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서커스단의 원조인 ‘동춘(東春)곡예단’(단장 박세환·57)의 꽃은 김영희(37·사진)씨다. 2시간 20분짜리 곡예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70년 전통의 동춘 서커스단에게는 보배같은 존재다. 150㎝의 단신에 통통한 몸매로 어떻게 곡예를 할까 싶지만, 한달 수입이 500만~700만원에 달하는 경력 30년의 특급 곡예사다.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7시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사우나에 가면 고난도 묘기인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할 정도로 프로근성이 강하다. 현재 서커스단의 옛 명성을 4~5개가 이어가고 있지만 그처럼 의자탑쌓기 줄타기 동물조련 그네타기 체조에서 대역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서커스가 없는 ‘만능 곡예사’는 찾기 어렵다.

그는 7세때 우연히 동네 장터에서 본 서커스에 반해 따라 나섰다가 ‘곡예인생’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28세까지는 거의 ‘노예인생’이었다. 곡예연습은 커녕 애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짓기 등 서커스단장의 종(일명 홈부시끼)노릇만 했다. 돈 한푼 못받고 힘들어 도망쳤지만 항상 붙잡혔다.

결국 86년 한때 서커스단에 있다가 결혼해 부산에서 사는 옛동료집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100만원을 빌려 구포시장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동춘 박단장을 만난 것도 이때다. 그의 재주를 아깝게 여긴 박단장의 설득으로 서울로 올라왔다가 옛 서커스단 단장에게 다시 붙잡혔다 탈출하는 등 곡절이 계속됐으나 박단장의 도움으로 묘기연마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사랑하는 남자도 생겼다. 부산에서 포장마차를 할 때 단골손님이었다. 외롭던 시절 자주 들러 정이 들면서 동거에 들어가 아들(8)까지 뒀으나 서커스를 이해하지 못해 현재 별거중이다.

곡예는 말그대로 위험이 상존한다. 연습하거나 공연중 실수로 떨어져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10년전 강릉 공연시 그네타기도중 그네가 옆줄에 걸려 떨어지면서 골반을 다쳤으나 공연일정 때문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퇴원해야 했다.

공연기간에는 무대뒤 컨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는 고된 생활이 이어진다. 그의 별명은 ‘이모’. 일년이면 열번넘게 짐을 꾸리고 풀어야 하는 ‘집시인생’이지만 대부분 10~20대로 구성된 단원들에게는 나이가 많고 어머니처럼 따뜻한 존재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유랑생활’의 힘겨움도 그는 무대에 오르면 모두 잊는다. 관객의 박수소리만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샘솟는 타고난‘광대’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동료 10명이 새로 창단한 곡예단으로 가고 1~2년동안 훈련시킨 강아지 두마리가 실종돼 속이 상해 있다. 아들을 잘알고 지내는 동생집에 맡겼지만 곁에서 돌보지 못해 가슴이 짖어지듯 아프다.“무대에 설 수 있는 날까지 곡예를 계속하겠다”는 그는 “곡예체육관을 건립해 서커스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산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그는 벚꽃축제기간인 4월3일부터 5월9일까지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다시 무대에 선다.

/김혁·사회부기자

「나무의자 4개를 하나씩 쌓아올리며 물구나무 서기, 외줄에서 한발로 중심잡기, 사람을 태운 대나무를 한쪽 어깨에 올리고 중심 잡기…」

21일 오후 일산신도시 주엽동의 한 공터에 자리잡은 대형 가설천막 무대. 30대 후반의 통통한 몸매를 지닌 한 여인의 날렵한 곡예에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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