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람이 길을 갑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농촌 길입니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우나 멀리 아지랭이가 피워 오르는 점심시간직후의 들녁길입니다.

“바람이 찹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어깨를 움추립니다. “마음이 추우면 한 여름도 추운 법이야.” 50대 초반의 여자가 안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옆에 있던 40대 초반의 여자도 한마디 합니다. “마음을 비워보세요. 그러면 편해져요.”

세사람은 형제입니다. 고향에서 어머니 제사를 지내고 도시에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지지리도 못살던 어린시절 주린 배를 채우기위해 봄나물을 캐던 곳입니다. 얼음이 녹아 물 흐르는 소리가 커진 옆의 개울은 가재를 잡던 곳입니다. 세사람의 대화가 무거운 것은 남자 때문입니다. 그는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퇴출’됐습니다. 이전에는 잘나가던 기업의 이사로 남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두 여자의 처지가 다르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누나는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전에 이미 남편이 실직한데다 그나마 가계에 보탬을 주던 아들이 IMF사태로 직장을 잃었습니다. 여동생은 어렵게 모은 돈으로 다가구주택을 지어 ‘이제 형편이 풀리나’ 했더니 IMF사태로 세입자들이 잇따라 방을 빼달라고 하나 들어올 사람이 없어 집을 포기해야 할 처지입니다. 은행융자금을 갚을 길이 없어 경매처분 직전입니다.

“나보고 지금 돈과 젊음을 택하라면 젊음을 택하겠다.지금 내 나이가 40대초반만 됐으면 원이 없겠다.” 누나가 지난 삶을 회상하듯 말했습니다. “니매형 실직한뒤 미친듯이 살았다. 입에 풀칠을 하고 애들 공부시키느라 앞뒤는 물론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다 싶었는데 또 터지는데는 기가 차더라. 그런데 가만히 뒤돌아보니 이전에 그렇게 험하게 살았는데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마음 편케 가지려고 작심을 했다. 산 입에 거미줄치겠냐,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일수 놀이로 주변 사람들에게 빌려준 돈도 꽤 있는데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어 하니 독촉하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게 아니야. 독촉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조금씩 갚는 거 있지. 그 사람들이 고맙더라. 그런데 문제는 나이야. 취로사업(공공근로)을 나가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밤에는 온 삭신이 쑤시고 몸이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지는 것 같아.”

남자는 묵묵부답입니다.

“오빠, 나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요.” 답답한 듯 여동생이 언니를 지원하고 나섭니다. “시숙이 사업 망하면서 우린 알거지였어. 내가 첫 애 낳을 때 병원비가 없어 오빠가 돈을 빌려와 해결했잖아요. 그 때 내 심정이 어땠는지 알지요. 그 이후 애 아빠는 사우디 노무자로 나가고 나는 집(친정)에서 아버지 일 도우며 사막에서 보내온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저축했어요. 그 걸 가지고 조그만 내집 마련했잖아요. 이번에 경매에 부쳐진 집은 우리 가족의 눈물과 땀의 결실이었어요. IMF가 터지면서 세입자들이 방 빼달라고 할 때 들어올 사람은 없고 억장이 무너집디다. 많이도 울었어요. 나는 왜 도대체 되는 일이 없냐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세입자들에게 사정을 얘기하면서 경매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후 마음이 편해졌어요. 경매에 부치면 우리에게 삭월세 단칸방 하나 얻을 돈도 안돌아 올거에요. 애 아빠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위로해요. 제발 힘내요. 오빠가 힘을 내야 우리 모두가 힘이 나요. 늘어진 오빠 어깨는 정말 보기 싫어요.”

남자는 여전히 말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남자는 필자의 친구입니다. 그의 누나나 여동생은 ‘잘난 동생·오빠’의 희생자였습니다. ‘장남이 잘돼야 가족이 모두 일어선다’는 부모님의 지론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장남이, 집안의 기둥’이 힘을 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누나와 동생의 그 애틋한 호소에 아무말 하지 못했던 친구가 필자와 소주잔을 기울이다 울음섞인 말문을 열었습니다.“나는 헛살았어.” 그의 얼굴은 말했습니다. 누나와 동생에게서 배운대로 하겠다고.

정재룡 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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