 인사들이지요. 그런 그들로 인해 일년 가까이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의 부인들은 떼지어 고급 의상실을 다녔습니다. IMF관리체제하에서 신음하던 많은 국민들을 한번이라도 염두에 두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아가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했습니다.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낳았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했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가 ‘실패한 로비’ 또는 ‘포기한 로비’라는 수사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관련자들의 그같은 행위가 빚은 결과입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층 인사들의 제자리를 망각한 무분별한 행동의 폐해입니다.

둘째, 공직자가 본분을 망각하면 국가기강이 흐트러진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공직자들의 자세문제입니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公僕)입니다. 지연 학연 혈연에 이끌린 공직자는 이미 공복이 아닙니다. 그런 공직자는 이(利)를 의(義)보다 앞세웁니다. 그들에게서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부정과 부패로 직결되지요. 고위공직자들이 떼거리로 자신들의 利를 앞세우면 그 피해는 정권의 신뢰 추락으로 나타납니다. 사정의 중추였던 전 검찰총장과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우여곡절 끝에 구속됐습니다. 곡절이 많다는 것은 사건전개과정에서 사사로움이 법에 앞서 먼저 고려됐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대통령이 이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여러차례 사과를 해야 했던 상황은 서글프기 그지없는 우리의 1999년 현실이었습니다.

셋째, 검찰이 나아갈 방향을 확연하게 제시했습니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곧 검찰의 살길입니다.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들 말합니다. 검찰의 역할이 지대하다는 것이지요. 그 말이 구두선이 되지 않도록 검찰 스스로의 환골탈태가 필요하고 모두가 힘을 실어 주어야 합니다.

1999년 한해는 검찰에게 치욕의 연속이었습니다. 검찰 스스로와 정치풍토가 나은 것입니다. 정치권은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당리당략의 말싸움으로 잔뜩 국민들의 의구심을 증폭시킨 뒤 검찰로 넘겼습니다. 검찰은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는 의혹해소와는 괴리감이 잇었습니다.

연초에 일어났던 항명·연판장 파동이 연말 막바지 옷로비사건 수사과정에서 유사한 사태로 벌어질 듯 하다가 일단은 잘 마무리된 듯합니다. 그같은 마무리가 미봉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99년은 검찰이 거듭나기위한 진통의 한해로 자리매김돼야 합니다.

우리의 고질 중의 하나로 냄비근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냄비는 빨리 끓고 빨리 식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온통 난리법석이다가 금방 언제 그랬느냐 듯이 잊어버리는 것이 냄비근성입니다. 과거를 교훈삼을 수 있을 때 보다 나은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새 천년의 첫해인 2000년에는 모두가 어려웠던 IMF체제시절을 잊지말고 제자리를 찾으면서 주위도 살필 줄 아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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