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1월 경수로 현장 방문기회에 사무국의 미국인 동료직원과 함께 북한측 인사들과 케도_북한간 케도협상 관련사항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까지도 케도_북한간 후속협상에 참가할 북한대표단의 여행경비 부담문제와 협상장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후속협상 일정이 잡혀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 협상 과정에서 북한은 상환하는 조건으로 북한대표단의 후속협상 참가 경비를 케도측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해 케도측은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북한대표단이 여행경비가 없어 해외여행이 어렵다면 후속협상을 판문점에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응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은 후속협상은 뉴욕이나 경수로 건설 현장인 금호지구에서 개최하여야 하며 뉴욕에서 열리는 경우 북한 대표단의 여행경비는 케도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도_북한간 회담, 평양개최 절대 불가

경수로 현장 방문 기회에 가진 협의에서 북한측 인사들은 보스워스 케도사무총장(현 주한미국대사)과 허종대사간에 이미 양해된 사항이라고 강변하면서 후속협상이 경수로 건설현장이 아닌 외국에서 개최되는 경우 여행경비는 케도가 부담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 결국 이 문제는 96년 3월 보스워스 사무총장 일행이 경수로 건설부지 방문후 평양에서 허종대사와 만나 타결되었는데 여행경비는 북경을 기준으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서로 부담하기로 하였다.

케도와 북한간 협상은 요즘도 뉴욕, 그리고 북한 내에서는 향산(묘향산 입구에 위치)과 마전(함흥근처 해안 휴양지), 그리고 금호지구(경수로 건설현장) 등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북한은 북미회담은 평양에서 개최할 수 있으나 케도_북한간 회담은 절대로 평양에서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을 아직까지 견지하고 있다. 북한내에서 케도와의 회담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향산이나 마전, 그리고 금호지구 등은 모두 북한 일반 주민들의 접근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일종의 고립된 지역이다. 케도의 경수로 사업이 남북한간의 협력사업으로 비추어 지는 것에 대한 북한의 경계심을 보여주는 일례라고 볼 수 있다.

경수로 건설현장 인근 기차역인 강상리역에서 평양행 야간 열차를 타면 다음날 아침에 평양에 도착하고, 보통 그 다음날 북경행 고려항공을 타도록 여행 일정이 짜여져 있기 때문에 경수로 목적으로 북한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평양 고려호텔에서 일박을 하게 된다. 고려호텔은 45층 건물 두개로 이루어졌고 객실 수는 500개나 되는 대형 호텔로 외국에서 평양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곳에 투숙한다.

요원들 평양 1박, 시내관광으로 소일

케도 사람들이 평양에 일박을 하게 되면 통상적으로 평양시내 관광이나 인근 유적지 관광이 주선되었다. 여행하는 팀마다 주선해 주는 일정이 약간씩은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평양시내에 있는 주체사상탑이나 개선문, 인민학습당, 그림이나 도자기를 제작하고 판매하는 창작사 방문 등이다. 평양 인근 유적지로는 동명왕릉이나 단군릉 관광이 주선되기도 했다. 케도 사무국은 초창기 케도 파견 남한 인원에 대해 북한당국이 평양에 체류하는 동안 정치 선전 활동을 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요즘은 북한의 전력난으로 기차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경수로 건설현장과 평양간에는 기차대신 북한이 제공하는 유료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과 관련하여 케도와 북한과 체결된 몇 가지 의정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96년 4~6월 2개월 동안 뉴욕에서 북한과 통행 및 통신의정서 협상이 개최됐다. 경수로 건설사업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어떻게 북한으로 보내느냐 하는 것과, 경수로 건설 현장에 체류하는 케도 연락사무소와 파견 인력들이 어떻게 북한 외부와의 연락망을 상시 가질 수 있느냐를 다루는 중요한 협상이었다. 요즘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적용되어진 방식은 많은 부분이 케도방식에서 ‘차용’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통행문제에 대해 케도측은 경수로 사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인원과 물자가 남한에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경수로 건설비용의 절감을 위해 남한에서 경수로 건설 현장까지 최단거리의 경제적 통행로가 확보되어야 하며 이런 점에서 판문점을 통한 육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북한측은 남북 대치 상황으로 육로 개방은 절대불가라는 입장을 취했고, 결국은 해로와 공로를 사용하는 선에서 양측의 입장이 조정됐다.

통행로 협상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사항은 북한지역으로 항해하거나 운항하는 선박과 비행기의 깃발과 외부 표식 문양 문제였다. 쉽게 이야기해서 선박에 게양되는 태극기나 비행기 동체 꼬리부분에 그려진 태극기 표식이 북한 땅에서 허용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선박 등에 국기게양, 양비·양시방식 적용

케도측은 선박의 경우 북한항구에 입항할 때 북한의 인공기와 선적국의 깃발을 같이 게양하거나 모두 게양치 않는다는 옵션방식을 제의하여 합의됐는데 우리 국적 선박의 경우 쌀 수송선의 전례에 따라 태극기와 인공기를 모두 게양치 않는 방식이 취해지고 있다. 97년 4월 한국국적의 선박으로 한국해양대 실습선인 한나라호가 분단이후 처음으로 북한과 합의한 해로를 이용하여 대규모 인원을 싣고 동해항을 출발하여 북한 양화항에 입항했다. 최근에는 속초항에서 양화항까지 화객선이 경수로 인원과 물자 수송을 위해 부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다.

우리 국적의 선박이 북한지역으로 항해하는 동안 태극기가 내내 게양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속초나 동해항에서 출항하여 양측이 합의한 북한 수역내 도선 안내지점에 도착하기까지 우리 선박은 태극기를 게양하며 도선 안내 지점에서 북한의 양화항까지 구간에서만 태극기가 내려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도선 안내 지점에서 항구까지 구간에서 외국선박에 대해 인공기를 게양토록 되어있는 규정을 우리 선박에게는 적용치 않는다는 양보를 하였다. 이른바 양비(兩非)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미국이나 일본 선박이 경수로용 물자를 싣고 북한지역으로 항해하는 경우에는 도선 안내지점에서 양화항구까지 성조기나 일장기, 그리고 인공기가 함께 게양되는 이른바 양시(兩是)방식이 적용된다.<다음호에 계속>

김은수·외교통상부 조약국 심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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