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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또 다른 인생을 위한 '변신 드라이브'

옛 탁구계의 여왕 자오즈민(36)의 손은 확실히 매서운 데가 있다. 89년 당시 세계여자탁구의 여왕이라는 그 화려한 왕좌를 과감히 박차고 나와 한 한국인 남자, 안재형(35)의 범부(凡婦) 자리를 선택하더니, 결혼생활 10년만에 이번엔 한중무역을 상담하는 컨설턴트로 변신, 또다른 드라이브를 날리고 있다.

한국말도 어눌한 그녀가 한때 어느 TV 드라마에 연기자로 얼굴을 비칠때 보다 더 놀라운 ‘관전’ 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신앞에 퍼부어질 ‘지극히 한국적인’의문 몇가지. 탁구만 알던 운동선수가 난데없는 경제전문가라니? 더구나 여자가? 그것도 가정 살림만 하고 있던 주부가?

“한중 무역투자상담일을 시작한 것은 올 2월부터지만 이미 4_5년 전부터 제 사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서울에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낸거지요. 한국에선 이상하게도 은퇴를 하든 않든 스포츠 선수 출신인 사람은 스포츠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선입관이 있지만 중국에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탁구선수로서의 저의 전력은 제 사업에도 적지않은 잇점이 되고 있고, 중국에선 원래 여자나 남자나 아무런 편견이나 차별없이 일하는 풍토가 자리잡고 있어 실제로 큰 어려움 없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얼빈에 사업체 3개, “중국은 황금시장”

그녀의 이름을 따 만든 ‘자오국제통상’이 문을 연지 약 7개월째.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일하는 직원이 다섯명으로, 자오즈민은 그들의 사장님이다.

하는 일은 자신의 대중 무역사업과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중국정부나 현지의 관련 기업을 연결해 주는 일. 혹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하려는 기업도 돕고 있다. 94년께부터 벌인 개인사업으로 자신감을 얻자 자신의 노하우와 정보망을 활용, 다른 기업들까지 간접지원하기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중국은 특히 무역에 있어서 정부의 통제와 입김이 강한 국가. 지난해 가을, 그녀의 근황을 꿰고 있던 중국정부가 본격적인 한국기업과의 중간역할을 제의하면서 이 일이 시작됐다.

그간 일궈놓은 개인 사업 실적도 만만치 않다. 소식이 뜸하다 싶던 그동안, 중국 하얼빈에 사업체를 세군데나 심어놓았다. 연간 매출액 10억원대에 달하는 종이컵 공장이 하나. 삼성 갤럭시 의류 매장도 올 4월이면 총 셋으로 불어난다. 그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1회용 종이컵 공장이다. 계기는 단순했다. 자신이 아는 한 대만인이 중국에서 식당을 개업하자 얼핏 생각이 미친 것이 종이컵. 한국에선 흔하지만 당시 중국 식당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미리 주변 지역을 죄다 돌며 시장조사까지 해봤다. 그래서 아직 중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상품이란걸 확인하고나자 직접 그 물품을 대겠다고 나선 것. 그 공장을 세운 뒤 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다른 종이컵이 들어오지 않을만큼 중국의 생활수준이 낙후돼있다는 것도 자오즈민이 내세우는 ‘중국의 황금시장론’중 하나.

“중국에서는 탁구선수 경력이 신용처럼 통해요”

사업을 시작하자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상품 아이템으로 가려졌다. 자신이 여자탁구팀의 훈련을 맡고 있던 삼성과의 인연도 결국 사업으로 연결됐다. 중국 현지에 제일모직 생산공장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자신이 제안, 삼성측과의 협의 끝에 친정이 있는 하얼빈내에 제일모직 갤럭시 매장을 마련한 것이다.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저 적게 투자해서 무리없이 매장을 이끌어가는게 최상의 목표. 과욕을 부리지 않은 것이 그러나 오히려 지름길이었던 모양이다. 6명의 남매를 비롯, 하얼빈의 친정 식구들이 전원 매달려 착실히 운영한 덕에 1년만에 매장을 늘리는 성과를 얻었다. 그것도 올 4월중 스포츠 의류 라피도 매장이 하나 더 들어서고, 연내 5개 매장확보가 그녀의 목표다. 그밖에도 저변의 성공비결이 있다면 요컨대 이런 것.

“중국과 한국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 개인만 보더라도 여기선 다들 한때 탁구선수였던 정도로 잊고 지내지만, 중국에선 한 번 스타가 되면 평생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게 됩니다. 지금도 제가 가면 여전히 저를 아껴주시고, 안재형씨도 기억할 정도지요. 특히 중국인들은 어떤 분야의 스타였든 ‘저 사람은 예전에 그만큼 자기 분야에 뛰어났던 만큼 머리도 똑똑할거고 다른 일에서도 틀림없이 능력이 있을거’ 라며 전적으로 믿고 도와주거든요. 경력 자체가 신용처럼 통하니까요. 실제로 이번에 컨설턴트로 나서기 전에도 몇몇 한국기업이 중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가서 얘기하면서 일이 쉽게 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일을 하니까 사업도 훨씬 쉽고 편하게 풀리는거지요.”

무리는 금물, 몸에 밴 ‘만만디’ 습성

여늬 한국의 ‘사장’ 들과는 달리 그녀의 일하는 스타일은 영낙없는 ‘만만디’다. 회사에 나가는 날이 많아야 일주일에 사흘 정도. 편도 2시간밖에 안 걸리는 중국출장길도 한달에 한 번, 혹은 두달에 한 번이면 ‘의무완수’ 다. 현지에 가서도 대략 1주일쯤 머무는게 보통. 돌아와서도 힘들면 집에서 일단 쉬고 본다. 물론 맡은 일에선 최선을 다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리한 일 욕심을 내지 않는다. 언제든 일 하고 싶은 만큼만 일 하고, 쉬고 싶으면 무조건 쉬고 보는게 그녀의 원칙이다. 굳이 건강을 상해가면서까지 일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무를 시작한지가 얼마 안 된터라 상담건수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도 있다. 또 설령 문의가 빗발쳐오더라도 웬만한 기본작업은 ‘한국말 잘 하고, 손발 빠른’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정리해주기 때문에 그녀의 일거리가 대폭 줄어든 셈.

매사 쫓기지 않고 사는 덕분에 사업을 하면서도 가정주부로서의 위치 또한 굳건하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스스로도 요령껏 스케줄을 관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넉넉하게 쓰는 편이다.

“일이 별로 힘들지 않아요. 정 힘들면 집에 와서 쉬고, 저는 크게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열심히 일하는 거죠. 또 많이 힘들땐 병훈이 아빠(안재형)가 도와줘서 조금도 힘든 줄을 몰라요.”

가정에서도 일면 ‘요령이 있는’ 주부다. 사업을 하는 아내 티가 나지 않게 집안일도 원만하게 이끌어간다. 여기에는 남편 안재형의 조력과 이해가 큰 몫을 하고 있다. 현재 안재형은 지난 방콕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코치에서 물러난 상태. IMF여파가 탁구계에까지 미친 뒤, 이젠 전적으로 가정을 위해 생활하고 있다. 10년전 자신의 탁구인생마저 일시 반납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던 한국의 탁구스타 안재형의 도중하차는 그녀에게도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돈을 못 벌게됐다는 것보다 뭣보다 병훈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그리고 그이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인데 그걸 갑자기 그만둬야 한다니까 너무 안타깝고 걱정 됐어요. 능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벽한 주부 노릇은 못해도 최소한 기본적인 모양새는 어기지 않고 살아간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꼬박 집을 지키면서 빨래, 청소를 직접 하고, 초등학교 2학년인 병훈(9)이의 뒷바라지도 그녀의 지상임무중 하나. 아이의 학교에서 급식당번을 맡은 날은 남들처럼 만사 제치고 직접 학교로 달려가는 평범한 어머니다.

자상한 시어머니 덕분에 고부갈등이란 것도 잊고 지낸다. 안성에 사는 시어머니는 지금도 아들 내외를 위해 인삼차 등속을 직접 끓여 보내실만큼 변함없는 사랑을 쏟아붓고 있다.

가족 모여있을땐 중국어가 제일 편해

시집살이 대신 그녀가 겪고 있는 애로는 10여년 공부에도 ‘완전 마스터’ 가 안되는 한국말에 있다. 남들이 다 유창해졌다고 칭찬하는 요즘에도 일상대화만 벗어나면 여전히 아는 말보다 모르는 말이 훨씬 더 많다. 특히 받침이 들어가는 우리말 단어는 그녀를 꾸준히 괴롭히는 것 중 하나. 그래서 그녀와 대화를 할 때는 약간의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가정내 공용어도 중국어. 아들 병훈이는 아버지 안재형과 있을 땐 한국어로, 어머니 자오즈민과는 중국어로 얘기하는 등 2개 국어를 쓰는 판이고, 세 식구가 모였을 땐 중국어가 더 빠르다.

그 어눌한 발음으로 그녀는 또 사업얘기를 쏟아놓는다. 그쪽 얘기만 나오면 그녀의 말이 조금씩 빨라지기도 한다. 유순해보이는 눈망울은 변함없지만, 사업에 관한 한 단호한 눈빛이 문득 스미기도 한다. 어려운 경제용어 하나 쓰지 않고도 중국의 투자가치를 역설하는 품이 말하자면 더도덜도 아닌 사업가 자오즈민식 설득법 같다.

“일 때문에 중국행 비행기 자주 타다보면 그 안에서도 중국에서 장사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런데 잘 되는 분 못지 않게 실패한 분들도 많고, 다양하지요. 실제로 열분이 가면 성공하는건 그중 다섯분이 될까말까 해요. 현지 사정을 제대로 몰라서 손해만 보고 망하는 거죠. 옆에서 보면 너무 안됐어요.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중국은 참 큰 시장이예요.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아무거나 해도 성공할 수 있어요. 저는 너무 많이 알려지는 것도 싫고, 그저 호기심으로 생각해보는게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중국진출을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제 사업은 얼마나 크게 키울거냐구요? 글쎄요. 그냥... 가봐야 알지요.”

정영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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