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辛格浩)롯데그룹회장 선친의 유골을 훔쳐 8억원을 요구한 범인들중 한명인 임종순(34·다방업·대덕구 오정동)이 7일 경찰에 붙잡혔다. 임은 범행동기가 돈 때문이었다고 진술했다. ‘효심’ 을 노려 유골을 인질로 한 이 천인공노할 범행은 유족은 말할 것도 없고 온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전 동부경찰서는 7일 오전 8시30분 대전 대덕구 중리동 주택가에서 임을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임씨는 “지난해 7월 J출판사가 펴낸 신회장 일대기 ‘신격호의 비밀’ 을 읽고 신회장 선친의 묘지가 인적이 드문 야산에 있어 범행이 쉬울 것으로 보고 일을 저질렀다” 고 밝혔다. 임은 또 “달아난 정금용(39)씨가 ‘같이 잘먹고 잘살아보자’ 고 해 그냥 따라갔을 뿐” 이라며 “모든 범행은 정씨가 계획했다” 고 공범 정에게 ‘죄’ 의 많은 부분을 떠넘겼다. 경찰은 공범수사와 함께 이들이 다른 재벌가의 시신도 훼손했는지등의 여죄를 추궁했다.

경찰은 공범 정을 전국에 수배하는 한편 훼손된 묘지에 장갑이 세켤레 있었던 점으로 미뤄 일당이 3명이상이라고 보고 공범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범인들이 숨겨놓았던 유골을 회수, 유족들에게 돌려주었다.

경찰은 우선 임을 ‘사체 등 영득의 죄’(형법 161조)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갈) 혐의로 구속했다. 범인들은 최고 22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장례 다시 치르기로

롯데그룹은 도난당한 유해의 머릿부분을 되찾음에 따라 다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우리나라 전통적 풍습에는 유해가 훼손됐을 경우 다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상례다. 신회장은 범인이 잡히고 선친의 유골이 회수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서두르던 귀국을 일단 미루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범인이 잡힌만큼 회장님은 일본 일정을 모두 마친후 귀국하실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회장은 선친의 유골도난사건에 충격을 받아 심신이 극도로 피로해 주치의의 충고로 귀국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 김병일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있는 신회장이 범인검거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와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는 말을 전해왔다” 고 밝혔다.

신춘호 농심회장, 신준호롯데햄우유부회장 등 신회장 동생들은 선친의 유골을 울산으로 모신뒤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신회장은 장례일정이 확정되면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

밤을 지새며 대책마련에 부심하던 롯데그룹측은 신회장에 대한 개인원한이나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한 범행이라는 소식에 “그룹이미지가 실추되지 않아 다행” 이라며 큰 숨을 쉬었다.

‘정확한 시민제보’ 가 수훈갑

‘완전범죄는 없다’ 는 것을 이번 사건이 또 한번 증명해주었다. 또 범인 검거는 시민들의 제보가 그 어떤 수사기법에 앞선다는 사실도 새삼 일깨워주었다. 물론 이같은 제보가 있기까지는 제보의 근거지를 제공하는 경찰의 발신지 추적이 가능했다. 경찰은 발신지 추적으로 범인들을 체포하려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제보가 잇따랐다.

우선 묘소 인근 주민들로부터 묘소 위치를 물었던 용의자와 수상한 차량에 대한 제보가 쇄도했다. 신회장 일대기를 펴낸 J출판사 사장은 6일 “지난 1~2일께 신회장 부친 묘소의 정확한 위치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고 경찰에 신고했고 울주군 현지에서도 범행차량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제보가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7일 오전4시께 범행에 사용된 프린스승용차의 차주로 이들과 아는 사이인 Y씨(39)가 대전 동부경찰서에 제공한 제보. 양씨는 7일 새벽 늦게까지 범인들과 술을 마시다 온 세상을 경악케한 사건을 이들이 저지른 것으로 눈치채고 경찰에 알렸다.

이같은 제보들이 없었다면 경찰은 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협박전화의 성문(聲紋)분석과 목격자들의 불분명한 기억을 토대로 한 몽타쥬 작성 등으로 한동안 법석을 떨어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범인 임은 공범 정과 자신은 협박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마당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매장문화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전=전성우·윤순환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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