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지상주의인 세상을 거꾸로 가는 학교가 있다. 지난 3월9일 개교한 ‘낙제생들의 학교’, 전북 완주군 세인고등학교. 남녀반 각 20명씩 두 학급 모집에 200명 가까이 몰려들었다. 그 많은 경쟁자들을 사이에 두고 엄격한 자격심사가 치러졌다. 조건은 세가지. 성적은 중하위권, 나쁘면 나쁠수록 환영이다.

마음의 상처와 갈등도 겪고 있어야 자격 유. ‘흔들리는 아이들’ 일수록 우대를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 꿈이 있어야 한다. 교장, 상담관과 치른 면접때 ‘여기 와서 뭘 하고 싶냐’ 는 질문에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라고 말한 신청자는 죄다 탈락됐다. 지금껏 문제는 많았어도 나름대로 꿈이 살아있는 아이들만 가려 모았다.

이 ‘파격의 학교’ 는 교장 원동연박사(45)의 작품이다. 그는 5년전부터 이 일을 준비해왔고, 세인고의 출발에 대해 큰 자신감과 여유를 보인다. “저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교육시스템을 개발해왔고, 실제로 몇년전 집단교육을 통해 이 교육 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육에 대한 문제야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지만, 저희는 주장이나 논리가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서 이 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세인고 교장이라는 직함만 떼놓고 보면 원동연이라는 이름이 어딘가 낯익기도 할 것이다. 사실상 그의 홈그라운드는 교육분야가 아닌 과학쪽이다. 그는 용어조차 생소한 국내 초전도체 합성의 권위자로 90년 과학기술처 연구개발상을 받기도 했다. 92년엔 한국일보가 뽑은 ‘21세기 한국을 대표할 100인’ 의 한 사람으로도 당당히 이름이 올랐던, 주목받는 과학자중 한 사람이다. 현재도 마찬가지. 한국종합과학연구원 부원장,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부총장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는, 명실공히 한국이 알아주는 과학자다.

그런 그가 94년에 들면서 갑자기 자신의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교육현장에 나선 것이다. 몇몇의 예고편도 있었다. 자신의 이니셜을 딴 ‘DY학습법’ 을 비롯, 자신의 전공과는 생뚱한 교육관련서를 하나둘 펴내더니 결국엔 직접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 속으로 뛰어든 것.

뒤처진 공부 따라가는 ‘5차원 전면학습법’ 개발

세인고가 있는 곳은 논산에서도 한참 시골길을 들어가야 나오는 옛 운산초등학교 자리. 단층짜리 교사에 단촐하고도 아담한 살림을 꾸몄다. 비오는 날이면 온 운동장이며 진입로가 진흙탕 범벅이 될만큼 아직 엉성한 구석이 많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운치라면 운치다. 적어도 그 운동장 때문에 체육수업을 못하게 됐다고 투덜댈 일만큼은 없다. 세인고 시간표엔 여늬 정규학교와 같은 ‘공부시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모토부터가 ‘가르치지 않는 학교’ 다. 원박사는 우선 1년간은 아이들이 질릴만큼 놀게 해 줄 참이다. 벌써부터도 학기가 시작된뒤 2주동안 거의 건강 강연이나 묵상 등 일체의 교과수업없이 진행되자 처음엔 마냥 신이 나있던 아이들이 슬슬 자신들의 입으로 ‘이래서 공부는 언제 하냐’ 는 소리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박사는 더 안달이 나도록 공부하고 싶어질 때까지 1년은 꽉 채워가며 아이들을 쉬게 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시킨다는 계획이다.

뒤처진 공부는 나름대로의 ‘축지법’ 으로 따라가는 전략도 서 있다. 바로 자신이 직접 개발한 DY학습법과 그 중에서도 정수라 할 수 있는 ‘5차원 전면학습’ 이 그것이다.

그가 말하는 5차원 전면학습이란 심력과 체력, 지력, 자기관리능력, 인간관계 다섯가지가 모두 충족돼야만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다. 즉 정서적으로 불안하거나 체력상의 문제, 공부하는 방법상의 오류 혹은 시간관리 개념이 없다든가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장애가 있다면 그 어느 한가지만 잘못돼도 학습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바꿔말하면 그중 어긋난 부분이 어디인지를 먼저 파악, 그것을 치료해 줌으로써 학습능력을 최고조로 발휘시킨다는 것이다.

사제간의 깊은 신뢰, ‘공부하는 방법’ 알려줘

실례를 들어본다. 세인고 아이들도 색감과 구도에 대한 공부를 한다. 그러나 여늬 학교처럼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정물화를 그리거나 뎃생을 하거나 하는 법은 없다. 대신 이들은 헤어스타일과 옷을 코디하는 얘기로 첫 수업을 열었다. 이 학교의 금기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는 수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 딱딱한 미술이론 대신 서로의 머리모양을 살펴보고 옷 입는 법을 견주다 보면 자연 색감과 구도는 더 친근하게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교육은 교과서를 읽고 문제를 푸는 대신, 올 연말쯤 제대로 된 연극 한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단,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정식 대본을 쓰고 연극 공연을 하는 것이다. 그 대본을 쓰자면 아이들은 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게 될 것이다.

음악에서도 음악이론보다는 저마다 좋아하는 악기 한가지씩 배우는데 시간을 보낼수 있게 했고, 컴퓨터 교육도 일반 강의처럼 조목조목 교재를 배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전자게임 한편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설정하고 접근한다.

이외에도 ‘수업같지 않은 수업’ 들이 대부분이다. 아침 검도시간과 3분 묵상, 빨리 읽고 빨리 이해할 수 있게하는 속해속도 훈련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일주일에 한번은 가까운 텃밭에 나가 직접 흙을 만지며 원예도 해본다. 또 학부모와 함께 앉아 공동과제물을 채우는 날도 있다.

또 주말이나 명절 등 학생들이 원하는 경우외엔 학생과 교사 모두 교내 기숙사에서 함께 합숙생활을 한다는 것이 또하나의 특색. 직접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제간의 유대를 통해 보다 인간적인 신뢰와 사랑을 다져나가겠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성적이야 어쨌든 보면 볼수록 괜찮은 아이들입니다. 성적이 나쁘면 거의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교육현실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긴 했지만 적어도 이곳 선생님들이 얼마나 자신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만 제대로 헤아려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교육은 사제간의 신뢰없이 절대 이루어질수 없습니다.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교육방법까지 함께 쓴다면 아이들의 실력은 금새 높아지게 되죠. 그리고 그것이 이뤄지고나면 더 많은 일들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방법만 알면 공부 잘하기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형편없던 학창시절, 추진력·집중력으로 자리잡아

그토록 확신에 차있는 학습법이지만 정작 자신은 좌충우돌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경기도가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서울 친척집에 얹혀살면서 유학생활을 했다. 제법 영리하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중학교 시험에는 두번이나 낙방을 한 낙제생 경력도 있다. 중학생 친구들이 부럽다못해 아예 먼저 고등학교로 앞질러 갈 욕심으로 한동안 검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감기란 감기는 죄다 달고 다닐만큼 약골에다 촌놈이라 놀리며 겁을 주는 덩치 큰 아이들앞에서 주눅이 잘 들던 약점 때문에 검도며 합기도 등 온갖 도장이며 학원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나름의 건강법을 터득, 후에 DY건강법이란 것도 정리해 낸 분석파.

서울대 공과대학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것조차 단번에 합격하지 못했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 거의 D학점으로 도배를 한 성적표에다 어쩌다 운좋으면 C나 B가 한 둘 끼어있었는데 대개 체육 아니면 교련과목이었다. 자신의 적성도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어 온갖 강의실을 다 기웃거렸고, 그렇게 산만한 학부시절을 보낸 뒤 마침내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는 것으로 진로를 택했을 땐 주위에서 ‘그 형편없는 성적으로 어떻게?’ 라며 다들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목표가 정해지고,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한 이상, 그때부터 그는 맹렬하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연이어 취득, 예의 추진력과 집중력으로 연구에 매진하면서 국내 과학계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던 중 돌연 그에게 충격을 주었던 일이 있는데, 가족문제였다.

“제 아들이 중2였을때 ‘너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 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되고 싶은 게 별로 없다. 다만 절대 되고 싶지 않은건 하나 있다’ 는 겁니다.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단하나, 나는 아버지같은 사람은 절대 안되겠다’ 는 거였습니다. 대단한 충격이었죠.” 말하자면 ‘잘 나가는 아버지’를 둔 아들 나름의 남모르는 고통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 관심을 갖고 시작한 교육분야 일도 5년 사이 꽤 가속이 붙었다. 책이나 강연으로도 성에 차지않아 이제는 공교육권까지 직접 진입, 기존 교육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실제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전세계 전산망으로 잇는 사이버스쿨 추진

그러나 고등학교 교장이 된 지금도 외양은 여전히 교장보다는 교수나 박사쪽에 가까워 보인다. 페인트 칠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교사에서 불룩한 서류가방을 들고 ‘체신없이’ 뛰어 다니는 품이나, 비만 오면 깜빡거리는 강당 형광 등 불빛 아래서도 소매를 걷어부친채 직접 3시간짜리 강연을 강행하는 모습은 한치 틀림없는 대학교수. 훈시보다는 강연이 입에 익고, 학교운영보다는 교육 시스템 개발에 더 관심이 많은 젊은 교장이다.

워낙 벌인 일이 많아 요즘도 수시로 서울과 대전, 완주를 오가는 형편이지만, 어쨌거나 요즘 그에겐 세인고 일이 0순위다. 92년 중국으로선 첫 중외합작대학으로 출범시킨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일도 일단 올 1년만큼은 국내에서 ‘원격처리’ 하는 것으로 양해를 받아두었다.

그렇게 벌어놓은 1년이란 값비싼 시간동안 그는 보란 듯이 세인고의 틀을 만들어 보여줄 생각이다. 또 오래전부터 추진해오던 홈 스쿨이나 사이버 대학사업 등 전세계를 전산망 하나로 잇는 사이버 스쿨 구축 작업도 본격화시킬 예정. 아직은 갖춰진 것보다 손봐야 할 것들이 더 많은 학교지만, 전깃불조차 신통치않은 그 외진 산골마을 학교에서도 지금 그가 그토록 유쾌하게 살아가는건 바로 그런 탄탄한 꿈과 야심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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